백팔십도 반전기 - Chp#01. 왕따에서 킹카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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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여기가 어디지?”
길한복판에 대자로 뻗어있던 한 남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이 익숙치 않은 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태를 파악했다.
‘그렇지. 나는 그 자식들한테 맞고 쓰러져서…, 그 다음은?’
기적했을 때 꿨던 꿈이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하자 짜증이 치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많은 발길질에 더럽혀져 있는 옷을 털고 일어나는 그는 문득 자신의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성한 곳 없을 정도로 세게 맞은 듯 한데 쑤시는 곳 하나 없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뼈에는 이상없는 듯 하고 피부에 긁힌 정도인가?’
다행히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경찰이라도 지나갔으면 사태의 심각성이 커졌을 것이다. 자신이 비록 멀쩡하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자신에게 복수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학교에 가기 글렀다고 생각한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달칵
여전히 어두컴컴한 집이었다. 사실 외관으로 보면 정말 밝은 집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이 집은 그에게 있어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버릇이 된 듯 아무도 없는 집안에 인사를 하는 그는 자신의 방에 가방을 내팽겨치다 싶이 한 후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다.
“이, 이게 뭐야!!!”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본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추한 자신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서?
그가 놀란 이유는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있었다.
곱슬머리였던 자신의 머리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긴 생머리로 변해 있었고 언제나 뭉퉁하고 돼지를 연상시키게 했던 코는 마치 칼로 깎아놓은 듯 오똑하게 높아져 있었다. 짝눈이었던 그의 눈은 마치 다이아를 박아 놓은 듯 초롱초롱 빛을 발했고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것 같이 촉촉하며 붉었다. 화상으로 찌들린 피부는 어느 여자들보다 더욱 매끄러워 자신이 여자가 아닌가 할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 정녕 이것이 나, 정유랑의 얼굴이란 말인가!”
유랑은 지금 처한 상황이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자신이 쓰러져있는 사이 누가 성형수술을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유랑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통장에 있던 3천만원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성형외과에서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자신의 얼굴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자신의 얼굴을 성형시킨단 말인가. 그것도 짧은 시간에…
“믿기지가 않아. 이게 내 얼굴이라니… 서, 설마 하느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은?”
그는 언제나 성경을 읽으며 기도했었다. 자신이 죽어 환생을 한다면 천하의 미남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럼 나는 죽은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유랑은 자신의 볼을 꼬잡자 아련히 느껴지는 통증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지금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의 얼굴이 바뀌었으니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거야.’
자신의 얼굴이 바뀌어버렸으니 분명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거라 확신한 그는 내팽겨져 있던 가방을 어깨에 맸다.
“좋아. 학교에 가면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나를 알아보는지 두고보자구!”
그는 비장의 눈빛을 하며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유랑이 전력질주로 학교로 향하고 있을 때 멀리서 지켜보는 한 인영이 있었다.
산들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긴 머리, 선녀를 연상시키는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후훗, 나를 구해준 보답이야. 유랑.”
그녀는 바로 유랑이 짝사랑해오던 이민경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던 그는 교실의 분위기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와아! 유랑이다!”
“야 이 자식아. 그러니깐 우리가 깨워준다고 했잖아!”
그가 돌아오자 말자 교실의 분위기는 극도로 상승했다. 유랑이 들어오자말자 모두의 얼굴에 함박만한 미소가 번진 것이다.
“괜찮다. 늦게 일어나 지각할 수도 있는거지. 어서 자리에 앉거라.”
언제나 그에게 냉랭하며 무관심하던 선생님마저 그에게 극도의 관심을 표하는 것이었다. 유랑은 지금 상황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들어오나 마나 거들떠 보지 않던 사람들이…“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열어 수학책을 꺼내려 하던 그의 손은 경직되고 말았다.
‘아차, 아까 가방 던질 때 빠졌나보다.’
자신의 방에 가방을 내팽겨칠 때 가방이 열리면서 수학책이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같이 책을 볼 사람을 뒤졌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어, 유랑아? 혹시 책 가져오지 않았으면 나랑 같이 볼래?”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책을 같이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것도 귀까지 빨개진 채로.
그녀의 이름은 제갈린, 제갈 고등학교를 설립한 대기업 사장의 딸이었다.
그리고 여학생 중 유랑에게 가장 심한 모욕을 줬던 여학생이었다.
‘…이상하다. 내 얼굴이 바뀌면서 교우 관계까지 바뀐건가? 선생님까지 나에게 관심있는 눈치니 인간 관계까지도 180° 바뀌어버린거야?’
옛 기억 때문에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없어 그냥 무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갈린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책상을 유랑의 책상에 바짝 붙였다.
여자에게 전혀 면역이 없던 유랑은 자신의 옆으로 여자가 다가오자 붉어지는 얼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제갈린은 제갈 고등학교의 3대 미녀중 한명이다. 약간 보이쉬하면 면 때문에 여학생들에게까지 인기있는 그녀였다.
“자, 잘 부탁해.”
“어머, 유랑이 나한테 인사를 했어!”
제갈린의 놀란 외침과 함께 주위의 학생들이 모두 유랑을 주시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제갈린을 향해 질투와 분노가 섞인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더욱더 상황 파악이 안되던 유랑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냉랭하던 유랑이 인사를 하다니!”
“저렇게 자상한 면까지 있다니… 크윽, 부럽다!”
그들 딴엔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겠지만 유랑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내가 냉랭해? 자상한 면?“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유랑이었다. 지금 상황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추한 자신의 얼굴이 바뀐 것을 모르는 것부터 해서 인간 관계까지 뒤바껴 버린 지금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자자, 조용조용! 유랑아, 너가 이 소란의 주범인 듯 하니 나와보거라.”
조용히 자리에 일어난 유랑은 선생님이 계신 교탁 앞으로 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주위의 여학생들은 황홀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는 여학생까지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대단한 인기로구나. 일단은 너가 소란의 주범이니… 흐음, 이 문제를 칠판에 풀어보거라.”
‘허억!’
선생님이 자신에게 지시한 것은 칠판에 문제풀기. 그것도 고등학교 1학년 수-나 과정에서 가장 어렵다던 삼각함수 파트였다. 전에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좋지 않았던 그로서는 이런 고난이도 문제를 알 리가 없었다.
“저어, 선생님 잘 모르겠는데요?”
“뭐라고! 너 지금 선생님을 놀리는 거냐? 모의고사 전국 1등 녀석이 이깟 문제를 못 푼다는게!”
‘뭐, 뭐라고?’
자신이 모의고사 전국 1등이란다. 이건 또 왠 궤변이나 싶었던 그는 수학책에 있는 문제를 보았다. 그 때 자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의 섬광
그는 수학책을 든 채 분필을 집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과히 사람의 손놀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악탁탁탁
“다 풀었습니다.”
“역시 유랑이구나. 이렇게 고난이도 기출 문제를 1분도 안 되서 다 풀다니…”
순간 정신을 차린 유랑은 지금 자신이 한 일에 어리둥절 했다. 수학책을 들여 보다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말자 몸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역시 유랑이야!”
“제갈 고등학교 최고의 킹카답다!”
여기저기서 칭찬 소리가 들려오자 유랑은 쑥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유랑에겐 쑥스러워 얼굴을 붉힌 것이었지만 언제나 유랑과 같은 학우로 있던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랑에게 저렇게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
‘안돼. 반헤서는 안된다. 저 녀석은 우리와 같은 물건이 달린 종족이야!’
그의 얼굴 붉힘 한번으로 남학생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물론 유랑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 이건 아무래도 하늘이 나에게 주신 새로운 기회,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기회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봐야지.’
머릿속으로 복잡하던 상황을 하느님께 감사하단 느낌으로 날려버린 그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많은 여학생들이 혼절했다는 것을 유랑은 몰랐다.
“유랑아 점심 같이 먹자!”
어느 덧 점심 시간, 모든 수업 시간 때 그를 보던 시선이 전과 달라졌다. 따뜻하고 인자하시다고 소문이 자자하시던 과학 선생님 마저 자신을 무시할 정도였는데 엄청나게 바뀌어버린 상황에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는 유랑이었다.
“저 그게… 나는 점심을 안 싸와서…”
“뭐라고?”
“정말이야?”
점심을 싸오지 않았다는 유랑의 말 한 마디와 함께 많은 여학생들이 고개를 돌리며 반문했다. 갑작스런 시선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떡여 긍정을 표했다.
“매일 도시락 2개씩을 싸오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바라는구나!”
“뭐야? 너도 매일 2개씩 싸왔어? 나도인데!”
갑자기 수많은 여학생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유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유랑, 내 도시락 먹어!”
“저런 맛 없는 도시락보다는 내 도시락이 훨씬 낫다구!”
많은 여학생들의 꽥꽥거림에 귀를 틀어막은 유랑에게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유랑, 우리 집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먹지 않을래?”
자신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수학 시간 때 책을 같이 보던 제갈린이었다. 그녀가 유랑에게 접근해오자 주위의 여학생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제갈린과 비교해 전체적으로 딸리는 자신의 모습에 한탄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이었다.
“으응, 고마워.”
“꺄아, 유랑이 내 도시락을 먹어준대!”
제갈린은 유랑이 자신의 도시락을 먹어준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팔짝 팔짝 뛰며 환호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랑을 제외한 모든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귀여워…’
제갈린을 향한 남학생들의 공통된 생각,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멀고도 먼 그녀였다.
제갈린의 행동에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던 그 때
“유랑아.”
유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석상처럼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은은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첫사랑, 짝사랑 이민경이었다.
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민경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저기 날 아는거야?”
유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질문을 내던졌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너! 어쩜 그럴수가 있니?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학교 모두가 인정한 사실인데!”
다시 한번 석상처럼 굳어지는 유랑이었다.
‘미, 민경이가 나를 좋아한다구?’
얼마나 꿈꿔왔던가. 자신이 민경이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그날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민경이 자신을 좋아하게 될 날을…
그런데 자신을 좋아한단다. 그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심장이 곤두박질 치는 느낌이었다.
“어머, 오늘 유랑답지 않게 표정이 많이 변하네. 무슨 일 있었나? 혹시 열 있는 거 아냐?”
또 한번 석상처럼 굳어지는 유랑이었다. 열을 잰다 치고 자신의 머리에 이마를 대는 민경의 태도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열은 없는 것 같구…,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거구나?”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
자신이 그녀를 대한 태도가 다소 어색했는지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그였다.
“나랑 옥상에 가서 같이 점심 먹지 않을래?”
“정말?”
같이 점심을 먹자는 민경의 제안에 그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뒷통수에 꽂히는 강렬한 느낌
‘내 도시락 먹기로 했으면서!’
유랑은 그 느낌이 찜찜해 뒤를 돌아보았다가 성급히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제갈린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 저 민경아, 바, 밥 먹으러 가자.”
“응!”
더욱더 뒤에 꽂히는 느낌이 강해졌지만 애써 담담한 척 하는 유랑이었다.
“맛있네.”
“그렇지? 내가 손수 만든거야.”
그는 민경이 손수 만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고대하고 고대하던 삶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그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랑… 왕따에서 킹카가 된 느낌은 어때?”
"푸웃! 너 어떻게?“
유랑은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변한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그녀가!
“어머, 설마 기억 안 나는거야? 그 때 꿈 말이야…”
“꿈?”
그는 자신이 쓰러져있던 기억을 잠시 되살려보았다. 분명 그는 배를 가격되어 기절했고… 깨어나니 온통 하얀 세상에 엄청난 빛 무리…!
그제서야 모든 것이 생각나는 유랑이었다.
‘그래. 분명 그 때 빛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히 여자였어.’
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자 민경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거야? 생각보다 바보네.”
민경의 말에 유랑은 놀란 나머지 손가락으로 민경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 그러면 설마 그 여자가 바로…!”
“그래. 너를 이렇게 만들어준 것도 바로 나, 이민경의 작품이지.”
길한복판에 대자로 뻗어있던 한 남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이 익숙치 않은 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태를 파악했다.
‘그렇지. 나는 그 자식들한테 맞고 쓰러져서…, 그 다음은?’
기적했을 때 꿨던 꿈이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하자 짜증이 치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많은 발길질에 더럽혀져 있는 옷을 털고 일어나는 그는 문득 자신의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성한 곳 없을 정도로 세게 맞은 듯 한데 쑤시는 곳 하나 없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뼈에는 이상없는 듯 하고 피부에 긁힌 정도인가?’
다행히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경찰이라도 지나갔으면 사태의 심각성이 커졌을 것이다. 자신이 비록 멀쩡하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자신에게 복수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학교에 가기 글렀다고 생각한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달칵
여전히 어두컴컴한 집이었다. 사실 외관으로 보면 정말 밝은 집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이 집은 그에게 있어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버릇이 된 듯 아무도 없는 집안에 인사를 하는 그는 자신의 방에 가방을 내팽겨치다 싶이 한 후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다.
“이, 이게 뭐야!!!”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본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추한 자신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서?
그가 놀란 이유는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있었다.
곱슬머리였던 자신의 머리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긴 생머리로 변해 있었고 언제나 뭉퉁하고 돼지를 연상시키게 했던 코는 마치 칼로 깎아놓은 듯 오똑하게 높아져 있었다. 짝눈이었던 그의 눈은 마치 다이아를 박아 놓은 듯 초롱초롱 빛을 발했고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것 같이 촉촉하며 붉었다. 화상으로 찌들린 피부는 어느 여자들보다 더욱 매끄러워 자신이 여자가 아닌가 할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 정녕 이것이 나, 정유랑의 얼굴이란 말인가!”
유랑은 지금 처한 상황이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자신이 쓰러져있는 사이 누가 성형수술을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유랑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통장에 있던 3천만원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성형외과에서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자신의 얼굴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자신의 얼굴을 성형시킨단 말인가. 그것도 짧은 시간에…
“믿기지가 않아. 이게 내 얼굴이라니… 서, 설마 하느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은?”
그는 언제나 성경을 읽으며 기도했었다. 자신이 죽어 환생을 한다면 천하의 미남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럼 나는 죽은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유랑은 자신의 볼을 꼬잡자 아련히 느껴지는 통증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지금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의 얼굴이 바뀌었으니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거야.’
자신의 얼굴이 바뀌어버렸으니 분명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거라 확신한 그는 내팽겨져 있던 가방을 어깨에 맸다.
“좋아. 학교에 가면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나를 알아보는지 두고보자구!”
그는 비장의 눈빛을 하며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유랑이 전력질주로 학교로 향하고 있을 때 멀리서 지켜보는 한 인영이 있었다.
산들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긴 머리, 선녀를 연상시키는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후훗, 나를 구해준 보답이야. 유랑.”
그녀는 바로 유랑이 짝사랑해오던 이민경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던 그는 교실의 분위기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와아! 유랑이다!”
“야 이 자식아. 그러니깐 우리가 깨워준다고 했잖아!”
그가 돌아오자 말자 교실의 분위기는 극도로 상승했다. 유랑이 들어오자말자 모두의 얼굴에 함박만한 미소가 번진 것이다.
“괜찮다. 늦게 일어나 지각할 수도 있는거지. 어서 자리에 앉거라.”
언제나 그에게 냉랭하며 무관심하던 선생님마저 그에게 극도의 관심을 표하는 것이었다. 유랑은 지금 상황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들어오나 마나 거들떠 보지 않던 사람들이…“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열어 수학책을 꺼내려 하던 그의 손은 경직되고 말았다.
‘아차, 아까 가방 던질 때 빠졌나보다.’
자신의 방에 가방을 내팽겨칠 때 가방이 열리면서 수학책이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같이 책을 볼 사람을 뒤졌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어, 유랑아? 혹시 책 가져오지 않았으면 나랑 같이 볼래?”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책을 같이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것도 귀까지 빨개진 채로.
그녀의 이름은 제갈린, 제갈 고등학교를 설립한 대기업 사장의 딸이었다.
그리고 여학생 중 유랑에게 가장 심한 모욕을 줬던 여학생이었다.
‘…이상하다. 내 얼굴이 바뀌면서 교우 관계까지 바뀐건가? 선생님까지 나에게 관심있는 눈치니 인간 관계까지도 180° 바뀌어버린거야?’
옛 기억 때문에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없어 그냥 무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갈린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책상을 유랑의 책상에 바짝 붙였다.
여자에게 전혀 면역이 없던 유랑은 자신의 옆으로 여자가 다가오자 붉어지는 얼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제갈린은 제갈 고등학교의 3대 미녀중 한명이다. 약간 보이쉬하면 면 때문에 여학생들에게까지 인기있는 그녀였다.
“자, 잘 부탁해.”
“어머, 유랑이 나한테 인사를 했어!”
제갈린의 놀란 외침과 함께 주위의 학생들이 모두 유랑을 주시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제갈린을 향해 질투와 분노가 섞인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더욱더 상황 파악이 안되던 유랑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냉랭하던 유랑이 인사를 하다니!”
“저렇게 자상한 면까지 있다니… 크윽, 부럽다!”
그들 딴엔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겠지만 유랑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내가 냉랭해? 자상한 면?“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유랑이었다. 지금 상황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추한 자신의 얼굴이 바뀐 것을 모르는 것부터 해서 인간 관계까지 뒤바껴 버린 지금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자자, 조용조용! 유랑아, 너가 이 소란의 주범인 듯 하니 나와보거라.”
조용히 자리에 일어난 유랑은 선생님이 계신 교탁 앞으로 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주위의 여학생들은 황홀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는 여학생까지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대단한 인기로구나. 일단은 너가 소란의 주범이니… 흐음, 이 문제를 칠판에 풀어보거라.”
‘허억!’
선생님이 자신에게 지시한 것은 칠판에 문제풀기. 그것도 고등학교 1학년 수-나 과정에서 가장 어렵다던 삼각함수 파트였다. 전에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좋지 않았던 그로서는 이런 고난이도 문제를 알 리가 없었다.
“저어, 선생님 잘 모르겠는데요?”
“뭐라고! 너 지금 선생님을 놀리는 거냐? 모의고사 전국 1등 녀석이 이깟 문제를 못 푼다는게!”
‘뭐, 뭐라고?’
자신이 모의고사 전국 1등이란다. 이건 또 왠 궤변이나 싶었던 그는 수학책에 있는 문제를 보았다. 그 때 자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의 섬광
그는 수학책을 든 채 분필을 집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과히 사람의 손놀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악탁탁탁
“다 풀었습니다.”
“역시 유랑이구나. 이렇게 고난이도 기출 문제를 1분도 안 되서 다 풀다니…”
순간 정신을 차린 유랑은 지금 자신이 한 일에 어리둥절 했다. 수학책을 들여 보다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말자 몸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역시 유랑이야!”
“제갈 고등학교 최고의 킹카답다!”
여기저기서 칭찬 소리가 들려오자 유랑은 쑥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유랑에겐 쑥스러워 얼굴을 붉힌 것이었지만 언제나 유랑과 같은 학우로 있던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랑에게 저렇게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
‘안돼. 반헤서는 안된다. 저 녀석은 우리와 같은 물건이 달린 종족이야!’
그의 얼굴 붉힘 한번으로 남학생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물론 유랑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 이건 아무래도 하늘이 나에게 주신 새로운 기회,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기회다. 하느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봐야지.’
머릿속으로 복잡하던 상황을 하느님께 감사하단 느낌으로 날려버린 그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많은 여학생들이 혼절했다는 것을 유랑은 몰랐다.
“유랑아 점심 같이 먹자!”
어느 덧 점심 시간, 모든 수업 시간 때 그를 보던 시선이 전과 달라졌다. 따뜻하고 인자하시다고 소문이 자자하시던 과학 선생님 마저 자신을 무시할 정도였는데 엄청나게 바뀌어버린 상황에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는 유랑이었다.
“저 그게… 나는 점심을 안 싸와서…”
“뭐라고?”
“정말이야?”
점심을 싸오지 않았다는 유랑의 말 한 마디와 함께 많은 여학생들이 고개를 돌리며 반문했다. 갑작스런 시선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떡여 긍정을 표했다.
“매일 도시락 2개씩을 싸오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바라는구나!”
“뭐야? 너도 매일 2개씩 싸왔어? 나도인데!”
갑자기 수많은 여학생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유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유랑, 내 도시락 먹어!”
“저런 맛 없는 도시락보다는 내 도시락이 훨씬 낫다구!”
많은 여학생들의 꽥꽥거림에 귀를 틀어막은 유랑에게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유랑, 우리 집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먹지 않을래?”
자신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수학 시간 때 책을 같이 보던 제갈린이었다. 그녀가 유랑에게 접근해오자 주위의 여학생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제갈린과 비교해 전체적으로 딸리는 자신의 모습에 한탄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이었다.
“으응, 고마워.”
“꺄아, 유랑이 내 도시락을 먹어준대!”
제갈린은 유랑이 자신의 도시락을 먹어준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팔짝 팔짝 뛰며 환호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랑을 제외한 모든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귀여워…’
제갈린을 향한 남학생들의 공통된 생각,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멀고도 먼 그녀였다.
제갈린의 행동에 남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던 그 때
“유랑아.”
유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석상처럼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은은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첫사랑, 짝사랑 이민경이었다.
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민경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저기 날 아는거야?”
유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질문을 내던졌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너! 어쩜 그럴수가 있니?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학교 모두가 인정한 사실인데!”
다시 한번 석상처럼 굳어지는 유랑이었다.
‘미, 민경이가 나를 좋아한다구?’
얼마나 꿈꿔왔던가. 자신이 민경이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그날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민경이 자신을 좋아하게 될 날을…
그런데 자신을 좋아한단다. 그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심장이 곤두박질 치는 느낌이었다.
“어머, 오늘 유랑답지 않게 표정이 많이 변하네. 무슨 일 있었나? 혹시 열 있는 거 아냐?”
또 한번 석상처럼 굳어지는 유랑이었다. 열을 잰다 치고 자신의 머리에 이마를 대는 민경의 태도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열은 없는 것 같구…,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거구나?”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
자신이 그녀를 대한 태도가 다소 어색했는지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그였다.
“나랑 옥상에 가서 같이 점심 먹지 않을래?”
“정말?”
같이 점심을 먹자는 민경의 제안에 그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뒷통수에 꽂히는 강렬한 느낌
‘내 도시락 먹기로 했으면서!’
유랑은 그 느낌이 찜찜해 뒤를 돌아보았다가 성급히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제갈린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 저 민경아, 바, 밥 먹으러 가자.”
“응!”
더욱더 뒤에 꽂히는 느낌이 강해졌지만 애써 담담한 척 하는 유랑이었다.
“맛있네.”
“그렇지? 내가 손수 만든거야.”
그는 민경이 손수 만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고대하고 고대하던 삶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그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랑… 왕따에서 킹카가 된 느낌은 어때?”
"푸웃! 너 어떻게?“
유랑은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변한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그녀가!
“어머, 설마 기억 안 나는거야? 그 때 꿈 말이야…”
“꿈?”
그는 자신이 쓰러져있던 기억을 잠시 되살려보았다. 분명 그는 배를 가격되어 기절했고… 깨어나니 온통 하얀 세상에 엄청난 빛 무리…!
그제서야 모든 것이 생각나는 유랑이었다.
‘그래. 분명 그 때 빛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히 여자였어.’
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자 민경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거야? 생각보다 바보네.”
민경의 말에 유랑은 놀란 나머지 손가락으로 민경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 그러면 설마 그 여자가 바로…!”
“그래. 너를 이렇게 만들어준 것도 바로 나, 이민경의 작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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