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십도 반전기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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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한 소년이 있다. 누구에게 얻어맞았는지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달빛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천하제일의 추남
모든 이들이 그의 얼굴을 본 후 공통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곳곳에 있는 상처를 떠나고서 그의 얼굴은 차마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눈, 심하게 뭉개져 있는 매부리코, 윗입술이 심하게 비틀어져 있는 입, 기름이 줄줄 흐르는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이것은 상식선을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왜 맞아야 되는 거지?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것이 뭐란 말이야.’
그는 같은 반 학우들에게 맞고 오는 길이었다.
아무 이유 없는 일방적인 구타
그는 왕따였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동네에서도…
달칵
집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대답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신발을 벗은 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목욕부터 해야겠군.’
쏴아아아
샤워기를 틀은 그는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있는 상처에 물이 스며들어가자 인상을 찌푸렸다.
샤워를 잠시 멈춘 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봐도 정말 역겨운 얼굴이었다. 이런 모습이 되게 한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때의 사고로 추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던 그였다. 잠시나마 부모님을 원망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샤워를 끝낸 그는 수건을 머리 위에 올린 채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넓은 거실을 걷던 그는 한 여인과 남자의 사진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엄마, 아빠, 나도 씻고 나면 그런데로 멋있지 않아? 뭐라고? 그래도 난 장동건 보다는 못 났다고? 큭큭, 엄마랑 아빠는 여전히 농담을 잘해. 이 정도면 미남이란 말이야.”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중얼거리던 그는 뭐가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이 아들은 맞고 돌아왔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은 편이었어. 갑자기 경찰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도망칠 수가 있었거든. 뭐 내일 학교에 가면 또 죽터지도록 맞겠지만…”
5년 전, 부모님과 함께 조부님의 산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묘에 절을 올린 탓인지 그의 아버지는 과음을 하고 말았다.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 묵고 가자는 자신의 제의를 객기 때문에 거절하던 아버지, 그로 인해 비극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정신이 멀쩡하다며 팔뚝을 걷어 올려 웃음을 짓던 아버지, 하지만 과음으로 인해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졸음 운전으로 차선을 넘어간 차는 고속으로 달려오던 콘테이너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 사고로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자신은 운 좋게도 차 밖으로 팅겨나와 살아 남았다. 그렇지만 폭발에 의한 화상과 땅에 떨어질 때 갈아버린 얼굴은 평생 간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도 엄마, 아빠 곁으로 가면 안될까? 그 때 이후 난 웃은 적도 없다? 이 추한 얼굴만 아니였으면 살아갈 재미도 있었을텐데… 외로워서… 정말 외로워서 미칠 것 같아.”
그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샘이 말라 더 이상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으음…”
커텐 사이로 비춰지는 햇빛이 그의 눈을 향해 내리쬐었다. 눈이 부신지 연신 눈을 비비다 서서히 눈을 떴다.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잠들어있지?’
어젯밤 샤워를 하고 난 뒤 거실로 나와 부모님과 대화를 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뒤에 감정을 주채할 수 없어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마 울다 지쳐 쓰러졌던 거구나.’
처음이었다. 울다가 잠이 든 것은… 어제 덜 맞았기 때문일까? 그는 언제나 엄청난 구타를 당한 뒤 집에 들어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구타에 의한 피곤함 때문이었을 것인데 어제는 많이 맞지를 않았기에 잠시나마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지옥에 갔다와야 하는군.”
대충 세수를 끝낸 그는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아직 학교에 가기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편을 좋아했기에 작은 토스트 하나를 물고 집을 나섰다.
그는 전력질주해 달렸다. 행여나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을 만난다면 학교에서 골치아파 지기 때문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괴롭히는 애들을 만나서가 아니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저 애는 분명 7반의 이민경!’
긴 머리를 나풀거리는 뒷 모습으로 보아 분명 이민경이 맞았다. 조그마한 앵두같은 입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에 약간 치켜올라가 다소 오만하게 보이는 눈,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3대 미녀로 알려진 이민경이 확실했다.
‘젠장할, 이런 모습을 보이면 정말 쪽팔리는데…’
확실히 지금 그의 모습은 군데군데 밴드를 붙여서 엉망이었다. 그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나란히 걷고 싶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같이 형편없는 남자랑 걷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녀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질까? 그 이전에 그녀가 자신을 거부할 것이다.
‘그냥 돌아서 갈까.’
하지만 그 길은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전에 한번 이런 경우가 있어서 돌아갔다가 그 애들을 만나 흠짓 두들겨 맞고 학교를 나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때의 악몽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지 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담벼락에 있는 고양이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고양이를 안고 싶은 걸까.’
민경은 부잣집 아가씨이다. 어렸을때부터 스파르타식의 귀족 예법을 배운 그녀이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기는커녕 만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담벼락에 있는 고양이를 만져보기 위해 두 손을 모아 고양이를 향해 내미는 중이었다.
‘귀, 귀엽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하늘에서 강림한 선녀 그 자체였다. 아직은 신체적으로 덜 발달해 어린 티가 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절세의 미인으로 손꼽힐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흘 하는 순간이었다.
빠아아앙
그가 걷고 있는 방향으로만 차가 갈 수 있는 일반통행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 방향으로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과음 운전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녀는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향해 트럭이 돌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위험해!’
뇌리에 위험 신호가 울리자말자 그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향해 달렸다.
부우우웅
콰아아아앙!
정말 종이 한 장의 간격차였다. 그녀를 안고 뒹굴자 말자 트럭은 옆에 전봇대에 부딪혔다. 트럭 운전자는 멀쩡한 듯 싶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내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얘, 얘들아 괜찮니?”
트럭 운전자는 그들을 향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아, 괜찮습니다. 별로 다친데도 없고…”
“저, 저도 괜찮아요.”
그녀는 많이 놀란 듯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이다. 트럭 운전자는 그들의 대답을 듣자말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찮다면 다행이구나. 혹시라도 문제가 있다면 이곳으로 연락하거라.”
그는 자신의 명함을 그들에게 나눠준 뒤에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으로 보아 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칠게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거는 것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
“저기 정말 괜찮니?”
“으응…”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그는 순간 아차 하는 심정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자 말자 짝사랑해 오던 상대와 처음으로 말을 주고 받은 것이다. 그는 갑자기 밀려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 아무 이상도 없다면 가볼게. 앞으로 조, 조심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가 왔던 방향으로 손쌀같이 달려가 버렸다.
“아, 저기 이거!”
민경은 그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어 전해줄려고 그를 불렀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까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떻게 이 물건을 찾아주지 하던 차에 그녀는 그 물건이 뭔지 보았다. 그것은 학생증, 그것도 자신과 같은 학교의 학생증이었다.
‘제갈 고등학교 1학년 5반 정유랑’
민경은 자신과 반이 가깝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1학년이 끝나는 동안 그와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거니와 이름 조차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생명의 은인 치고는 너무 못 생겼네. 천하제일의 추남이야…’
손쌀같이 그녀의 곁을 벗어난 유랑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췄다.
“헉헉, 그래도 오늘은 운이 조금 있는 모양이네. 민경이와 이야기도 해보고…”
유랑은 아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때까지의 불행이 갑자기 길해졌나 싶어 기분이 좋은 그였다.
‘오늘은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날 중 최고의 날이다!’
좋아하는 여자와 한번 이야기 했던 날을 최고의 날로 잡아버린 유랑이었다.
기분 좋게 걸어가던 그는 순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젠장! 이길은 그 녀석들이 가는 길이잖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라. 그가 생각하자말자 옆 골목에서 나타나는 한 떼의 무리들, 하나같이 준수한 외모의 남학생들이었다.
“하하하, 그러니깐 그 년이 내 눈빛 한방에 넘어오더라니깐?”
“임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 때 그 중 가장 키가 큰 남자와 유랑의 눈이 마주쳤다.
“앗! 추남이다!”
“정말이야?”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남자들이 유랑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느낌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의 날이라 생각했더니… 역시 나는 되는 것이 없구나.’
“여어, 유명한 추남이 아니냐? 이 길로 오지 말라는 우리의 말을 무시해?”
“야, 이참에 이 자식 아예 반쯤 죽여버리자.”
“저런 자식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유랑은 그들의 말에 두려움이 들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왜소하고 또한 둔하다. 매번 맞는 것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그는 맞는 것이 싫었다.
퍼어억
잠시 생각을 하던 유랑은 자신의 눈 앞에 별똥이 튀는 것을 느꼈다. 무리들 중 가장 키 큰 녀석이 안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유랑의 코에서 코피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캬, 어제 우리 어무이한테 잔소리 많이 들어서 열 받던 참에 잘 됐네.”
“이번에는 내가 칠래.”
퍼어억
순간 ‘내가 샌드백이냐?’ 라고 소리칠뻔 한 것을 가까스러 참은 유랑은 다시 한번 별똥이 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제… 젠장할!”
그의 입에서 욕짓거리가 나오자 순간 분위기가 사늘해졌다. 유랑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자식이 어디서 욕하고 지랄이야?”
“이때까지 봐주면서 때렸더니만!”
퍽퍽퍽퍽퍽퍽
듣기에도 거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6명이서 유랑을 이리저리 걷어차며 욕을 하고 있었다.
“야 그만해! 이러다 사람 죽이겠다.”
그 중 한 명이 사태가 심각해짐을 우려해 자신의 친구들에게 외쳤다.
“뭐 이정도면 정신을 차렸겠지. 야 이자식아 다음부터 조심해라. 알겠냐?”
그는 다시 한번 유랑의 배를 걷어차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유랑에게서는 묵묵답답이었다.
“이 자식이 내 말을 씹어?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잠깐!”
가장 키가 큰 녀석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 죽었나봐!”
“뭐야?”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들은 살인을 한 것이다. 아무리 재수없고 열 받는 놈이라도 죽여서는 안된다. 그 중 가장 침착한 녀석이 사태를 파악한 뒤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안 보고 있어. 이 틈에 도망가자!”
“그, 그래.”
도망가자는 말에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무리들은 전력질주로 뛰어가버렸다. 자신들이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등에 잔뜩 식은땀을 흘려가며 말이다.
‘이곳이 어디지?’
유랑은 지금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분명 그는 여러명의 발에 차이다가 배를 가격당한 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 세상이 눈에 덮힌 듯 새하얀 것이었다.
‘서, 설마 내가 죽은건가?’
그는 애써 부인할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록 생기는 것은 자신이 죽었다는 확신감 뿐이었다.
‘하아, 결국은 나도 죽은거군. 그럼 이제 엄마랑 아빠를 볼 수 있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의 등에 매여져 있던 짐들이 풀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공허함은 도대체 뭐지?’
한 쪽 구석이 텅빈 듯 했다. 마치 감정의 한 부분을 삭제 당한 듯…, 유랑은 이 공허함이 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나온 답은 하나였다.
‘이민경…’
그녀가 무엇이길래 죽은 그의 마음 속에 남는단 말인가.
그녀가 무엇이길래 죽은 자신을 편치 못하게 한단 말인가.
‘살고 싶다. 살아서 다시 한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미 그는 죽은 몸,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해도 한번 끊어진 목숨은 되찾아 올 수 없는 법이다.
‘살고 싶다. 더 살고 싶단 말이다!’
그는 외쳤다. 살고싶다라고… 살아서 다시 한번 그녀와 만나고 싶다고…
‘이제야… 이제야 그녀와 말을 나누었는데!’
그때였다. 주위의 새하얀 풍경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간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돋보기를 써서 눈 앞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은 유랑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유난히 많은 빛을 뿜는 존재를 보았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빛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여인의…
“너… 너는!”
천하제일의 추남
모든 이들이 그의 얼굴을 본 후 공통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곳곳에 있는 상처를 떠나고서 그의 얼굴은 차마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눈, 심하게 뭉개져 있는 매부리코, 윗입술이 심하게 비틀어져 있는 입, 기름이 줄줄 흐르는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이것은 상식선을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왜 맞아야 되는 거지?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것이 뭐란 말이야.’
그는 같은 반 학우들에게 맞고 오는 길이었다.
아무 이유 없는 일방적인 구타
그는 왕따였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동네에서도…
달칵
집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대답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신발을 벗은 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목욕부터 해야겠군.’
쏴아아아
샤워기를 틀은 그는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있는 상처에 물이 스며들어가자 인상을 찌푸렸다.
샤워를 잠시 멈춘 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봐도 정말 역겨운 얼굴이었다. 이런 모습이 되게 한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때의 사고로 추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던 그였다. 잠시나마 부모님을 원망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샤워를 끝낸 그는 수건을 머리 위에 올린 채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넓은 거실을 걷던 그는 한 여인과 남자의 사진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엄마, 아빠, 나도 씻고 나면 그런데로 멋있지 않아? 뭐라고? 그래도 난 장동건 보다는 못 났다고? 큭큭, 엄마랑 아빠는 여전히 농담을 잘해. 이 정도면 미남이란 말이야.”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중얼거리던 그는 뭐가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이 아들은 맞고 돌아왔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은 편이었어. 갑자기 경찰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도망칠 수가 있었거든. 뭐 내일 학교에 가면 또 죽터지도록 맞겠지만…”
5년 전, 부모님과 함께 조부님의 산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묘에 절을 올린 탓인지 그의 아버지는 과음을 하고 말았다.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 묵고 가자는 자신의 제의를 객기 때문에 거절하던 아버지, 그로 인해 비극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정신이 멀쩡하다며 팔뚝을 걷어 올려 웃음을 짓던 아버지, 하지만 과음으로 인해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졸음 운전으로 차선을 넘어간 차는 고속으로 달려오던 콘테이너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 사고로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자신은 운 좋게도 차 밖으로 팅겨나와 살아 남았다. 그렇지만 폭발에 의한 화상과 땅에 떨어질 때 갈아버린 얼굴은 평생 간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도 엄마, 아빠 곁으로 가면 안될까? 그 때 이후 난 웃은 적도 없다? 이 추한 얼굴만 아니였으면 살아갈 재미도 있었을텐데… 외로워서… 정말 외로워서 미칠 것 같아.”
그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샘이 말라 더 이상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으음…”
커텐 사이로 비춰지는 햇빛이 그의 눈을 향해 내리쬐었다. 눈이 부신지 연신 눈을 비비다 서서히 눈을 떴다.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잠들어있지?’
어젯밤 샤워를 하고 난 뒤 거실로 나와 부모님과 대화를 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뒤에 감정을 주채할 수 없어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마 울다 지쳐 쓰러졌던 거구나.’
처음이었다. 울다가 잠이 든 것은… 어제 덜 맞았기 때문일까? 그는 언제나 엄청난 구타를 당한 뒤 집에 들어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구타에 의한 피곤함 때문이었을 것인데 어제는 많이 맞지를 않았기에 잠시나마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지옥에 갔다와야 하는군.”
대충 세수를 끝낸 그는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아직 학교에 가기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편을 좋아했기에 작은 토스트 하나를 물고 집을 나섰다.
그는 전력질주해 달렸다. 행여나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을 만난다면 학교에서 골치아파 지기 때문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괴롭히는 애들을 만나서가 아니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저 애는 분명 7반의 이민경!’
긴 머리를 나풀거리는 뒷 모습으로 보아 분명 이민경이 맞았다. 조그마한 앵두같은 입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에 약간 치켜올라가 다소 오만하게 보이는 눈,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3대 미녀로 알려진 이민경이 확실했다.
‘젠장할, 이런 모습을 보이면 정말 쪽팔리는데…’
확실히 지금 그의 모습은 군데군데 밴드를 붙여서 엉망이었다. 그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나란히 걷고 싶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같이 형편없는 남자랑 걷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녀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질까? 그 이전에 그녀가 자신을 거부할 것이다.
‘그냥 돌아서 갈까.’
하지만 그 길은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전에 한번 이런 경우가 있어서 돌아갔다가 그 애들을 만나 흠짓 두들겨 맞고 학교를 나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때의 악몽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지 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담벼락에 있는 고양이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고양이를 안고 싶은 걸까.’
민경은 부잣집 아가씨이다. 어렸을때부터 스파르타식의 귀족 예법을 배운 그녀이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기는커녕 만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담벼락에 있는 고양이를 만져보기 위해 두 손을 모아 고양이를 향해 내미는 중이었다.
‘귀, 귀엽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하늘에서 강림한 선녀 그 자체였다. 아직은 신체적으로 덜 발달해 어린 티가 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절세의 미인으로 손꼽힐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흘 하는 순간이었다.
빠아아앙
그가 걷고 있는 방향으로만 차가 갈 수 있는 일반통행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 방향으로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과음 운전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녀는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향해 트럭이 돌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위험해!’
뇌리에 위험 신호가 울리자말자 그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향해 달렸다.
부우우웅
콰아아아앙!
정말 종이 한 장의 간격차였다. 그녀를 안고 뒹굴자 말자 트럭은 옆에 전봇대에 부딪혔다. 트럭 운전자는 멀쩡한 듯 싶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내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얘, 얘들아 괜찮니?”
트럭 운전자는 그들을 향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아, 괜찮습니다. 별로 다친데도 없고…”
“저, 저도 괜찮아요.”
그녀는 많이 놀란 듯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이다. 트럭 운전자는 그들의 대답을 듣자말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찮다면 다행이구나. 혹시라도 문제가 있다면 이곳으로 연락하거라.”
그는 자신의 명함을 그들에게 나눠준 뒤에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으로 보아 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칠게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거는 것이 그들의 눈에 보였다.
“저기 정말 괜찮니?”
“으응…”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그는 순간 아차 하는 심정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자 말자 짝사랑해 오던 상대와 처음으로 말을 주고 받은 것이다. 그는 갑자기 밀려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 아무 이상도 없다면 가볼게. 앞으로 조, 조심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가 왔던 방향으로 손쌀같이 달려가 버렸다.
“아, 저기 이거!”
민경은 그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어 전해줄려고 그를 불렀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까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떻게 이 물건을 찾아주지 하던 차에 그녀는 그 물건이 뭔지 보았다. 그것은 학생증, 그것도 자신과 같은 학교의 학생증이었다.
‘제갈 고등학교 1학년 5반 정유랑’
민경은 자신과 반이 가깝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1학년이 끝나는 동안 그와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거니와 이름 조차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생명의 은인 치고는 너무 못 생겼네. 천하제일의 추남이야…’
손쌀같이 그녀의 곁을 벗어난 유랑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췄다.
“헉헉, 그래도 오늘은 운이 조금 있는 모양이네. 민경이와 이야기도 해보고…”
유랑은 아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때까지의 불행이 갑자기 길해졌나 싶어 기분이 좋은 그였다.
‘오늘은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날 중 최고의 날이다!’
좋아하는 여자와 한번 이야기 했던 날을 최고의 날로 잡아버린 유랑이었다.
기분 좋게 걸어가던 그는 순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젠장! 이길은 그 녀석들이 가는 길이잖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라. 그가 생각하자말자 옆 골목에서 나타나는 한 떼의 무리들, 하나같이 준수한 외모의 남학생들이었다.
“하하하, 그러니깐 그 년이 내 눈빛 한방에 넘어오더라니깐?”
“임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 때 그 중 가장 키가 큰 남자와 유랑의 눈이 마주쳤다.
“앗! 추남이다!”
“정말이야?”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남자들이 유랑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느낌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의 날이라 생각했더니… 역시 나는 되는 것이 없구나.’
“여어, 유명한 추남이 아니냐? 이 길로 오지 말라는 우리의 말을 무시해?”
“야, 이참에 이 자식 아예 반쯤 죽여버리자.”
“저런 자식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유랑은 그들의 말에 두려움이 들었다. 그는 신체적으로 왜소하고 또한 둔하다. 매번 맞는 것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그는 맞는 것이 싫었다.
퍼어억
잠시 생각을 하던 유랑은 자신의 눈 앞에 별똥이 튀는 것을 느꼈다. 무리들 중 가장 키 큰 녀석이 안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유랑의 코에서 코피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캬, 어제 우리 어무이한테 잔소리 많이 들어서 열 받던 참에 잘 됐네.”
“이번에는 내가 칠래.”
퍼어억
순간 ‘내가 샌드백이냐?’ 라고 소리칠뻔 한 것을 가까스러 참은 유랑은 다시 한번 별똥이 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제… 젠장할!”
그의 입에서 욕짓거리가 나오자 순간 분위기가 사늘해졌다. 유랑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자식이 어디서 욕하고 지랄이야?”
“이때까지 봐주면서 때렸더니만!”
퍽퍽퍽퍽퍽퍽
듣기에도 거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6명이서 유랑을 이리저리 걷어차며 욕을 하고 있었다.
“야 그만해! 이러다 사람 죽이겠다.”
그 중 한 명이 사태가 심각해짐을 우려해 자신의 친구들에게 외쳤다.
“뭐 이정도면 정신을 차렸겠지. 야 이자식아 다음부터 조심해라. 알겠냐?”
그는 다시 한번 유랑의 배를 걷어차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유랑에게서는 묵묵답답이었다.
“이 자식이 내 말을 씹어?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잠깐!”
가장 키가 큰 녀석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 죽었나봐!”
“뭐야?”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들은 살인을 한 것이다. 아무리 재수없고 열 받는 놈이라도 죽여서는 안된다. 그 중 가장 침착한 녀석이 사태를 파악한 뒤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안 보고 있어. 이 틈에 도망가자!”
“그, 그래.”
도망가자는 말에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무리들은 전력질주로 뛰어가버렸다. 자신들이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등에 잔뜩 식은땀을 흘려가며 말이다.
‘이곳이 어디지?’
유랑은 지금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분명 그는 여러명의 발에 차이다가 배를 가격당한 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 세상이 눈에 덮힌 듯 새하얀 것이었다.
‘서, 설마 내가 죽은건가?’
그는 애써 부인할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록 생기는 것은 자신이 죽었다는 확신감 뿐이었다.
‘하아, 결국은 나도 죽은거군. 그럼 이제 엄마랑 아빠를 볼 수 있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의 등에 매여져 있던 짐들이 풀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공허함은 도대체 뭐지?’
한 쪽 구석이 텅빈 듯 했다. 마치 감정의 한 부분을 삭제 당한 듯…, 유랑은 이 공허함이 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나온 답은 하나였다.
‘이민경…’
그녀가 무엇이길래 죽은 그의 마음 속에 남는단 말인가.
그녀가 무엇이길래 죽은 자신을 편치 못하게 한단 말인가.
‘살고 싶다. 살아서 다시 한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미 그는 죽은 몸,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해도 한번 끊어진 목숨은 되찾아 올 수 없는 법이다.
‘살고 싶다. 더 살고 싶단 말이다!’
그는 외쳤다. 살고싶다라고… 살아서 다시 한번 그녀와 만나고 싶다고…
‘이제야… 이제야 그녀와 말을 나누었는데!’
그때였다. 주위의 새하얀 풍경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간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돋보기를 써서 눈 앞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은 유랑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유난히 많은 빛을 뿜는 존재를 보았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빛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여인의…
“너…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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