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靑月] 그리고 월계계승전[月界繼承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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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그리고 또 파괴만이 존재할 뿐이죠."
어둠속에서 시엘은 그렇게 말했다. 뮤리엘은 아무소리 없이 그런 그녀의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씩 붉은 노을을 재치고 밀려드는 어둠을 보면서 시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하늘을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용서할 수 없어요. 스스로를 파괴하는 짓이란 것은.."
"집정관님.. 하지만 이미 예정된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만 남아야할 세계. 그 둘의 공존을 예로부터 세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초적인 자리부터가 흔들리고 있던 공중누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할 뿐인 것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그들역시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알게된 신이시라면, 결코 파괴를 원치 않으실 껍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배신한 악마라 하실지라도.."
그러자 뮤리엘은 의미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시엘이 바라보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시엘처럼 하늘을 움켜잡으면서 다시한번 말했다.
"악마를 구원하려하다니. 왠지 위험하군요. 그것은.."
"예.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께서 바라시는 일일지도 몰라요. 결코 그들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끝에 심판을 받겠죠.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것이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그러자 뮤리엘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짓는 얼굴로 시엘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시엘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시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그때 그대로군요. 집정관님께서는.."
"무.. 뮤리엘 무슨!?"
"화내지 마세요. 그동안 집정관님을 바라보고 왔었으니까. 이번만큼은 용서해주시라구요."
뮤리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시엘은 빨갛게 물들어 버린 얼굴을 홱 돌리면서 가볍게 콧소리를 내고서는 토라져 버렸다. 뮤리엘은 오랫만에 시엘의 귀여운 모습을 보았는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여전히 그녀의 곁에 서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어둠에 물들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사라져 있다. 가로등이 켜지고, 황색의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신형을 띄운다. 가로등을 밟고, 건물을 뛰어넘고, 허공위로 도약하면서 그 두사람의 그림자는 멀어져갔다.
"오라버니 괜찮겠습니까?"
어느새 완전히 저물어 버린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자, 검붉은 머리빛의 여성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나, 걱정의 대상은 신발끈을 동여매고, 하얀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어 보이고서는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낡아보이는 막대기를 꺼내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아키하. 이전처럼 금방 돌아올께."
그러나 여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는 손을 꼭 부여 잡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발.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이제 얼마 사실 수 없으니까요. 부디 그 동안이라도 편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주시면 안될까요?"
여성의 부탁은 너무도 당연했다. 남자의 생명력은 점점 닳아지고, 마모되고, 떨어져서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13년전.. 사고로 인한 부상은 그의 생명을.. 즉, 수명을 앗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아키하도, 알퀘이드도 선배도 모두다.. 어둠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어. 나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밝은 햇살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키하.. 나 사실은 알고 있었어. 네가 매일매일 나의 뒤를 따라왔다는 것을.."
남자는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여성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낮게 흐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 서러운 목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래. 하지만 더 이상 홀로 괴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다들 말야."
"그래서.. 그래서 당신이 미운겁니다. 어둠속에서 밝게 비춰주는 당신이.. 너무도 그리운 거니까.."
"......"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성은 눈가를 훔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검붉은 머릿결을 한차례 털어내고서는 곧 다시 평상시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상시답게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오늘은 다녀올께요. 오라버니를 따라서가 아닌.. 저의 의미를 찾아서.."
여성은 그대로 남자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검붉은 머릿결이 더욱 붉어졌다. 남자도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여성의 뒤를 따랐다. 이제까지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두 사람을 어둠속으로 녹아들어갔다.
***
"츠카앙!"
강렬한 충격파가 고막을 강타했다. 모두가 귀를 막을 정도의 충격파는 주위의 대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멈춰섰다. 그리고 그 멈춰선 곳에는 거대한 총검을 지켜세운 소녀가 버티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에서는 푸른 불꽃을 일렁이면서 상대를 노려봤다. 다시 엄습하는 충격파와 곧바로 뛰어오르는 소녀의 그림자 사이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총검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조차도 찢어버리고, 대지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녀의 그림자는 더욱 높이 치솟았다. 어두운 하늘에 녹은 듯이 소녀의 그림자는 비취지 않고, 여기저기서 은빛의 화살이 뒤엎어진 지면에 밖히고서는 타올라 버렸다.
"크워엉!"
"다시 나타나신 건가요? 데스트로이어 크로우.."
흑 사자는 다시 거대하게 표효했다. 이번에는 충격파 대신 날카로운 비침들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올라갔다. 푸른 달빛에 빛나는 비침들은 마치 둥그런 막처럼 펴져나왔다. 하지만 소녀는 검을 강하게 회전시켜 쏘아내며 비침을 걷어냈다. 그리고 다시 은빛의 검을 쏘아내어 대지를 불태워 버린다.
활활 타오르는 대지.. 그 사이로 보이는 검은 맹수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서는 사라져 버린다. 소녀는 가만히 사라져가는 맹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총검의 손잡이를 놓자, 곧 총검은 법의로 바뀌어 그녀의 몸에 입혀졌다.
"도망쳤군요. 역시 자신보다 상위의 마(魔)가 나타났다는 것입니까?"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록빛과 청색의 눈이 있었다. 한 때는 자신이 사랑했었던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 그러나 차가운 냉소를 머금은 그 아이의 눈길에서는 그 때의 사랑스러움은 온데간데 없고, 다만 전혀 모르는 타인의 눈빛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루시퍼."
소녀의 말에 아이는 날개를 살포시 접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소녀의 앞에 서서 소녀의 얼굴을 올려다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야."
"그렇군요. 당신도 저도 초면은 아닙니다."
"그래. 그렇구나. 초면은 아닌가봐. 그렇지만 이제는 적인걸? 서로 죽고 죽여야하는 그런 관계지."
그렇게 말하고서 아이는 날개를 거칠게 펼친다. 그러자 소녀는 빠르게 아이의 머리위로 튀어올라서 아이의 등을 가격하려고 발을 내 뻗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아이의 몸은 소녀를 따라서 튀어올라, 소녀의 등을 보고 있었다.
"Bingo."
아이의 주먹은 소녀의 등 한가운데에 작렬했고, 소녀의 신형은 땅바닥에 거칠게 내팽게쳐져 버렸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낮추었다. 아이는 싱긋 웃으면서 손을 털었다. 그리고는 날개를 살짝 접으면서 입을 열었다.
"희한한 느낌이야. 너와의 싸움은 뭔가가 그리워.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때려 놓고서 하실 말씀은 아니죠?"
소녀의 신형은 금방 아이의 얼굴 앞으로 나타나서 아이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그러나 아이는 두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가벼운 몸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서 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쿠웅~"
"아야야.. 힘이 좋구나."
"가녀린 소녀에게 쓸만한 단어는 아니군요. 그냥 스타일이 좋다던가겠죠."
"쿡쿡. 그래."
아이의 모습은 또 다시 사라지고 소녀의 신형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몇차례 울리는 금속음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튀어오르는 불꽃, 그리고 은은히 풍겨나는 혈향은 푸른 달빛 보다도 더욱 진한 마력을 내뿜었다. 곧 소녀의 신형이 지면에 착지하고, 아이의 모습도 반대편에 등을 돌린채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아프네. 마치 내 움직임을 알고 있어?"
"초면이 아니니까요. 그러는 당신도 저의 움직임을 알 수 있죠?"
"초면이 아니란거. 이런때는 머리아파져와."
아이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곧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녀는 그대로 서 있다가 쓰러져 버렸다. 쓰러져 가는 소녀의 등 한가운데에는 작은 깃털 하나가 다트처럼 밖혀 있었다. 소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등으로 손을 뻗어서 깃털을 던졌다.
"재생능력이.. 없어졌네."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눈을 감았다. 달빛 사이로 다시 붉은 하늘이 스며들어왔다. 또 다시 떠오르는 햇살, 소녀는 등을 하늘로 돌린채 맞이했다.
***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소녀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드디어 스스로가 인간다운 몸을 얻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재생능력이 사라진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었다. 밤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모두는 청월의 악마들을 만났다.
"위험하네요. 토오노군."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석은 그다지.."
그러자 알퀘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조심하는게 좋아. 악마들은 나처럼 순수한 진조들보다는 약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녀석들은 아냐. 녀석들의 간섭현상은 진조를 제외하고서는 최고의 위력을 자랑한다고."
"......"
"아키하? 괜찮아? 아까 전부터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아보여."
시키는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키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아키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억지로 만든 웃음을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억지라는 것이 분명할 만큼의 티나는 웃음을, 하지만 아무도 묻지는 않았다.
"무리하지는 말아줘."
"응. 고마워요. 시키 오라버니."
"자아! 궁둥이 시엘이 드디어 나의 모든 힘을 돌려주었으니! 건배애!"
그러자 시엘은 흑건을 사뿐히 알퀘이드의 머리에 던져버리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캉~"
"요괴 고양이는 조용히하세요."
"무읏! 아프잖아!"
알퀘이드는 머리를 두손으로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키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잔을 들고서는 입을 열었다.
"솔직히 검을 머리에 맞고서 일어나는 네가 더 무서워."
"이.. 시키도 날 바보 취급해!"
"에이~ 설마~"
시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푸른빛의 음료수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순간, 시키는 입을 부여잡고서는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알퀘이드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시키를 들어 올렸다.
"어때? 시키?"
"무.. 무슨 짓을 한거야!?"
"간단해. 시엘의 음료와 바꿔치기.."
그 말을 들은순간 시키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곧 들려오는 분노의 목소리가 있었다.
"어째서 기절따위를 하는거죠? 설마하니 사람이 먹을게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그렇지. 시키는 엄연히 보통의 사람인데. 먹고서 저리 된 것을 보면 말야."
알퀘이드는 씨익 웃으면서 시엘을 바라보았다. 시엘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곧 옆쪽의 황색빛의 음료를 들이 마셨다. 그리고는 곧 시키처럼 쓰러지면서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퀘이드는 역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어때? 시엘?"
"다.. 당신이.."
"응. 그거 내 음료야."
그리고 시엘도 역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키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음지었다. 알퀘이드는 아키하를 바라보고서는 곧 시엘이 마시다만 자신의 음료를 들이키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여동생?"
"그러니까 여동생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무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힘은 푸른 달에 가까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너 자신을 잃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힘들어져."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이 피의 힘은.."
"..나도 항상 그런 느낌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래서 너무도 고통스러워. 하지만 아무도 잡아주지는 못해. 그냥 이겨내야 하는거야."
알퀘이드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음료를 마셨다. 아키하는 가만히 자신의 음료를 마시면서 침묵했다. 알퀘이드는 다시 다른 잔을 집어서 음료를 마시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래. 누구나 다 그런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 시키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시엘은 그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 있겠지."
"놀랍군요. 당신이 그런 생각까지 할 줄이야."
"나 그래도 공주로서의 기본지식은 배웠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쯤이야.."
그러자 아키하는 음료를 완전히 마시고서는 부러운 듯한 눈초리로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알퀘이드는 그런 아키하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음료가 든 컵을 살살 흔들고만 있었다. 아키하는 곧 입을 열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오라버니는 당신을 좋아했으니까요."
"응? 뭘?"
"당신이라면 자신을 잊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당신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무.."
아키하는 마침내 울고 있었다. 알퀘이드는 멍한 표정으로 아키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라버니의 수명은 이제 길어봐야 2년? 그래요. 그래서 오라버니는 그대로 살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서. 하지만 당신을 만난 뒤로부터는 달라져 버렸어요. 너무도 많은 것을 남겨버렸어요. 이제 그를 떠나보내기 싫을 정도로."
"......"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제발 이대로 살아주셨으면 했었어요. 그래서.."
"착하네. 여동생은? 매일매일 심술만 부리는 줄 알았더니 말야?"
알퀘이드는 밑빠진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아키하도 멍하니 알퀘이드를 바라보다가 곧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안돼겠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남길 것입니다. 후회 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 그런거야. 시엘 녀석이 말했었었지. '후회는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두려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라고 말야."
짧게만 느껴지는 한낮에, 그렇게 또 한번의 삶의 정의를 내렸다. 이젠 마지막이라고 느끼면서도, 결코 끝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어둠속에서 시엘은 그렇게 말했다. 뮤리엘은 아무소리 없이 그런 그녀의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씩 붉은 노을을 재치고 밀려드는 어둠을 보면서 시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하늘을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용서할 수 없어요. 스스로를 파괴하는 짓이란 것은.."
"집정관님.. 하지만 이미 예정된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만 남아야할 세계. 그 둘의 공존을 예로부터 세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초적인 자리부터가 흔들리고 있던 공중누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할 뿐인 것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그들역시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알게된 신이시라면, 결코 파괴를 원치 않으실 껍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배신한 악마라 하실지라도.."
그러자 뮤리엘은 의미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시엘이 바라보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시엘처럼 하늘을 움켜잡으면서 다시한번 말했다.
"악마를 구원하려하다니. 왠지 위험하군요. 그것은.."
"예.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께서 바라시는 일일지도 몰라요. 결코 그들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끝에 심판을 받겠죠.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것이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그러자 뮤리엘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짓는 얼굴로 시엘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시엘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시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그때 그대로군요. 집정관님께서는.."
"무.. 뮤리엘 무슨!?"
"화내지 마세요. 그동안 집정관님을 바라보고 왔었으니까. 이번만큼은 용서해주시라구요."
뮤리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시엘은 빨갛게 물들어 버린 얼굴을 홱 돌리면서 가볍게 콧소리를 내고서는 토라져 버렸다. 뮤리엘은 오랫만에 시엘의 귀여운 모습을 보았는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여전히 그녀의 곁에 서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어둠에 물들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사라져 있다. 가로등이 켜지고, 황색의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신형을 띄운다. 가로등을 밟고, 건물을 뛰어넘고, 허공위로 도약하면서 그 두사람의 그림자는 멀어져갔다.
"오라버니 괜찮겠습니까?"
어느새 완전히 저물어 버린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자, 검붉은 머리빛의 여성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나, 걱정의 대상은 신발끈을 동여매고, 하얀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어 보이고서는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낡아보이는 막대기를 꺼내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아키하. 이전처럼 금방 돌아올께."
그러나 여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는 손을 꼭 부여 잡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발.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이제 얼마 사실 수 없으니까요. 부디 그 동안이라도 편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주시면 안될까요?"
여성의 부탁은 너무도 당연했다. 남자의 생명력은 점점 닳아지고, 마모되고, 떨어져서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13년전.. 사고로 인한 부상은 그의 생명을.. 즉, 수명을 앗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아키하도, 알퀘이드도 선배도 모두다.. 어둠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어. 나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밝은 햇살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키하.. 나 사실은 알고 있었어. 네가 매일매일 나의 뒤를 따라왔다는 것을.."
남자는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여성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낮게 흐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 서러운 목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래. 하지만 더 이상 홀로 괴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다들 말야."
"그래서.. 그래서 당신이 미운겁니다. 어둠속에서 밝게 비춰주는 당신이.. 너무도 그리운 거니까.."
"......"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성은 눈가를 훔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검붉은 머릿결을 한차례 털어내고서는 곧 다시 평상시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상시답게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오늘은 다녀올께요. 오라버니를 따라서가 아닌.. 저의 의미를 찾아서.."
여성은 그대로 남자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검붉은 머릿결이 더욱 붉어졌다. 남자도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여성의 뒤를 따랐다. 이제까지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두 사람을 어둠속으로 녹아들어갔다.
***
"츠카앙!"
강렬한 충격파가 고막을 강타했다. 모두가 귀를 막을 정도의 충격파는 주위의 대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멈춰섰다. 그리고 그 멈춰선 곳에는 거대한 총검을 지켜세운 소녀가 버티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에서는 푸른 불꽃을 일렁이면서 상대를 노려봤다. 다시 엄습하는 충격파와 곧바로 뛰어오르는 소녀의 그림자 사이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총검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조차도 찢어버리고, 대지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녀의 그림자는 더욱 높이 치솟았다. 어두운 하늘에 녹은 듯이 소녀의 그림자는 비취지 않고, 여기저기서 은빛의 화살이 뒤엎어진 지면에 밖히고서는 타올라 버렸다.
"크워엉!"
"다시 나타나신 건가요? 데스트로이어 크로우.."
흑 사자는 다시 거대하게 표효했다. 이번에는 충격파 대신 날카로운 비침들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올라갔다. 푸른 달빛에 빛나는 비침들은 마치 둥그런 막처럼 펴져나왔다. 하지만 소녀는 검을 강하게 회전시켜 쏘아내며 비침을 걷어냈다. 그리고 다시 은빛의 검을 쏘아내어 대지를 불태워 버린다.
활활 타오르는 대지.. 그 사이로 보이는 검은 맹수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서는 사라져 버린다. 소녀는 가만히 사라져가는 맹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총검의 손잡이를 놓자, 곧 총검은 법의로 바뀌어 그녀의 몸에 입혀졌다.
"도망쳤군요. 역시 자신보다 상위의 마(魔)가 나타났다는 것입니까?"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록빛과 청색의 눈이 있었다. 한 때는 자신이 사랑했었던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 그러나 차가운 냉소를 머금은 그 아이의 눈길에서는 그 때의 사랑스러움은 온데간데 없고, 다만 전혀 모르는 타인의 눈빛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루시퍼."
소녀의 말에 아이는 날개를 살포시 접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소녀의 앞에 서서 소녀의 얼굴을 올려다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야."
"그렇군요. 당신도 저도 초면은 아닙니다."
"그래. 그렇구나. 초면은 아닌가봐. 그렇지만 이제는 적인걸? 서로 죽고 죽여야하는 그런 관계지."
그렇게 말하고서 아이는 날개를 거칠게 펼친다. 그러자 소녀는 빠르게 아이의 머리위로 튀어올라서 아이의 등을 가격하려고 발을 내 뻗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아이의 몸은 소녀를 따라서 튀어올라, 소녀의 등을 보고 있었다.
"Bingo."
아이의 주먹은 소녀의 등 한가운데에 작렬했고, 소녀의 신형은 땅바닥에 거칠게 내팽게쳐져 버렸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낮추었다. 아이는 싱긋 웃으면서 손을 털었다. 그리고는 날개를 살짝 접으면서 입을 열었다.
"희한한 느낌이야. 너와의 싸움은 뭔가가 그리워.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때려 놓고서 하실 말씀은 아니죠?"
소녀의 신형은 금방 아이의 얼굴 앞으로 나타나서 아이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그러나 아이는 두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가벼운 몸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서 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쿠웅~"
"아야야.. 힘이 좋구나."
"가녀린 소녀에게 쓸만한 단어는 아니군요. 그냥 스타일이 좋다던가겠죠."
"쿡쿡. 그래."
아이의 모습은 또 다시 사라지고 소녀의 신형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몇차례 울리는 금속음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튀어오르는 불꽃, 그리고 은은히 풍겨나는 혈향은 푸른 달빛 보다도 더욱 진한 마력을 내뿜었다. 곧 소녀의 신형이 지면에 착지하고, 아이의 모습도 반대편에 등을 돌린채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아프네. 마치 내 움직임을 알고 있어?"
"초면이 아니니까요. 그러는 당신도 저의 움직임을 알 수 있죠?"
"초면이 아니란거. 이런때는 머리아파져와."
아이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곧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녀는 그대로 서 있다가 쓰러져 버렸다. 쓰러져 가는 소녀의 등 한가운데에는 작은 깃털 하나가 다트처럼 밖혀 있었다. 소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는 등으로 손을 뻗어서 깃털을 던졌다.
"재생능력이.. 없어졌네."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눈을 감았다. 달빛 사이로 다시 붉은 하늘이 스며들어왔다. 또 다시 떠오르는 햇살, 소녀는 등을 하늘로 돌린채 맞이했다.
***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소녀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드디어 스스로가 인간다운 몸을 얻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재생능력이 사라진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었다. 밤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모두는 청월의 악마들을 만났다.
"위험하네요. 토오노군."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석은 그다지.."
그러자 알퀘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조심하는게 좋아. 악마들은 나처럼 순수한 진조들보다는 약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녀석들은 아냐. 녀석들의 간섭현상은 진조를 제외하고서는 최고의 위력을 자랑한다고."
"......"
"아키하? 괜찮아? 아까 전부터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아보여."
시키는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키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아키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억지로 만든 웃음을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억지라는 것이 분명할 만큼의 티나는 웃음을, 하지만 아무도 묻지는 않았다.
"무리하지는 말아줘."
"응. 고마워요. 시키 오라버니."
"자아! 궁둥이 시엘이 드디어 나의 모든 힘을 돌려주었으니! 건배애!"
그러자 시엘은 흑건을 사뿐히 알퀘이드의 머리에 던져버리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캉~"
"요괴 고양이는 조용히하세요."
"무읏! 아프잖아!"
알퀘이드는 머리를 두손으로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키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잔을 들고서는 입을 열었다.
"솔직히 검을 머리에 맞고서 일어나는 네가 더 무서워."
"이.. 시키도 날 바보 취급해!"
"에이~ 설마~"
시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푸른빛의 음료수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순간, 시키는 입을 부여잡고서는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알퀘이드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시키를 들어 올렸다.
"어때? 시키?"
"무.. 무슨 짓을 한거야!?"
"간단해. 시엘의 음료와 바꿔치기.."
그 말을 들은순간 시키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곧 들려오는 분노의 목소리가 있었다.
"어째서 기절따위를 하는거죠? 설마하니 사람이 먹을게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그렇지. 시키는 엄연히 보통의 사람인데. 먹고서 저리 된 것을 보면 말야."
알퀘이드는 씨익 웃으면서 시엘을 바라보았다. 시엘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곧 옆쪽의 황색빛의 음료를 들이 마셨다. 그리고는 곧 시키처럼 쓰러지면서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퀘이드는 역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어때? 시엘?"
"다.. 당신이.."
"응. 그거 내 음료야."
그리고 시엘도 역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키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음지었다. 알퀘이드는 아키하를 바라보고서는 곧 시엘이 마시다만 자신의 음료를 들이키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여동생?"
"그러니까 여동생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무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힘은 푸른 달에 가까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너 자신을 잃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힘들어져."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이 피의 힘은.."
"..나도 항상 그런 느낌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래서 너무도 고통스러워. 하지만 아무도 잡아주지는 못해. 그냥 이겨내야 하는거야."
알퀘이드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음료를 마셨다. 아키하는 가만히 자신의 음료를 마시면서 침묵했다. 알퀘이드는 다시 다른 잔을 집어서 음료를 마시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래. 누구나 다 그런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 시키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시엘은 그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 있겠지."
"놀랍군요. 당신이 그런 생각까지 할 줄이야."
"나 그래도 공주로서의 기본지식은 배웠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쯤이야.."
그러자 아키하는 음료를 완전히 마시고서는 부러운 듯한 눈초리로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알퀘이드는 그런 아키하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음료가 든 컵을 살살 흔들고만 있었다. 아키하는 곧 입을 열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오라버니는 당신을 좋아했으니까요."
"응? 뭘?"
"당신이라면 자신을 잊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당신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무.."
아키하는 마침내 울고 있었다. 알퀘이드는 멍한 표정으로 아키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라버니의 수명은 이제 길어봐야 2년? 그래요. 그래서 오라버니는 그대로 살아왔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서. 하지만 당신을 만난 뒤로부터는 달라져 버렸어요. 너무도 많은 것을 남겨버렸어요. 이제 그를 떠나보내기 싫을 정도로."
"......"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제발 이대로 살아주셨으면 했었어요. 그래서.."
"착하네. 여동생은? 매일매일 심술만 부리는 줄 알았더니 말야?"
알퀘이드는 밑빠진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아키하도 멍하니 알퀘이드를 바라보다가 곧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안돼겠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남길 것입니다. 후회 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 그런거야. 시엘 녀석이 말했었었지. '후회는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두려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라고 말야."
짧게만 느껴지는 한낮에, 그렇게 또 한번의 삶의 정의를 내렸다. 이젠 마지막이라고 느끼면서도, 결코 끝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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