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 종말의 칸타타 # 2-11 염화(炎火)의 꽃
페이지 정보
본문
쉐엣! 하루 만에 또 다시 올리다!
대책 없이 올려서 뒷 수습은 어떻게 할려는지. 크으읔
댓글 달아주면 뽀뽀라고 말하면 아무도 안달아주겠지 ㅠㅡ?
-------------------------------------------------------------------------------------
# 11 - 염화(炎火)의 꽃
그건 어떠한 이성의 무엇도 배제된 목소리. 순수하게 현재에서 느끼는 즉흥적인 감정이 내재된 미소. 그 미소는 얼음이기보다는 얼지 않는 물이다. 차가움을 간직했지만 결코 얼지 않는, 1°의 물. 이 소녀에게 이것은 땅따먹기나 공기 놀이 이상의 것이다. 단지 그 놀이가 과격한 것일 뿐.
“이봐, 음... 어떻게 불러야할지. 뭐, 소녀. 그 옷은 절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렇케 다짜고짜 나를 죽일 기세로 달려들면 인질극 보다는 테러 쪽이 더 빠른거 아니였나. 인질극을 벌인 것도 뭔가 바라는게 있어서 그런 걸 테지?”
일단 청년에게는 이 상황을 돌리는게 급선무.
“아아아, 그러고 보니 옷이 거슬리지도 모르겠네. 어때요, 이쁘지 않어?”
소녀의 냉기서린 미소는 가라 앉았다. 하기는. 그 옷차림은 도저히 전장에서 모랫바람에 옷살이 변하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평상복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사 날개의 순백색과 은은 핑크색을 돋아내는 드레스는 귀족의 파티복에나 어울림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옷에다가 무슨 자기 키만한 카타나 검, 그리고 적혈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니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전투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야할까. 이 소녀는 좀처럼 일반인에게는 납득될 수 없었다.
“에이... 뭐야아.”
청년 쪽의 반응이 없자 시큰둥해진 소녀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손가락 한쪽 끝을 입술에 붙였다. 필시 아이가 ‘저 삐졌어요’ 라는 태도를 드러내는 이모션이었다.
“옷은 개인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인질을 잡았으면 뭔가 협상이라도 하는게 인질범들의 순서 아니였나.”
“그랬었나. 오빠, 나 그런거는 잘 모르겠어. 뭐, 오빠는 곧 죽을 텐데... 아아.”
손가락을 때지 않은 입술이 위로 쑤욱 올라가더니,
“좋아! 가르쳐 줄게.”
윽, 저 말은 잠시나마 평범한 소녀로 돌아 왔다는 걸까.
“협상안은...
구름 속의 섬광 한 줄기를 찾은 청년의 대사를 쑤욱 잘라내고 소녀는 원사이드로 대화했다.
“협상같은 거는 안 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음, 그래. 오빠의 목숨이야.”
“내 목숨? 웃기지도 않는 일이군. 인질이 미끼라는 건가?”
“딩동댕! 오빠는 똑똑하구나. 그러니까 인질 따위가 도망칠까봐 경비병을 붙이거나 하는 거는 안해도 돼. 뭐 인질들이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 치래지.”
“그래도, 단순히 우리 군인들의 목숨을 노리는 거라면 테러 쪽이 훨씬 더 좋을텐데.”
소녀가 한 번더 눈길을 하늘의 구름에 대고 말을 이었다.
“테러같은 건 안 해. 적진에 뛰어드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바보가 어딨어. 오빠 다시 보니까 바보구나. 똑똑한거야 바보인거야. 나 차암~”
알 수 없는 소녀 앞에서 청년은 대답이 뻔할 거라 생각했지만 한 번 더 물었다.
“우리를 죽여서 얻는 이익은?”
헌데 그 대답이 의외의 것이였다.
“프리오리로 가는 방해꾼들을 줄여야 좋다고 노라크루드가 말했거든. 더 재밌는 거 말해줘어. 재미 없잖아~”
“노라크루드?! 그 영감탱이 마법사가 시킨거란 말인가?”
잠수내기 시합을 한 듯 장시간 머리를 생각 속에 처박는 청년. 그는 소녀가 말한 사람의 이름을 곱씹어 본다. 그러나, 씹어질 수 없는 그 이름, 노라크루드. ㅡ만인이 인정하는 자슈르 최강의 3명의 대마법사 중 일인. ‘자슈르 3명의 대마법사’라는 것은 그래 누구였던가.ㅡ 뇌수의 끝 자락, 대뇌에 자신도 모르게 처박아버린 그 기억을 또 한번 더듬어 보았다.
ㅡ자슈르 3명의 대 마법사.
제각기 위엄있는 그 이름들.
노장의 노라크루드,
루이온국 총통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낳기도 했던, 그러나 현재는 행방을 감춰 버린 세이나 포니우드,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 에리샤 안후엘.
이들 3명이 현재 자슈르 부흥 운동의 기둥들. 여기서 행방불명의 세이나를 빼 버린다면 2명이 되겠지. 뭐 세이나가 있었다고 해도 부흥운동에는 관심도 없던 총통의 현모양처였으니까.
하지만 노라크루드는 그 2명, 아니 세이나를 포함한 3명에서도 단연 최강. 3명의 대마법사 중 가장 풍부한 실전 경험과 관록은 그를 자슈르 마법사들의 가장 상층부에 군림하게 만들었지. 9년 전, 제 2차 어머니의 전쟁 때 모든 종족이 휘말리는 바람에 그 역시도 죽음에 다다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불굴로 키워버렸어. 하지만 그가 그 부상에서 회복되었을 때, 이미 그의 조국 자슈르는 그를 기다려주지 못했을 테고, 지금에 이 인질극은 결국 그의 조국 회복 운동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이 소녀는 그의 심복이 되는거고,ㅡ
“오빠 그렇게 뭘 생각하는거야, 이제 재미도 없으니 그냥 죽여 줄게. 그래도 되지?”
청아한 회상을 깨는 말 몇마디에 될 성 싶냐고 반문해보려했지만 이미 소녀에게 그는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녀여, 죽일테면 죽여보라지.”
[슈우우우우]
그 말과 함께 떨어지는 파이어볼 소리가 동굴 쪽의 인질범들에게서 시전되고 있었다!
“아저씨들! 파이어볼 같은거 하지마! 이 오빠는 나하고 놀꺼니까!”
공기를 휘감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마법 시전이 취소되었다.
“쳇, 이 꼬맹이 여자애, 도대체 나이도 있지, 어른을 이렇게 대하다니...”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거야.”
“우리는 구경이나 하라는 거지, 저 꼬맹이...”
수근거림이 술렁술렁 거리며 조석간만의 차를 연출했다. 이런 상황이 바로 기회!
“트레스 이펙트. 플러스 옵션으로 아이스 엠플을 걸어둔다.”
소녀가 인질범 아저씨들에게 한 눈을 파는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청년의 명함 공격! 그의 명함은 잘 구부려지지 않는 것이 마찰력이 낮아 속공용으로써 적임이었다.
그러나, 이 소녀 앞에서 그것은 부질 없는 종이.
“오빠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나도 접대선물 하나 할까?”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돌진해가는 명함을 간단하지만 너무나도 우아한 몸놀림으로 피한 소녀의 드레스가 바람결에 동화된 채 곡선을 그렸다. 순백과 핑크의 조화를 등에 업은 드레스의 레이스는 소녀를 한 가닥의 벚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벚꽃은 핑크빛 드레스라는 이름의 꽃잎을 피워냈다.
“그럼, 너 본인의 정체는...뭐냐?”
“아휴, 시끄러워. 그냥 죽어!”
바람결에 나부끼던 한 사람의 벚꽃은 강풍에 가지를 꺽인듯 어디론가 날라들었다. 그리고 홀로 꺽여진 벚꽃은 곧바로 청년의 가슴팍으로.
[푸욱]
[치잉]
청년도 한 번이나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했다. 청년은 명함에 마나를 불어넣은 것으로 가느다란 검의 잔상을 뒤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검의 잔상을 뒤쫓아가는 수준인지라 검날에 반사된 햇빛 한줄기는 청년의 눈을 불규칙한 간격으로 조여왔고 검 또한 그 민첩성의 수위를 런닝머신처럼 높여왔다.
[핑핑치익칭, 피이잉]
금속의 붉은 검에 부딫치는 것은 본래가 종이인지라 그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 전투를 관망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할 음향효과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거리가 좁혀져 있는 접근전인 탓에 호위사격을 하더라도 누가 맞을 줄 모르는 상황, 전투는 이 두명 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쉬잉]
[치이이익, 콰탕]
“오오, 오빠도 검술을 조금 하나 보네?”
“앞가림은 할 수 있지. 적어도 아이 상대로는.”
“에에~ 아니야아니야!”
극한의 민첩성에 달한 검은 어느샌가 반사된 빛의 잔흔만을 남기고 있었다. 청년이 한 두걸음씩 뒤 처지는 순간이 늘어났고 소녀는 물러서는 청년의 가슴에 마이클 잭슨의 백 스텝과 같은 걸음으로 안겨들었다.
[푸욱]
벚꽃의 가지는 긁어내렸다. 푸른 공간의 깨어진 경계를. 생선회를 갈라내듯. 너무나도 쉽게.
“이, 런...”
출혈이 시작됐다.
“자아, 아까 내 정체를 물었었지. 퀴즈, 나는 누구 일까요? 맞추면 5분동안 살려줄게.”
“시끄러운 건, 너다, 허...억... 꼬맹아.”
“뭐어~! 꼬맹이!!! 오빠 말 다했지?!”
검이 불타올랐다. 그 형상조차도 불길의 색에 가릴 정도로 검이 불타올랐다. 유카인처럼 꼬맹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걸까.
“그러니까 이름을 가르쳐 줬으면 꼬맹이라고 안했을꺼 아냐. 검을 잘 다루는 것 보니 검술 쪽의 집안인 것 같은데.”
앗, 상대방의 기분을 흥분케 한 이후에 자발적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방법. 이런 것은 구식 방법이다, 누가 그런거에 말려들겠나. 그나저나 가슴 앞에 어른 팔뚝 만한 흉터가 남게 된 판에 잘도 말하는 양반이었다.
“으음, 그래. 내 소개를 해야지 그렇게 안 말하겠구나. 화내서 미안, 나는 안후엘 집안의 에리샤. 에리샤 르 안후엘이라고 해. 오빠는?”
말했다. 역시, 아직 애라 이거지. 말이 끝나자 이 소녀는 드레스의 양 끝 자락을 올리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었다. 보아하니 귀족들의 전형적인 인사법. 역시 귀족 집안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청년에게는 이 이름이... 너무... 익숙했다.
“너, 설마... 에리샤 르 안후엘인거냐.”
“응”
“좋아, 너의 이름을 맞췄다. 5분 더 살 수 있다. 내 소개도 해야겠지. 버드런트 데카르트. 대령이다.”
“아아? 그러게 되는 거 었던 거야!! 으아아앙~”
이 에리샤라는 청년의 이름따위 대수도 아니었다. 단지 소녀는 청년이 답을 맞췄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이었다. 그냥 진짜 5분 살려주는 걸지도, 뭐어, 어쨋든 간에 청년은 그 5분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익숙한 어감의 에리샤라는 이름을 되짚어 볼 양이었다.
ㅡ이런 망해먹을, 그 이름이잖아!ㅡ
제법 무게감이 있는 그 이름이었다. 자슈르의 그 이름. 자슈르의 3대 대마법사 중 한 명,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 에리샤 안후엘.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은 현재 자슈르에서 제 2인자의 자리에 등극해 있는 마법사. 게다가 풍문에서는 마법을 다루는 '검사'가 아니라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라고 불려지고 있었다. 그 말은 이 소녀가 검보다 마법을 휘둘렀을 경우 더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한다는 사실을 내지하는 것. ㅡ이런 상대를 인질극 따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 정도로 집착할 정도라면 프리오리는...ㅡ
“자 5분 땡입니다! 다 지났어요, 다 지났어요!"
"설마, 벌써 지났을 리가!"
"살려줄 생각 같은 거 사실은 없었어. 노라크루드가 죽이고 오랬걸라앙. 안 그러면 나 그 할아버지 한테 혼나.”
“뭐...어...?”
소녀의 시계는 다른 이들과는 약간 다른 듯 했다. 자기 유리하는 쪽으로만 끌어들이는 아집의 시계라고 할 까.
“불로 지진 검으로 보내 줄께!”
불에 물들고 있던 그 검이 드디어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용암을 담은 붉은 보석같은 소녀의 눈도 그 궤도에 함께 한다. 컴파스로 재듯이 정확하게 선을 그리며 날라오는 검 끝. 아니 그 검 끝보다도 검에 붙은 불들은, 도대체 뭐란 것인가!! 누가 보던 간에 이 청년의 미래는 끝 없는 어둠으로 이어지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죽음이 진짜 어두울 걸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청년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이 진짜 어두울지 아니면 또다른 밝음을 의미하는 시작일지. 그리고 체감할 것이다. 가슴이 산 채로 절개당하며 갈비뻐가 으스러지는 상쾌한 고통을!
거기에 끝없이 불타오를 것만 같은 무한의 불은 추가 옵션으로 고통을 증폭시켜 줄테지!!
[우콰타탕]
“내 순결이...”
"헤헤헤, 미안..."
"별거 아니잖습니까."
동굴 쪽에서 들려온 음성이 검의 궤적을 바꿔 주었다. 그려지기를 정지한 모랫바람의 캔버스에 엎질러지는 잉크와도 같은 3인의 목소리. 그 음성 중 하나가 유독 또렷히 들렸다.
“인질범들 나와, 감히 나를 밧줄로 묶어두었겠다”
유카인, 등장!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 안도한 듯 청년이 몇 마디 대사를 내뱉었다.
“소녀여, 간과한게 있는데. 너희들이 묶었던 인질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경비병을 붙이지 않으면 도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싸우려고 드는 인질들이지. 그러니까 너의 행동은 빗나갔다는 거다. 거기에는 총통의 아들놈이라는 유카인도 껴 있었는데. 아쉽게 됐군.”
총통의 아들놈, 등장(버드런트라는 청년의 입장에서)
“세이나의... 아들이라는 거야. 저 오빠가? 귀엽게 생겼다아~!”
세이나의 아들, 등장(에리샤의 입장에서)
벛꽃의 가지는 순간적으로 긴장한 듯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멈쳐진 것처럼 행동을 정지했다. 그 궤도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총통의 아들놈이라는 이에게 궤적의 타겟을 바꾸었을 뿐.
"내 남자친구 해도 되겠어!"
이상한 궤변을 또 다시 늘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말과는 달리,
염화의 붉음으로 채색된 벚꽃은 백화의 아름다운 빛을 검에 담고 나아가고 있었다.
-------------------------------------------------------------------------------------
이제부터 잘 전개가 되어야 할텐데..
즐거운 설 지내세요. 다들 배탈 날 정도로 먹지는 말구요. 하하하하~
대책 없이 올려서 뒷 수습은 어떻게 할려는지. 크으읔
댓글 달아주면 뽀뽀라고 말하면 아무도 안달아주겠지 ㅠㅡ?
-------------------------------------------------------------------------------------
# 11 - 염화(炎火)의 꽃
그건 어떠한 이성의 무엇도 배제된 목소리. 순수하게 현재에서 느끼는 즉흥적인 감정이 내재된 미소. 그 미소는 얼음이기보다는 얼지 않는 물이다. 차가움을 간직했지만 결코 얼지 않는, 1°의 물. 이 소녀에게 이것은 땅따먹기나 공기 놀이 이상의 것이다. 단지 그 놀이가 과격한 것일 뿐.
“이봐, 음... 어떻게 불러야할지. 뭐, 소녀. 그 옷은 절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렇케 다짜고짜 나를 죽일 기세로 달려들면 인질극 보다는 테러 쪽이 더 빠른거 아니였나. 인질극을 벌인 것도 뭔가 바라는게 있어서 그런 걸 테지?”
일단 청년에게는 이 상황을 돌리는게 급선무.
“아아아, 그러고 보니 옷이 거슬리지도 모르겠네. 어때요, 이쁘지 않어?”
소녀의 냉기서린 미소는 가라 앉았다. 하기는. 그 옷차림은 도저히 전장에서 모랫바람에 옷살이 변하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평상복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사 날개의 순백색과 은은 핑크색을 돋아내는 드레스는 귀족의 파티복에나 어울림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옷에다가 무슨 자기 키만한 카타나 검, 그리고 적혈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니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전투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야할까. 이 소녀는 좀처럼 일반인에게는 납득될 수 없었다.
“에이... 뭐야아.”
청년 쪽의 반응이 없자 시큰둥해진 소녀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손가락 한쪽 끝을 입술에 붙였다. 필시 아이가 ‘저 삐졌어요’ 라는 태도를 드러내는 이모션이었다.
“옷은 개인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인질을 잡았으면 뭔가 협상이라도 하는게 인질범들의 순서 아니였나.”
“그랬었나. 오빠, 나 그런거는 잘 모르겠어. 뭐, 오빠는 곧 죽을 텐데... 아아.”
손가락을 때지 않은 입술이 위로 쑤욱 올라가더니,
“좋아! 가르쳐 줄게.”
윽, 저 말은 잠시나마 평범한 소녀로 돌아 왔다는 걸까.
“협상안은...
구름 속의 섬광 한 줄기를 찾은 청년의 대사를 쑤욱 잘라내고 소녀는 원사이드로 대화했다.
“협상같은 거는 안 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음, 그래. 오빠의 목숨이야.”
“내 목숨? 웃기지도 않는 일이군. 인질이 미끼라는 건가?”
“딩동댕! 오빠는 똑똑하구나. 그러니까 인질 따위가 도망칠까봐 경비병을 붙이거나 하는 거는 안해도 돼. 뭐 인질들이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 치래지.”
“그래도, 단순히 우리 군인들의 목숨을 노리는 거라면 테러 쪽이 훨씬 더 좋을텐데.”
소녀가 한 번더 눈길을 하늘의 구름에 대고 말을 이었다.
“테러같은 건 안 해. 적진에 뛰어드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바보가 어딨어. 오빠 다시 보니까 바보구나. 똑똑한거야 바보인거야. 나 차암~”
알 수 없는 소녀 앞에서 청년은 대답이 뻔할 거라 생각했지만 한 번 더 물었다.
“우리를 죽여서 얻는 이익은?”
헌데 그 대답이 의외의 것이였다.
“프리오리로 가는 방해꾼들을 줄여야 좋다고 노라크루드가 말했거든. 더 재밌는 거 말해줘어. 재미 없잖아~”
“노라크루드?! 그 영감탱이 마법사가 시킨거란 말인가?”
잠수내기 시합을 한 듯 장시간 머리를 생각 속에 처박는 청년. 그는 소녀가 말한 사람의 이름을 곱씹어 본다. 그러나, 씹어질 수 없는 그 이름, 노라크루드. ㅡ만인이 인정하는 자슈르 최강의 3명의 대마법사 중 일인. ‘자슈르 3명의 대마법사’라는 것은 그래 누구였던가.ㅡ 뇌수의 끝 자락, 대뇌에 자신도 모르게 처박아버린 그 기억을 또 한번 더듬어 보았다.
ㅡ자슈르 3명의 대 마법사.
제각기 위엄있는 그 이름들.
노장의 노라크루드,
루이온국 총통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낳기도 했던, 그러나 현재는 행방을 감춰 버린 세이나 포니우드,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 에리샤 안후엘.
이들 3명이 현재 자슈르 부흥 운동의 기둥들. 여기서 행방불명의 세이나를 빼 버린다면 2명이 되겠지. 뭐 세이나가 있었다고 해도 부흥운동에는 관심도 없던 총통의 현모양처였으니까.
하지만 노라크루드는 그 2명, 아니 세이나를 포함한 3명에서도 단연 최강. 3명의 대마법사 중 가장 풍부한 실전 경험과 관록은 그를 자슈르 마법사들의 가장 상층부에 군림하게 만들었지. 9년 전, 제 2차 어머니의 전쟁 때 모든 종족이 휘말리는 바람에 그 역시도 죽음에 다다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불굴로 키워버렸어. 하지만 그가 그 부상에서 회복되었을 때, 이미 그의 조국 자슈르는 그를 기다려주지 못했을 테고, 지금에 이 인질극은 결국 그의 조국 회복 운동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이 소녀는 그의 심복이 되는거고,ㅡ
“오빠 그렇게 뭘 생각하는거야, 이제 재미도 없으니 그냥 죽여 줄게. 그래도 되지?”
청아한 회상을 깨는 말 몇마디에 될 성 싶냐고 반문해보려했지만 이미 소녀에게 그는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녀여, 죽일테면 죽여보라지.”
[슈우우우우]
그 말과 함께 떨어지는 파이어볼 소리가 동굴 쪽의 인질범들에게서 시전되고 있었다!
“아저씨들! 파이어볼 같은거 하지마! 이 오빠는 나하고 놀꺼니까!”
공기를 휘감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마법 시전이 취소되었다.
“쳇, 이 꼬맹이 여자애, 도대체 나이도 있지, 어른을 이렇게 대하다니...”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거야.”
“우리는 구경이나 하라는 거지, 저 꼬맹이...”
수근거림이 술렁술렁 거리며 조석간만의 차를 연출했다. 이런 상황이 바로 기회!
“트레스 이펙트. 플러스 옵션으로 아이스 엠플을 걸어둔다.”
소녀가 인질범 아저씨들에게 한 눈을 파는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청년의 명함 공격! 그의 명함은 잘 구부려지지 않는 것이 마찰력이 낮아 속공용으로써 적임이었다.
그러나, 이 소녀 앞에서 그것은 부질 없는 종이.
“오빠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나도 접대선물 하나 할까?”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돌진해가는 명함을 간단하지만 너무나도 우아한 몸놀림으로 피한 소녀의 드레스가 바람결에 동화된 채 곡선을 그렸다. 순백과 핑크의 조화를 등에 업은 드레스의 레이스는 소녀를 한 가닥의 벚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벚꽃은 핑크빛 드레스라는 이름의 꽃잎을 피워냈다.
“그럼, 너 본인의 정체는...뭐냐?”
“아휴, 시끄러워. 그냥 죽어!”
바람결에 나부끼던 한 사람의 벚꽃은 강풍에 가지를 꺽인듯 어디론가 날라들었다. 그리고 홀로 꺽여진 벚꽃은 곧바로 청년의 가슴팍으로.
[푸욱]
[치잉]
청년도 한 번이나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했다. 청년은 명함에 마나를 불어넣은 것으로 가느다란 검의 잔상을 뒤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검의 잔상을 뒤쫓아가는 수준인지라 검날에 반사된 햇빛 한줄기는 청년의 눈을 불규칙한 간격으로 조여왔고 검 또한 그 민첩성의 수위를 런닝머신처럼 높여왔다.
[핑핑치익칭, 피이잉]
금속의 붉은 검에 부딫치는 것은 본래가 종이인지라 그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 전투를 관망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할 음향효과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거리가 좁혀져 있는 접근전인 탓에 호위사격을 하더라도 누가 맞을 줄 모르는 상황, 전투는 이 두명 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쉬잉]
[치이이익, 콰탕]
“오오, 오빠도 검술을 조금 하나 보네?”
“앞가림은 할 수 있지. 적어도 아이 상대로는.”
“에에~ 아니야아니야!”
극한의 민첩성에 달한 검은 어느샌가 반사된 빛의 잔흔만을 남기고 있었다. 청년이 한 두걸음씩 뒤 처지는 순간이 늘어났고 소녀는 물러서는 청년의 가슴에 마이클 잭슨의 백 스텝과 같은 걸음으로 안겨들었다.
[푸욱]
벚꽃의 가지는 긁어내렸다. 푸른 공간의 깨어진 경계를. 생선회를 갈라내듯. 너무나도 쉽게.
“이, 런...”
출혈이 시작됐다.
“자아, 아까 내 정체를 물었었지. 퀴즈, 나는 누구 일까요? 맞추면 5분동안 살려줄게.”
“시끄러운 건, 너다, 허...억... 꼬맹아.”
“뭐어~! 꼬맹이!!! 오빠 말 다했지?!”
검이 불타올랐다. 그 형상조차도 불길의 색에 가릴 정도로 검이 불타올랐다. 유카인처럼 꼬맹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걸까.
“그러니까 이름을 가르쳐 줬으면 꼬맹이라고 안했을꺼 아냐. 검을 잘 다루는 것 보니 검술 쪽의 집안인 것 같은데.”
앗, 상대방의 기분을 흥분케 한 이후에 자발적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방법. 이런 것은 구식 방법이다, 누가 그런거에 말려들겠나. 그나저나 가슴 앞에 어른 팔뚝 만한 흉터가 남게 된 판에 잘도 말하는 양반이었다.
“으음, 그래. 내 소개를 해야지 그렇게 안 말하겠구나. 화내서 미안, 나는 안후엘 집안의 에리샤. 에리샤 르 안후엘이라고 해. 오빠는?”
말했다. 역시, 아직 애라 이거지. 말이 끝나자 이 소녀는 드레스의 양 끝 자락을 올리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었다. 보아하니 귀족들의 전형적인 인사법. 역시 귀족 집안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청년에게는 이 이름이... 너무... 익숙했다.
“너, 설마... 에리샤 르 안후엘인거냐.”
“응”
“좋아, 너의 이름을 맞췄다. 5분 더 살 수 있다. 내 소개도 해야겠지. 버드런트 데카르트. 대령이다.”
“아아? 그러게 되는 거 었던 거야!! 으아아앙~”
이 에리샤라는 청년의 이름따위 대수도 아니었다. 단지 소녀는 청년이 답을 맞췄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이었다. 그냥 진짜 5분 살려주는 걸지도, 뭐어, 어쨋든 간에 청년은 그 5분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익숙한 어감의 에리샤라는 이름을 되짚어 볼 양이었다.
ㅡ이런 망해먹을, 그 이름이잖아!ㅡ
제법 무게감이 있는 그 이름이었다. 자슈르의 그 이름. 자슈르의 3대 대마법사 중 한 명,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 에리샤 안후엘.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은 현재 자슈르에서 제 2인자의 자리에 등극해 있는 마법사. 게다가 풍문에서는 마법을 다루는 '검사'가 아니라 검을 다루는 '화염계 마법사'라고 불려지고 있었다. 그 말은 이 소녀가 검보다 마법을 휘둘렀을 경우 더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한다는 사실을 내지하는 것. ㅡ이런 상대를 인질극 따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 정도로 집착할 정도라면 프리오리는...ㅡ
“자 5분 땡입니다! 다 지났어요, 다 지났어요!"
"설마, 벌써 지났을 리가!"
"살려줄 생각 같은 거 사실은 없었어. 노라크루드가 죽이고 오랬걸라앙. 안 그러면 나 그 할아버지 한테 혼나.”
“뭐...어...?”
소녀의 시계는 다른 이들과는 약간 다른 듯 했다. 자기 유리하는 쪽으로만 끌어들이는 아집의 시계라고 할 까.
“불로 지진 검으로 보내 줄께!”
불에 물들고 있던 그 검이 드디어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용암을 담은 붉은 보석같은 소녀의 눈도 그 궤도에 함께 한다. 컴파스로 재듯이 정확하게 선을 그리며 날라오는 검 끝. 아니 그 검 끝보다도 검에 붙은 불들은, 도대체 뭐란 것인가!! 누가 보던 간에 이 청년의 미래는 끝 없는 어둠으로 이어지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죽음이 진짜 어두울 걸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청년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이 진짜 어두울지 아니면 또다른 밝음을 의미하는 시작일지. 그리고 체감할 것이다. 가슴이 산 채로 절개당하며 갈비뻐가 으스러지는 상쾌한 고통을!
거기에 끝없이 불타오를 것만 같은 무한의 불은 추가 옵션으로 고통을 증폭시켜 줄테지!!
[우콰타탕]
“내 순결이...”
"헤헤헤, 미안..."
"별거 아니잖습니까."
동굴 쪽에서 들려온 음성이 검의 궤적을 바꿔 주었다. 그려지기를 정지한 모랫바람의 캔버스에 엎질러지는 잉크와도 같은 3인의 목소리. 그 음성 중 하나가 유독 또렷히 들렸다.
“인질범들 나와, 감히 나를 밧줄로 묶어두었겠다”
유카인, 등장!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 안도한 듯 청년이 몇 마디 대사를 내뱉었다.
“소녀여, 간과한게 있는데. 너희들이 묶었던 인질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경비병을 붙이지 않으면 도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싸우려고 드는 인질들이지. 그러니까 너의 행동은 빗나갔다는 거다. 거기에는 총통의 아들놈이라는 유카인도 껴 있었는데. 아쉽게 됐군.”
총통의 아들놈, 등장(버드런트라는 청년의 입장에서)
“세이나의... 아들이라는 거야. 저 오빠가? 귀엽게 생겼다아~!”
세이나의 아들, 등장(에리샤의 입장에서)
벛꽃의 가지는 순간적으로 긴장한 듯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멈쳐진 것처럼 행동을 정지했다. 그 궤도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총통의 아들놈이라는 이에게 궤적의 타겟을 바꾸었을 뿐.
"내 남자친구 해도 되겠어!"
이상한 궤변을 또 다시 늘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말과는 달리,
염화의 붉음으로 채색된 벚꽃은 백화의 아름다운 빛을 검에 담고 나아가고 있었다.
-------------------------------------------------------------------------------------
이제부터 잘 전개가 되어야 할텐데..
즐거운 설 지내세요. 다들 배탈 날 정도로 먹지는 말구요. 하하하하~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