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진짜 불청객은 항상 당신과 함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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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라울의 규모는 케이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초합금로봇 마징가의 팔, 다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 3개가 식당 1층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었고, 주위에는 조그만 인공호수와 분수대, 꽃길들이 여신들과 인간, 마족을 반겼다. 외관장식(인테리어)에 엄청난 투자를 한 티가 역력했다. 중앙에서는 TV 속 악단의 음악이 장내를 장악하고 있다. 마치 유럽의 귀티가 흐르는 집안의 거대 저택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베르단디의 감탄사에 모두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고급스러운 곳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베르단디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꼭 잡고 천장 위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 복사판 ‘천지창조’를 감상한다.
“어머나 이렇게 예쁘다니! 호홋!! 내 미모에 어울리는 장미길이군요.”
도도하고 착각의 지존인 여신도 화사한 핏빛을 머금은 장미에 얼굴을 갖다 대며 향기를 들이마신다. 지나가던 손님들(모두 양복, 드레스차림이었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취해 아닌 척 걸어가다 한 번씩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개중에는 그렇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옆에 파트너로 서있는 숙녀 분들의 팔꿈치 강제 어택을 당하고 신음하는 사례도 보인다.
‘페이오스 그렇게 걱정 없이 앉아 있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걱정과 한숨만 안기고 돌아가게 돼.’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투와 부러움, 시기의 눈망울은 생각도 않고 이야기하는 케이였다. 물론 본인에게 이런 발언을 했다가는 장미의 태풍이 몰아칠 수가 있기에 입 밖으로 내밀지는 않았다.
“이런 곳에서의 술맛은 어떨까? 최고 아닐까??”
“우와! 왠지 후식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아!”
혼자 문답하며 들뜬 갈색 글래머 여인과 두 눈에 우주의 별들을 집어넣어 반짝반짝 빛내는 소녀까지. 모든 여신들은 이곳이 맘에 든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너무 튀어 손님들의 눈길들은 하나 둘씩 모였고, 케이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식당 분위기는 좋아. 부르주아들의 식당치곤 괜찮군!”
무표정으로 주시하던 묠니르도 여신들의 공통된 의견에 동감을 표시하지만 조금 경멸하는 듯 한 어조로 말했다. 겉으로 절대 내색은 안 하지만. 반면 우리의 케이는.
‘관동에서 제일 커다랗고 고급스럽다더니, 땅값도 비싼 일본에서 이런 곳이 있었나?’
새삼 관동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입만 쩍 벌리고 차마 움직일 생각도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멋있게 키운 콧수염, 둥그런 얼굴에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넉살좋은 미소, 툭 튀어나온 남산만한 배하고 양 갈래로 모양새를 잘 갖춘 콧수염. 흡사 제정러시아의 해군지휘관이나 일제 군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배불뚝이 남자였다. 그는 이곳 라울의 지배인이란 자였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웨이터들과 웨이트리스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아 예.”
공손히 인사로 답하는 이 착한 남자에게 여신들은 질책공습을 가한다.
“케이! 우리는 손님이라구!!”
“손님은 왕이다! 를 잊으면 안 돼 케이.”
“왕은 왕답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닙니다.”
“이봐들!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지켜야 할 도리가 있지.”
“손님은 왕이다!”
“옙.”
아니 하나도 모르겠어. 라고 케이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냈다가는 그녀들의 2차 잔소리 폭격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의 침묵을 지키는 반응을 여신들은 무언의 긍정으로 착각했는지 3명 모두 의기양양해있다. 그녀들이 지배인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너무해요! 우리는 손님인데 그렇게 인사를 받고 싶었어요?”
“아, 아니 저기..저는!”
“TV도 안 보고 사시나 보네?”
“그,그게 아니라...”
“자자 울드, 스쿨드 이제 그만하고”
“........”
......왜일까? 항변 한번 못해보고 3여신에게 당한 지배인이 처량하게 보이는 이유는?
허리를 숙이고 한국에서 ‘OTL’이라고 부르는 자세를 취하며 행동이 정지되었던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핫 정말 재미있는 분들이시군요.”
“엥? 지배인 고건 또 뭔 소리?”
“아이고 배야! 하하하하 배가 터질 것만 같구려. 허허허”
커다란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뜨리는 그 모습에 울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화답했다. 지배인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로 웃어본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히힛.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들으신 것인지요? 하하하.”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고급요리 TOP 10 ‘최고를 찾아서’!”
“고급요리 TOP 10 ‘최고를 찾아서’에서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녀들의 입에서 똑같은 프로그램명이 나오자 케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열렸다.
“정말로 그 프로그램만 본거야?”
“당연하지.”
“누가 한턱 쏜다는데 알아볼 것은 알아야 되지 않겠어?”
“이런 곳에 오기 전에는 먼저 예의와 격식부터 알아야 됩니다. 알았나요. 케이씨?”
‘아아 웬일들이셔. 이렇게 진지한 얼굴들은…….’
어쨌든 그녀들이 최초로 TV쟁탈전을 벌이지 않고 공통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사실에 케이는 어이를 상실한 얼굴로 조용히 그녀들의 설명을 듣기만 한다. 지배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들의 설명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저기 조용히 서 계신 분께서는 무슨 프로그램을?”
“안녕하세요. 베르단디라고 해요.”
조용하고 생기발랄한 베르단디를 지켜보던 지배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다듬으며 묻는다. 베르단디는 그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프로그램명이 나온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아자! 요리백서’에서요”
‘아...아자 요리백서?’
역시 그녀답다. 유난히 튀었다. 그리고…….
“푸히히히히힛! 푸하하하하하! 정말로 웃겨. 저 여자 분만 본 프로그램이 다르잖아. 킥킥킥!”
이제는 신사, 숙녀들의 눈길은 모두 무시하고 아까보다 더 커다란 폭소를 터뜨리며 웃음소리로 온몸을 절인다. 미친 듯이 땅바닥을 굴러다니며 한명만 다르다는 혼잣말을 힘겹게 토해냈다. 그의 잠자는 곰처럼 뒹구는 모습에 여신들과 주위의 식당 종업원들까지 할 말을 잃었다.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려달라는 눈빛을 케이에게 보내는 베르단디와.
“……요리백서가 뭐가 웃기다는 것인지요?”
“어?”
케이의 귀를 잡고 소곤소곤 말하는 묠니르.
“요리백서...러시아에서는 좀처럼 듣기도, 보기도 힘든 좋은 TV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베르단디랑 같이 본거냐..’
아 그랬었지. 참. 기억 속에서 더듬어 찾아낸 케이였다. 그에게 묠니르가 하나 더 물었다.
“인간들은 원래 저렇게 이상한 겁니까?”
“아 글쎄.”
......물론 아니라고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묠니르의 눈에는 인간들이 더 이상하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보기에는 여신들의 말과 행동이 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네가 더 이상해.’
라고 그는 속으로 외쳤다.
“하하하하 좋은 자리로 모셔드리겠습니다.”
“훗!”
“?”
경멸과 조롱이 복잡하게 섞여 정확히 어느 쪽이라고 파악하기 힘든 비웃음소리에 뒤를 돌아본 묠니르. 그의 눈에 돈을 쏟아 부은 티가 역력한 양복 차림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분명 누군가의 비웃음 같았는데……. 이쪽을 향한. 웃음소리의 의문이 깨끗이 풀리지 않은 그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봉인된 골렘 마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감각이 오류를 범했다고 판단한 묠니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지배인이 소개해준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테이블에는 문제의 여자 3명이 소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음식도 나왔는데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단 말야!”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볼멘소리를 내며 투덜거리는 스쿨드가 반겨주었다.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죄송하다고 살짝 입을 열고 자리에 앉아 음식들을 확인하는 묠니르의 모습에 소녀는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뭐야. 아직 사람 말 안 끝났다고.”
“스쿨드 화내지 마라. 너 묠니르의 131이 먹고 싶지 않은 거냐?”
“아뇨. 조용히 하겠습니다.”
“호홋 그래야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울드가 말리지 않았다면 스쿨드는 더욱 심하게 투덜거렸을 것이다. 물론 울드의 행동은 말렸다기보다는 개먹이를 주는 척하다가 다시 빼앗으며 약 올리는 장난기 많은 주인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
“메인 디쉬는 어떤 것들로 하시겠습니까?”
그녀들과 그의 소란을 조용히 보고, 듣던 메이드복 차림의 웨이트리스가 메뉴판들을 보여준다. 그곳에 쓰인 수많은 음식들. 울드와 모두들 우와! 감탄사를 내뱉는다. 거기서 한명의 마족은 빠져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소란스러운 수다는 다시 시작되어졌다.
“페이오스 이것 어떠냐?! 죽이겠는데!!”
“울드! 보드카인지 뭔지 하는 술을 잔뜩 마시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면서 또 술이야?”
“술 고프니까 그러지!”
“우와!! 이 후식 굉장하다.”
…이보세요들. 와인이나, 디저트, 장식용 꽃이 아니라 제! 발! 메인 디쉬를 봐달라고요! 메이드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안경너머로 조용히 앉아 메뉴판을 차근차근 살피는 묠니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다행히 그는 정확한 것들을 골랐다.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가 들던 상관없다. 3개국 코스로 프랑스, 차이나, 소비에트 식으로 꺼내오도록!”
“네…….예?”
“소비에트 유니온.”
“아. 러시아 말씀이십니까?”
끄덕끄덕. 고개로 무언의 긍정을 표시하자 메이드는 조용히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참고로 브리누이(러시아 요리로 일종의 팬케익, 크레이프의 일종)는 잼을 집어넣지 말도록. 맛이 떨어지니까. 또 주방장에게 알려 주도록. 샤샬리가 아니라 샤실리(꼬치구이)라는 이름이네.”
“아. 알겠습니다.”
“다 스비다니야.(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기이한 붉은 눈의 남자의 낯선 언어를 피해 도망가다시피 하는 메이드. 쏜살같이 사라지는 여자와 묠니르를 번갈아 바라보던 울드가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니치보 니옛(아무것도 아니다.)”
엥 그건 또 뭔 소리? 울드가 묠니르의 엉뚱한 답에 어리둥절해 하자 묠니르 옆에 우아하게 앉아 장미꽃에 취해있던 페이오스가 설명해주었다.
“별 것 아냐. 묠니르가 살던 나라에서의 언어야. 러시아라고 했던가? 지금은 어색하지만 듣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지구 도움센터에서도 직원들이 처음에 많이 어려워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너 외국인이었지?”
전날 밤 베르단디와 함께 TV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언어를 능숙하게 지껄이는 장면을 목격한 기억을 떠올린 울드였다. 잠깐. 외국에서 살다왔다고? 그곳에서 바로 천계로 왔다면 이 나라의 언어 따위는 잘 모를 텐데?
“아 어떻게 일본어를 능숙하게 했냐고?”
“뭐야 페이오스. 내 생각이라도 읽는 거냐?”
“아니 네 표정에 쓰여 있잖아. 쿠쿡!”
“웃지 말고 설명해봐.”
이유 없이 화를 내며 페이오스를 다그치는 울드의 모습에 그녀는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설명 대신 힌트를 주는 것이었다. 답은 알아서 찾으세요! 라고나 할까?
“맨날 법술로 스쿨드한테 폭뢰를 먹여주시는 분께서 그런 것도 기억 안 나시나 보죠?”
“아하! 통역이 되는 법술이었냐? 그런데 페이오스 너. 왠지 날 약 올리는 말투다!!”
어렵지 않은 힌트에 재빨리 답을 맞히고 의기양양해하는 울드를 못마땅한 얼굴로 스쿨드가 말했다.
“흥! 남한테 폭뢰로 폐를 끼치는 울드따위는 바보라네! 메롱!!”
“오호라?! 우리의 스쿨드 님께서 폭. 뢰. 충. 격. 치. 료. 요. 법. 의 높은 치료도를 잊으신 모양이군요? 어때요? 한번 짜릿한 경험을 몸소 체험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우앙! 잘 못 했 어 요!!”
“요놈 잘 됐다. 맞아라! 맞아! 얍얍!”
울먹이며 두 손을 들어 머리를 가드 하는 스쿨드와, 허점을 왕주먹으로 찔러 수많은 밤을 먹이는 울드의 모습. 정말 가관이다 못해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애초에 여신들에게 고급이라는 단어는 중급이나 저급에 대조되는 단어라는 것밖에 생각을 안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유분방한 그녀들의 모습은 조용히 앉아 있으려는 묠니르의 생각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뭐하시는 겁니까?”
“말 안 듣는 동생분의 정신교육중이라네!”
“……정신교육?”
“으앙! 묠니르 살려줘!!”
……이게 정신 교육인가? 겨우 꿀밤 세례 정도는 정신교육이 아닌데? 예전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스쿨드를 훈련시킨다는 교관 울드(?)의 모습을 비교하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묠니르. 그나마 이들 중 제일 정상인 페이오스는.
“아! 향기 좋다~”
……아니. 방금 한 말 취소다. 제일 정상인걸로 보였던 페이오스는 한 송이 장미에 취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떠들썩한 상황인데도 그녀의 낭만은 절대로 식을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 웨이터 동무. 여기에 크바스와 보드카(러시아산 주류, 도수가 굉장히 높다.)3병, 131인지? 114인지 하는 아이스크림 갔다주는 것 잊이 마시오.”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그러네요. 언니랑 스쿨드, 페이오스, 묠니르까지. 참 다정한(?)분위기인데요.”
“그런 거야?”
“그런거에요.”
……베르단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 서둘러 저쪽 멀리 울드들이 앉은 자리를 확인해보는 케이이치. 커다란 E컵 가슴이 출렁이는(그래서 사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은발의 갈색 미녀는 귀엽다 못해 안쓰러운 소녀와 참으로 정답게(?)장난을 치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정답게…….
“하하하하...”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워버릴 수 없는 케이였다.
“음? 곡이 바뀌었네요.”
“아 그러네.”
조용하고 따분하기만 했던 교향곡이 끝났다. 새로운 곡이 연주되고 있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또 최고의 미성을 지닌 베르단디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케이를 제외하곤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간파해내지 못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연주되는 곡은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같은 유명한 위인들의 익숙한 곡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누가 작곡, 작사했는지도 모를 곡이었다.
“이건 무슨 곡일까?”
“처음 듣는 곡이네? 교향곡은 아닌 것 같아.”
분위기만 교향곡이랄까? 방금 전까지 식당 안에 무드를 조성했던 느릿느릿 움직이는 곡 대신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낮고 아름다운 피아노 건반 소리에 색을 입히는 부드러운 바이올린들과, 점잖은 첼로의 점잔빼는 소리, 튀는 것을 좋아하는 하프 연주까지. 조금 색다른 곡이었다.
“이거 클래식 음악 맞은 것인가? 빠른데. 하지만 좋은 음악이다.”
확 바뀌어버린 분위기의 음악에 청중들의 시각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무관심의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금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가 자신들만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특이하고 놀랍다. 속도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왠지 꼭...”
거기서 말을 잇지 못하는 케이이치.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그냥 빠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음악은 케이이치같은 특별한 사람들. 소위 스피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그것은 그의 앞에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에 빠진 베르단디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베르단디의 감탄사에 모두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고급스러운 곳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베르단디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꼭 잡고 천장 위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 복사판 ‘천지창조’를 감상한다.
“어머나 이렇게 예쁘다니! 호홋!! 내 미모에 어울리는 장미길이군요.”
도도하고 착각의 지존인 여신도 화사한 핏빛을 머금은 장미에 얼굴을 갖다 대며 향기를 들이마신다. 지나가던 손님들(모두 양복, 드레스차림이었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취해 아닌 척 걸어가다 한 번씩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개중에는 그렇게 시선을 빼앗겼다가 옆에 파트너로 서있는 숙녀 분들의 팔꿈치 강제 어택을 당하고 신음하는 사례도 보인다.
‘페이오스 그렇게 걱정 없이 앉아 있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걱정과 한숨만 안기고 돌아가게 돼.’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투와 부러움, 시기의 눈망울은 생각도 않고 이야기하는 케이였다. 물론 본인에게 이런 발언을 했다가는 장미의 태풍이 몰아칠 수가 있기에 입 밖으로 내밀지는 않았다.
“이런 곳에서의 술맛은 어떨까? 최고 아닐까??”
“우와! 왠지 후식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아!”
혼자 문답하며 들뜬 갈색 글래머 여인과 두 눈에 우주의 별들을 집어넣어 반짝반짝 빛내는 소녀까지. 모든 여신들은 이곳이 맘에 든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이 너무 튀어 손님들의 눈길들은 하나 둘씩 모였고, 케이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식당 분위기는 좋아. 부르주아들의 식당치곤 괜찮군!”
무표정으로 주시하던 묠니르도 여신들의 공통된 의견에 동감을 표시하지만 조금 경멸하는 듯 한 어조로 말했다. 겉으로 절대 내색은 안 하지만. 반면 우리의 케이는.
‘관동에서 제일 커다랗고 고급스럽다더니, 땅값도 비싼 일본에서 이런 곳이 있었나?’
새삼 관동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입만 쩍 벌리고 차마 움직일 생각도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멋있게 키운 콧수염, 둥그런 얼굴에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넉살좋은 미소, 툭 튀어나온 남산만한 배하고 양 갈래로 모양새를 잘 갖춘 콧수염. 흡사 제정러시아의 해군지휘관이나 일제 군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배불뚝이 남자였다. 그는 이곳 라울의 지배인이란 자였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웨이터들과 웨이트리스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아 예.”
공손히 인사로 답하는 이 착한 남자에게 여신들은 질책공습을 가한다.
“케이! 우리는 손님이라구!!”
“손님은 왕이다! 를 잊으면 안 돼 케이.”
“왕은 왕답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닙니다.”
“이봐들!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지켜야 할 도리가 있지.”
“손님은 왕이다!”
“옙.”
아니 하나도 모르겠어. 라고 케이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냈다가는 그녀들의 2차 잔소리 폭격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의 침묵을 지키는 반응을 여신들은 무언의 긍정으로 착각했는지 3명 모두 의기양양해있다. 그녀들이 지배인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너무해요! 우리는 손님인데 그렇게 인사를 받고 싶었어요?”
“아, 아니 저기..저는!”
“TV도 안 보고 사시나 보네?”
“그,그게 아니라...”
“자자 울드, 스쿨드 이제 그만하고”
“........”
......왜일까? 항변 한번 못해보고 3여신에게 당한 지배인이 처량하게 보이는 이유는?
허리를 숙이고 한국에서 ‘OTL’이라고 부르는 자세를 취하며 행동이 정지되었던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핫 정말 재미있는 분들이시군요.”
“엥? 지배인 고건 또 뭔 소리?”
“아이고 배야! 하하하하 배가 터질 것만 같구려. 허허허”
커다란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뜨리는 그 모습에 울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화답했다. 지배인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로 웃어본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히힛.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들으신 것인지요? 하하하.”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고급요리 TOP 10 ‘최고를 찾아서’!”
“고급요리 TOP 10 ‘최고를 찾아서’에서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녀들의 입에서 똑같은 프로그램명이 나오자 케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열렸다.
“정말로 그 프로그램만 본거야?”
“당연하지.”
“누가 한턱 쏜다는데 알아볼 것은 알아야 되지 않겠어?”
“이런 곳에 오기 전에는 먼저 예의와 격식부터 알아야 됩니다. 알았나요. 케이씨?”
‘아아 웬일들이셔. 이렇게 진지한 얼굴들은…….’
어쨌든 그녀들이 최초로 TV쟁탈전을 벌이지 않고 공통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사실에 케이는 어이를 상실한 얼굴로 조용히 그녀들의 설명을 듣기만 한다. 지배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들의 설명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저기 조용히 서 계신 분께서는 무슨 프로그램을?”
“안녕하세요. 베르단디라고 해요.”
조용하고 생기발랄한 베르단디를 지켜보던 지배인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다듬으며 묻는다. 베르단디는 그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프로그램명이 나온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아자! 요리백서’에서요”
‘아...아자 요리백서?’
역시 그녀답다. 유난히 튀었다. 그리고…….
“푸히히히히힛! 푸하하하하하! 정말로 웃겨. 저 여자 분만 본 프로그램이 다르잖아. 킥킥킥!”
이제는 신사, 숙녀들의 눈길은 모두 무시하고 아까보다 더 커다란 폭소를 터뜨리며 웃음소리로 온몸을 절인다. 미친 듯이 땅바닥을 굴러다니며 한명만 다르다는 혼잣말을 힘겹게 토해냈다. 그의 잠자는 곰처럼 뒹구는 모습에 여신들과 주위의 식당 종업원들까지 할 말을 잃었다.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려달라는 눈빛을 케이에게 보내는 베르단디와.
“……요리백서가 뭐가 웃기다는 것인지요?”
“어?”
케이의 귀를 잡고 소곤소곤 말하는 묠니르.
“요리백서...러시아에서는 좀처럼 듣기도, 보기도 힘든 좋은 TV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베르단디랑 같이 본거냐..’
아 그랬었지. 참. 기억 속에서 더듬어 찾아낸 케이였다. 그에게 묠니르가 하나 더 물었다.
“인간들은 원래 저렇게 이상한 겁니까?”
“아 글쎄.”
......물론 아니라고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묠니르의 눈에는 인간들이 더 이상하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보기에는 여신들의 말과 행동이 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네가 더 이상해.’
라고 그는 속으로 외쳤다.
“하하하하 좋은 자리로 모셔드리겠습니다.”
“훗!”
“?”
경멸과 조롱이 복잡하게 섞여 정확히 어느 쪽이라고 파악하기 힘든 비웃음소리에 뒤를 돌아본 묠니르. 그의 눈에 돈을 쏟아 부은 티가 역력한 양복 차림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분명 누군가의 비웃음 같았는데……. 이쪽을 향한. 웃음소리의 의문이 깨끗이 풀리지 않은 그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봉인된 골렘 마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감각이 오류를 범했다고 판단한 묠니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지배인이 소개해준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테이블에는 문제의 여자 3명이 소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음식도 나왔는데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단 말야!”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볼멘소리를 내며 투덜거리는 스쿨드가 반겨주었다.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죄송하다고 살짝 입을 열고 자리에 앉아 음식들을 확인하는 묠니르의 모습에 소녀는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뭐야. 아직 사람 말 안 끝났다고.”
“스쿨드 화내지 마라. 너 묠니르의 131이 먹고 싶지 않은 거냐?”
“아뇨. 조용히 하겠습니다.”
“호홋 그래야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울드가 말리지 않았다면 스쿨드는 더욱 심하게 투덜거렸을 것이다. 물론 울드의 행동은 말렸다기보다는 개먹이를 주는 척하다가 다시 빼앗으며 약 올리는 장난기 많은 주인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
“메인 디쉬는 어떤 것들로 하시겠습니까?”
그녀들과 그의 소란을 조용히 보고, 듣던 메이드복 차림의 웨이트리스가 메뉴판들을 보여준다. 그곳에 쓰인 수많은 음식들. 울드와 모두들 우와! 감탄사를 내뱉는다. 거기서 한명의 마족은 빠져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소란스러운 수다는 다시 시작되어졌다.
“페이오스 이것 어떠냐?! 죽이겠는데!!”
“울드! 보드카인지 뭔지 하는 술을 잔뜩 마시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면서 또 술이야?”
“술 고프니까 그러지!”
“우와!! 이 후식 굉장하다.”
…이보세요들. 와인이나, 디저트, 장식용 꽃이 아니라 제! 발! 메인 디쉬를 봐달라고요! 메이드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안경너머로 조용히 앉아 메뉴판을 차근차근 살피는 묠니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다행히 그는 정확한 것들을 골랐다.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가 들던 상관없다. 3개국 코스로 프랑스, 차이나, 소비에트 식으로 꺼내오도록!”
“네…….예?”
“소비에트 유니온.”
“아. 러시아 말씀이십니까?”
끄덕끄덕. 고개로 무언의 긍정을 표시하자 메이드는 조용히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참고로 브리누이(러시아 요리로 일종의 팬케익, 크레이프의 일종)는 잼을 집어넣지 말도록. 맛이 떨어지니까. 또 주방장에게 알려 주도록. 샤샬리가 아니라 샤실리(꼬치구이)라는 이름이네.”
“아. 알겠습니다.”
“다 스비다니야.(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기이한 붉은 눈의 남자의 낯선 언어를 피해 도망가다시피 하는 메이드. 쏜살같이 사라지는 여자와 묠니르를 번갈아 바라보던 울드가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니치보 니옛(아무것도 아니다.)”
엥 그건 또 뭔 소리? 울드가 묠니르의 엉뚱한 답에 어리둥절해 하자 묠니르 옆에 우아하게 앉아 장미꽃에 취해있던 페이오스가 설명해주었다.
“별 것 아냐. 묠니르가 살던 나라에서의 언어야. 러시아라고 했던가? 지금은 어색하지만 듣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지구 도움센터에서도 직원들이 처음에 많이 어려워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너 외국인이었지?”
전날 밤 베르단디와 함께 TV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언어를 능숙하게 지껄이는 장면을 목격한 기억을 떠올린 울드였다. 잠깐. 외국에서 살다왔다고? 그곳에서 바로 천계로 왔다면 이 나라의 언어 따위는 잘 모를 텐데?
“아 어떻게 일본어를 능숙하게 했냐고?”
“뭐야 페이오스. 내 생각이라도 읽는 거냐?”
“아니 네 표정에 쓰여 있잖아. 쿠쿡!”
“웃지 말고 설명해봐.”
이유 없이 화를 내며 페이오스를 다그치는 울드의 모습에 그녀는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설명 대신 힌트를 주는 것이었다. 답은 알아서 찾으세요! 라고나 할까?
“맨날 법술로 스쿨드한테 폭뢰를 먹여주시는 분께서 그런 것도 기억 안 나시나 보죠?”
“아하! 통역이 되는 법술이었냐? 그런데 페이오스 너. 왠지 날 약 올리는 말투다!!”
어렵지 않은 힌트에 재빨리 답을 맞히고 의기양양해하는 울드를 못마땅한 얼굴로 스쿨드가 말했다.
“흥! 남한테 폭뢰로 폐를 끼치는 울드따위는 바보라네! 메롱!!”
“오호라?! 우리의 스쿨드 님께서 폭. 뢰. 충. 격. 치. 료. 요. 법. 의 높은 치료도를 잊으신 모양이군요? 어때요? 한번 짜릿한 경험을 몸소 체험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우앙! 잘 못 했 어 요!!”
“요놈 잘 됐다. 맞아라! 맞아! 얍얍!”
울먹이며 두 손을 들어 머리를 가드 하는 스쿨드와, 허점을 왕주먹으로 찔러 수많은 밤을 먹이는 울드의 모습. 정말 가관이다 못해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애초에 여신들에게 고급이라는 단어는 중급이나 저급에 대조되는 단어라는 것밖에 생각을 안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유분방한 그녀들의 모습은 조용히 앉아 있으려는 묠니르의 생각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뭐하시는 겁니까?”
“말 안 듣는 동생분의 정신교육중이라네!”
“……정신교육?”
“으앙! 묠니르 살려줘!!”
……이게 정신 교육인가? 겨우 꿀밤 세례 정도는 정신교육이 아닌데? 예전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스쿨드를 훈련시킨다는 교관 울드(?)의 모습을 비교하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묠니르. 그나마 이들 중 제일 정상인 페이오스는.
“아! 향기 좋다~”
……아니. 방금 한 말 취소다. 제일 정상인걸로 보였던 페이오스는 한 송이 장미에 취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떠들썩한 상황인데도 그녀의 낭만은 절대로 식을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 웨이터 동무. 여기에 크바스와 보드카(러시아산 주류, 도수가 굉장히 높다.)3병, 131인지? 114인지 하는 아이스크림 갔다주는 것 잊이 마시오.”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그러네요. 언니랑 스쿨드, 페이오스, 묠니르까지. 참 다정한(?)분위기인데요.”
“그런 거야?”
“그런거에요.”
……베르단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 서둘러 저쪽 멀리 울드들이 앉은 자리를 확인해보는 케이이치. 커다란 E컵 가슴이 출렁이는(그래서 사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은발의 갈색 미녀는 귀엽다 못해 안쓰러운 소녀와 참으로 정답게(?)장난을 치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정답게…….
“하하하하...”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워버릴 수 없는 케이였다.
“음? 곡이 바뀌었네요.”
“아 그러네.”
조용하고 따분하기만 했던 교향곡이 끝났다. 새로운 곡이 연주되고 있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또 최고의 미성을 지닌 베르단디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케이를 제외하곤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간파해내지 못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연주되는 곡은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같은 유명한 위인들의 익숙한 곡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누가 작곡, 작사했는지도 모를 곡이었다.
“이건 무슨 곡일까?”
“처음 듣는 곡이네? 교향곡은 아닌 것 같아.”
분위기만 교향곡이랄까? 방금 전까지 식당 안에 무드를 조성했던 느릿느릿 움직이는 곡 대신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낮고 아름다운 피아노 건반 소리에 색을 입히는 부드러운 바이올린들과, 점잖은 첼로의 점잔빼는 소리, 튀는 것을 좋아하는 하프 연주까지. 조금 색다른 곡이었다.
“이거 클래식 음악 맞은 것인가? 빠른데. 하지만 좋은 음악이다.”
확 바뀌어버린 분위기의 음악에 청중들의 시각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무관심의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금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가 자신들만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특이하고 놀랍다. 속도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왠지 꼭...”
거기서 말을 잇지 못하는 케이이치.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그냥 빠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음악은 케이이치같은 특별한 사람들. 소위 스피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그것은 그의 앞에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에 빠진 베르단디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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