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여신님-세계를 구하기 위해9
페이지 정보
본문
용문달양(龍門達陽).
터널의 양쪽 입구 이마에는 그러한 한문이 새겨져 있었다. 브루스는 거센 폭우 속에서도 흥미가 동한다는듯 유심히 눈 앞의 터널을 살폈다.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달한다……라. 멋지군. 이것이 동양 최초의 해저 터널인가?”
길이 461미터에 너비 5미터, 높이 3.5미터의 이 콘크리트 터널은 브루스의 말마따나 바다 밑을 지나는 해저 터널이었다. 182구역은 관광 도시 답게 여러 가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해저터널도 그 중 하나였다.
브루스는 터널 입구 근처의 다 떨어진 표지판을 바라보며 해저 터널의 역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진우가 그 앞을 막아섰다.
“사부님의 관광 욕구는 일이 다 끝난 후에 천천히 채우도록 하죠? 일단은 조사가 먼저입니다.”
“쳇.”
브루스는 짧게 투덜거리면서 터널의 입구로 발을 옮겼다. 그것을 시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다가 옆의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 양, 정말 사념이 이쪽으로 이어지고 있나요?”
“응. 정확히는 저 섬으로 이어지고 있어.”
유리가 가리킨 곳에는 해저터널의 출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도가 있었다. 미륵도와 182구역을 연결해주는 다리들이 모두 태풍으로 무너졌기에 섬으로 향할 수 있는 길목은 오직 여기뿐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 뿐인 길목도 시원찮았던 것이, 바로 곁에 바다가 있었기에 일대 전체가 물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육지보다 낮은 위치에 뚫려있는 해저터널은 말할 것도 없이 물에 잠겨 있었다. 마치 폭포수를 방불케하는 것처럼 주위의 바닷물이 터널의 입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리는 주변의 전신주를 붙잡은 채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몸을 지탱시켰다. 터널로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소리치지 않으면 다른 이들과 얘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안으로 들어갈 수나 있겠습니까? 터널 내부는 이미 물로 한 가득 잠겨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죠! AI슈츠의 중력장 조절로 물살에 떠밀리지 않도록 주의해서 가는 수 밖에!”
진우는 마리의 물음에 큰 소리로 답하며 브루스의 뒤를 따랐다. 일행 중 유일하게 AI컴플리트 세트를 착용하지 않은 브루스가 걱정되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브루스는 흡기공을 이용하여 물이 차지 않은 벽면을 수직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와 유리는 그를 올려다 보며 혀를 찼다.
“역시 인간이 아니야…….”
그렇게 일행은 천천히 해저 터널로 진입했다. 이미 해가 떨어진지 오래라 가뜩이나 어두운 터널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피스 대원들의 AI헬맷에는 적외선 고글이 장착되어 있었기에 이런 어둠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브루스는 맨 몸이면서도 홀연히 선두로 나서고 있었다.
심권을 터득한 그는 그 만큼 심안이 발달되어 있어서 굳이 시각에 의존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촤아아아아아
귓가로는 물이 쓸려가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은 내리막이었기에 물이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았지만, 내려갈수록 점점 수면이 상승하여 이내 가슴까지 차올랐다.
시민은 AI슈츠의 중력장을 끌어올려 뒤에서 자신을 내리치는 수압을 견뎌내
다가, 문득 신장이 제일 작은 유리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과연 그녀의 걱정대로 유리는 간신히 목만 물 밖으로 내민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악!”
그렇게 심적으로 불안해지자 집중력이 흐트러진 유리는 자신을 지탱시켜주던 중력장을 컨트롤해내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려 버렸다. 그것을 마리가 간신히 잡아주며 진우에게 소리쳤다.
“멈추십시오! 이 이상의 전진은 무립니다!”
“하아. 어쩔 수 없나.”
진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AI슈츠로 중력장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이 앞으로는 더욱 물이 차있을게 분명했고, 그만큼 숨쉬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아무리 만능인 AI컴플리트 세트라고 해도 산소통이 달려있지 않은 이상 물 속에서의 장기적인 활동은 무리였다.
‘차라리 물살에 떠밀려 신속히 지나가는 것은 어떨까나.’
위험한 도박이다. 그랬다간 일행이 뿔뿔히 흩어지는 것은 물론 몬스터의 기습에도 대응할 수 없다. 수중 형 몬스터와 조우라도 할 시에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아니. 이대로 계속 전진한다.”
그때 터널 전체에 은은하게 브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우들처럼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는데 그 목소리는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확연히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패턴 그레이의 능력과 관계 되는 듯 했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물이 저지대에 모이지 않고 반대편으로 계속 빠져나가고 있어.”
“……!”
모두의 표정에 긴장하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일행은 새삼 주위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향했다. 붉게 물든 적외선 시야 사이로 자신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과연 브루스의 말대로 터널의 가장 저지대인 중간 지점은 물이 고여 있지 않았다. 수면은 가슴 부근에서 멈춰있을 뿐, 물살은 용케도 브이자 지형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형 상 낮은 지대부터 물이 차는 건 당연한 일. 이런 현상은 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이상 능력이 관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응?’
유리는 애써 마리와 시민의 손에 의지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자신에게 다가오는 뭔가를 볼 수 있었다.
‘쓰레기……인가?’
바닷물에 휩쓸려 터널로 들어온 잡동사니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물체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유리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꺅!”
유리의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그것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리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신들에게로 떠내려 온 것. 그것은 사실…….
‘시체!’
썩은 나무토막 같은 그것은 잔뜩 물에 불은 시체였던 것이다! 진우는 인상을 굳히며 시신이 유리들에게 닿지 않도록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182구역의 주민……인가?”
시신을 조사하던 진우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입고 있는 옷가지나 물품들을 봐서는 이 지역의 주민인듯 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182구역의 거주인이 이런데에서 시체로 나타난 것일까?
거기다 시신의 사인도 묘하기 그지없었다. 시신은 마치 전신의 수분이 빨려 나간 것처럼 피부며 장기가 잔뜩 오그라든 상태였던 것이다. 도저히 익사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전방을 주시하던 시민이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앞을 봐요!”
“……!”
그곳에는 방금 전의 시체와 마찬가지 상태인 시체들이 계속해서 떠내려 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말라비틀어진 미이라들. 그것도 한두 구가 아니었다. 시체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떠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일행이 있는 지역을 자신들로 가득 채우려는 것처럼.
“아, 아아, 아아아아.”
유리는 주위에 떠오르는 시체들에 진저리를 치며 시민에게 매달렸다. 마리도이 참상에 할 말을 잃고 오라 소드를 들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시체, 시체, 시체…… 시체 뿐이었다.
어두운 물 위로 일그러진 시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져 간다. 분명 방열 기능이 확실한 AI슈츠를 입고 있건만 피스 대원들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건……!’
브루스는 자신이 붙어있는 벽으로 다가온 시신을 살펴보다가 눈에서 이채를 띄었다.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시체들. 그것은 자연 계의 생물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정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서 육신을 남겨둔 채 생명의 핵만 빼앗아간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이 수 많은 사람들의 정을 대체 어디에 사용하려고?
‘설마!’
브루스는 한 가지 예상을 떠올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설마! 설마 그 녀석이!
《크크크크크크.》
그때 터널의 어둠 저편에서 음산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진우 일행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들은 이 웃음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우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쿠사나기!”
콰아아아아아
순간 검은 물이 요동을 치며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덩달아 시체들까지 몸을 뒤틀며 수면 위로 뛰어 올랐다.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 떼처럼 푸드득 홰를 치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했다.
“크, 크크크크, 크크크크큭! 늦어! 늦어! 늦어! 늦어! 늦어!”
증발한 물들은 짙은 먹구름으로 탈바꿈 되어 한 데 뭉치더니 이윽고 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바로 요르문간드의 여덟 화신 중 하나인 쿠사나기였다.
쿠사나기는 시체 하나를 발판 삼아 물 위에 떠 있었는데 그의 시선은 줄곧 브루스만 노려보고 있었다.
“크크크큭, 브루스. 드디어 복수를 할 날이 왔다. 오늘이야 말로 이곳을 네녀석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쿠사나기는 말을 끝내고 전신으로 힘을 방출했다. 그러자 시체들에 마정을 미리 심어놨었는지 물 위에 둥둥 떠있던 시체들이 검은 구름에 휩싸이더니 여러 가지의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天叢雲劍)! 아마타노오로치의 검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피스 대원들은 이것들이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지 몸으로 체험해본 적이 있었다. 케이 일행이 오기 전에 피스 레드 성마리가 쿠사나기의 마정으로 인해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로 변해서 도시를 파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라 능력자가 몬스터로 변하니 그 위력은 엄청났다. 하늘에선 번개가 떨어지고 땅에는 바람에 휩싸인 표범이 날뛰고 거기다가 패턴 레드의 능력인 절단까지 사용해서 오라 능력자가 몬스터가 되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크크큭. 이것들을 너희들이 이들을 상대로 오라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나와 달리 너희와 같은 테라인인데 말이야. 어디 동족끼리 상잔해 보라고.”
“크윽, 이런 비겁한!”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이 182구역의 민간인들을 숙주로 삼고 있는 한 몬스터를 상대하듯 오라능력을 펼칠 수 없었다. 오라능력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숙주에게 타격이 가기 때문이다.
진우는 사람의 목숨까지 담보로 삼는 쿠사나기의 방식에 분해하며 오라능력을 끌어올렸다. 처음부터 쿠사나기는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심리까지 이용하는 뱀같은 술수였다.
[키키키키키!]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의 기괴한 울음 소리가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터널에 울려 퍼졌다. 싸울 의욕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그 압도적인 개체 수에 유리는 평정심을 찾지 못했다.
그때 물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던 그녀를 안아 올리는 한 손길이 있었다. 시민이었다. 그녀는 유리의 허리를 안아 자신의 가슴께까지 끌어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고운 선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음정의 주파수 세기의 분포를 조정하여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패턴 옐로우의 능력, 포르만트였다.
포르만트는 시민의 품안에 있던 유리에게서부터 주위의 피스 대원들에게 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유리는 몸의 떨림이 가라앉자 새삼 시민의 능력에 감탄했다.
시민은 그런 유리의 얼굴을 마주하며 아무 말 없이 미소지었다.
“……고마워, 시민 언니.”
마음이 안정되자 유리는 한층 더 냉정하게 몬스터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그리고 자신이 저들에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패턴 핑크. 그 힘이 있는 한 저들은 자신에게 손 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시민은 오라 능력을 사용함으로서 자신에게 몸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유리는 시민에게 감사를 표하며 오라 능력을 전개했다.
촤자자자작
유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의 의식과 접속을 시작했다. 마인드 키퍼로서 자각한 그녀는 한계에 달하는 운산(運算) 능력으로 마정의 핵에 사로잡힌 민간인들의 의식을 해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겹겹이 쌓인 정신 장벽을 해제하고 그 의식과 접속, 마정의 핵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진 감정들을 다스린다!
[쿠와아아악]
순간, 유리와 시민을 덮치려던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들을 감싸던 검은 먹구름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마정의 핵 째 소멸하기 시작했다. 숙주가 저번과 같은 오라 능력자가 아닌 이상, 민간인의 의식을 해킹하는 건 유리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마정의 핵에서 해방된 민간인들은 줄 끊어진 인형들처럼 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고 검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유리의 활약에 힘입어 다른 대원들도 맹렬히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의 대군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라아아아아아
라아아아아아
시민의 입에서 한 번에 두가지의 음파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지금껏 자제해오던 능력, 에코였다. 폐와 성대를 매질로 삼아 탄성파를 전파시키는 기술이었기에 그 동안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마음껏 에코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시민의 AI헬맷에 새로이 장착된 나르키소스(Narcissus) 덕분이었다. 피스메이커의 기술부에서 패턴 옐로우에게 추가해준 이 장비는 오리하르콘이 셀프 라이팅 기능을 수행 시 에테르 성질을 띈다는 것을 이용, 음원과 반사면 사이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폐를 매질로 삼지 않고도 에코를 생성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즉 이 미디엄 제너레이터(Medium Generator)로 인해 시민은 더 이상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에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키이이이잇]
피스 대원들에게 다가오던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의 움직임이 하나 둘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음파의 늘어뜨림으로 지연시키는 기술, 페르마타였다.
페르마타와 같은 경우 사용 대상이 하나의 개체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는 용이하지 않았지만, 에코와 병행해서 사용하자 전방위 공격이 가능해졌다.
“하아아아아!”
진우는 느려진 적의 움직임을 피해내며 그 안으로 주먹을 내찔렀다. 칠성권제 5의 발경으로는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 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숙주에게 까지 타격을 주겠지만…….
터어어엉
놀랍게도 그의 발경은 숙주를 제외한 마정의 핵만을 파괴시켰다. 가속으로인한 전사경으로 진우의 주위에 있던 물살들이 폭발하듯 터지며 터널의 벽을 두들겼다. 진우는 거세게 고함을 내지르며 재차 다가오는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에게 발경을 날렸다.
" 칠성권 문곡! "
칠성권 제 4의 발경. 상대의 주심만을 공격하는 심경에 격중 당한 적들은 하나같이 괴성을 내지르며 숙주에게서 독립되었다. 진우는 뼈를 깍는 수련으로 심경(心涇)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가속으로 전사경을 끌어올린 진우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의 사이를 누비며 심권을 펼쳤다. 그렇게 심경으로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이 숙주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그 뒷처리는 피스 레드 성마리가 맡게 되었다.
특별히 융합 형 몬스터에게 대항할 능력을 가지지 않은 그녀는 사전에 진우와 대응책을 세워야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콤비네이션이었다.
진우가 심경으로 마정의 핵을 분리해내고, 마리가 그것을 처리한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실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무영신풍류(無影神風流) 일식(一式) 섬광(蟾光)!”
촤자자자자작!!
[쿠와아아악]
커튼을 찢는 소리들과 함께 몬스터들은 붉은 섬광의 격자격세(擊刺格洗)에 수십 조각으로 난도질 되었다.
그녀는 예전 피스 버밀리온 코마히코가 일식 섬광을 발도술로 시전한 것에서 강한 영감을 얻었는데 그것은 동생 아인이 이형 잔월을 썼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본질을 우선시 하는 그 검술에서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 것이다.
마리는 그때의 영감을 떠올리며 일식 섬광을 단지 형식에서 끝내는 게 아닌 하나의 본질로서 구사해냈다. 그러자 오라 소드가 그려낸 붉은 빛의 선들은 한 치의 끊어짐도 없이 공간 곡선의 축폐선(縮閉線)을 만들어 냈다.
그 붉은 선의 자취는 닿는 족족 모든 것을 베어냈으니 가히 섬광의 향연.섬광무라고 부를 만 했다.
“이, 이런 일이!”
그런 피스 대원들의 강세에 쿠사나기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황은 작년의 크리스마스 때와 너무나도 판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인질극으로서의 의미는 잃어버린 지 오래. 이래서야 단지 머릿수로 밀어 붙이는 꼴이다. 설마 마정의 핵에 이런 대응책들을 가지고 나왔을 줄이야!
“네 녀석이 준비하는 동안 우리도 놀고 있던 건 아니라는 거다!”
브루스는 노호성을 내지르며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로 가득 찬 터널의 한 가운데로 뛰어내렸다. 그는 시체를 발판 삼아 내려선 뒤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그 짧은 딜레마를 놓치지 않고 주위의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개미떼와 같은 모습이었다.
“타아아아앗!”
그러나 브루스는 당황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번개같이 회전하여 전사경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진기를 끌어 모은 그는 일단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마귀형 몬스터의 아래턱을 개산벽으로 올려치고 그 반동으로 반대편에 있던 몬스터에게 승룡퇴를 날린 후, 연환칠격으로 전방에 있던 몬스터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 일격 하나 하나가 문곡의 힘이 실린 심경이었기에 아메노 무라쿠모노츠루기들은 마정의 핵 째 산산조각 나버렸다.
[키이이이잇]
그때 물살을 가르며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가시 모양의 등지느러미가 하나 있었다. 귀상어의 외양을 띈 거대한 수중 형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였다. 그것은 물 속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브루스를 향해 뛰어 올랐다. 한입에 그를 삼켜 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브루스는 되려 그 머리 좌우 측면의 돌출된 부위를 거세게 진각으로 밟으며 쏘아지는 탄환처럼 앞으로 날아 올랐다. 그는 터널을 벌집처럼 가득 메운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의 무리들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업장(業障) 소멸!
“칠성권 녹존!”
촤아아아악
칠성권 제 3의 발경! 그 거대한 경기의 힘 앞에 몬스터들은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 성 처럼 산산히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녹존의 위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십 미터 뒤에 위치한 쿠사나기에게까지 밀려 들었다.
“크헉!”
간신히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을 방패삼아 녹존을 막아낸 쿠사나기.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이것이 한낮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어째서 녀석과 나는 이렇게나……!’
쿠사나기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와 자신의 사이에 놓여진 능력의 공백을 도저히 메꿀 방법이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네 녀석은 이렇게나 강한 거지? 나는 내 모든 것을 불태우며, 심지어는 생명까지 불태우고 있는데! 어째서 녀석은 저렇게나 태연자약한 얼굴로!
‘손 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거지?’
분하다!
분하다!
자존심이나 명예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껏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나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있음으로 해서! 네 녀석, 피스 그레이가 있음으로 해서 나, 쿠사나기라는 존재는 한 없이 처량해진다!
‘보지 마!’
유리관에 갖힌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차가운 눈동자들! 수차례의 실험에 괴로워하던 자신을 무감각하게 관찰만 하던 그 모습들!
‘그때로 돌아가는 건가?’
간신히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모르모트 취급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능력을 얻음으로써! 누구도 무시 못할 힘을 얻음으로써! 멸시와 고통의 나날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정할 수 없어! 이런 건!’
쿠사나기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나는! 질 수 없어!”
패배는! 실패는!
“나는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단 말이다아아아앗!”
쿠사나기의 산발한 머리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브루스에게 날아들었다. 그것은 브루스의 전신을 옭아맨 후 터널의 천장으로 그를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들이 일제히 시퍼런 칼날들을 그에게로 찔러온다. 하지만 브루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다!”
“……!”
그 외침에 쿠사나기는 두 눈을 부릅뜨며 천장에서 정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곳에는 지하 터널의 물살을 좌우로 가르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녹색의 잔광이 있었다. 그 잔광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어느샌가 쿠사나기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물체의 잔향 소리가 뒤이어 터널에 울려퍼졌다.
치이이이잉!
그리고 쿠사나기를 강타하는 쇼크 웨이브! 미처 방어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브루스에 의해 방어진이 뚫리자 속전속결로 가속 능력을 전개한 진우가 슈팅 스타를 사용한 것이다. 기체 속을 음속보다도 빨리 전달되는 강력한 압력파가 정면에서부터 쿠사나기를 덮쳤다.
콰직!
“크아아아악!!!”
터널 안에 쿠사나기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우의 슈팅스타 만으로는 쿠사나기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브루스는 제 2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칠성권 녹존!
상대의 정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제 4의 발경! 그 전율스러운 발경이 쿠사나기를 덮쳤다.
“크아악!!”
또 한차례의 비명이 울리면서 쿠사나기는 흔적 없이 소멸해 버렸다. 쿠사나기가 소멸함으로써 쿠사나기에 의해 현현되있던 아메노쿠라쿠모노츠루기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마정의 숙주가 되었던 182구역의 민간인들이 모습을 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정을 모두 흡수당해 죽은 상태. 하지만 그들은 시체마저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터널 안이고 아직은 물이 차있었다. 시체들은 하나 둘씩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아. 하아. 끝난 건가.”
그제야 어느 정도 한숨을 놓은 피스 대원들은 긴장을 풀었다. 다들 한계에 가까운 능력을 장시간 사용했기에 숨들이 거칠어져 있었다. 가장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 유리 같은 경우는 아예 다리가 풀려 물 속으로 가라앉을 뻔한 걸 시민이 붙잡아 주었다.
마리는 아직도 전투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오라 소드의 절삭성 커터를 거두지 않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우는 그런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터널의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로써 세 번째……인가.”
브루스의 젖어 있던 몸은 어느샌가 말라 있었다. 전신기화(全身氣化)로 묻어있던 물들이 남김없이 수증기로 증발한 것이다. 브루스는 밑으로 늘어진 땋은 머리가 물에 닿지 않도록 자신의 목에 둘러메며 생각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다섯. 이제 슬슬 본체가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은데.’
쿠사나기가 소멸함으로 인해 남은 요르문간드의 화신들이 힘을 하나로 합칠 것이다. 하지만 브루스는 내심 그걸 기대했다. 그는 원하고 있었다. 좀 더 강한, 그리고 자신에게 죽음 마저 인지시켜 줄 수 있는 적수들을.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이유니까.’
되도록이면 오라의 주인에게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을 자신의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이용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이라도 든 건가.’
브루스는 아직도 이런 인간적인 감정에 집착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럴수록 그가 천계에 도달할 날은 멀어져만 갈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닿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는 끝이 나지 않을 잡념을 떨쳐 버리며 일행에게 소리쳤다.
“상황은 끝났다! 이만 철수한다!”
“피스!”
진우는 시원하게 경례를 붙이며 팔라딘 대에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이 터널에 널린 민간인들과 시체들의 뒷처리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아마 수해 복구에 맞먹는 대작업이 될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태풍에 피해를 입은 수해민으로서의 기억 조작이 행해질 테고, 시체들은 사망자 수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좀 더 미륵도까지 조사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나머지 발견되지 않은 주민들은 모두 그 곳에 안치되어 있을 것이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진우는 새삼 죽어버린 쿠사나기에게 분노를 느꼈다.
《키, 키히히…….》
“……!”
그때 터널 전체에 쿠사나기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스 대원들은 그야말로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아, 아직도 살아있어……?”
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간, 터널 한쪽에 쿠사나기의 머리가 생기더니 감겨있던 눈이 번쩍 뜨이며 붉은 안광이 흉흉히 빛났다.
《암! 살아있고 말고! 네 놈들을 놔두고 어떻게 나 혼자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으윽.”
그 원기 어린 목소리에 마리는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유독 이런 괴기현상에 약한 그녀로서는 몸서리가 쳐질 만한 장면이었다. 창백한 얼굴 가죽이 말을 하다니!
《킥! 키킥! 죽을 수 없지! 죽을 수 없어! 꺄하하하하! 이대로 두 손 놓고 죽을 성 싶으냐!》
턱
그러나 브루스는 그렇게 실성한 것처럼 웃어대는 쿠사나기의 얼굴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쿠사나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두 손 놓고 죽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냐?”
《히,히히히히! 내가 처음에 뭐라고 말했지? 네 놈들은 모두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지? 이히히히힛! 그 말대로다! 하나도 남김 없이!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죽여주지!》
브루스는 천천히 인상을 찡그렸다. 녀석의 말이 단순한 죽기 직전의 발악으로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손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이 자리에서?’
순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브루스는 진우 일행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모두 당장 여기서 나가!”
“……?”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는 피스 대원들. 브루스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런 협소한 터널에서 녀석이 모습을 드러낼 때 부터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거기다 182구역을 덮친 이상 태풍! 녀석이 준비했다고 말한 건 이런 의미였던 건가!
《이미 늦었어. 너희들이 여기로 들어온 이상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쿠사나기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브루스의 발밑에서 나오는 게 아닌 터널 전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브루스가 발을 떼어 보니 어느샌가 쿠사나기의 얼굴은 그곳에서 사라져 있었다.
시민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이건 대체!”
“아까 물의 흐름이 이상하다고 얘기했던가? 바로 그거다.”
브루스는 무섭도록 굳은 표정으로 터널의 안 쪽을 노려보았다.
“이 터널 자체가 녀석의 몸 안이었던 거야.”
“……!”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182구역을 뒤덮고 있던 태풍도, 터널에 물이 고여 있지 않았던 것도.
‘터널 같은 건 애초에 부숴진지 오래였다.’
단지 이곳은 녀석이 꾸며놓은 무대, 스스로의 몸을 변이시켜 만든 위장 터널! 태풍은 쿠사나기의 육신이 변이를 일으킴으로서 발생한 차원 왜곡 현상이었던 것이다!
브루스는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피스 대원들에게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걸어 들어온 거지. ……녀석의 입 안으로.”
투화아아아아악!
순간, 터널의 외벽들이 일제히 검은 먹구름이 되어 사라지며 바닷물과 진흙덩어리가 한데 뭉쳐서 피스 대원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
skoord입니다. 저 반갑죠? 라고 해보야 반가울 분 하나도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점점 상상력이 부족해져서 글의 진행속도가 느려지고 반응도 별로 없으니 빠른시일내에 완결짖고 새로운걸 하나 써볼까 합니다. 뭐 빠르게 끝내게 될지는 아직 확정된게 아니라서 좀더 고민해보고…계속 할 수 있으면 해나가겠습니다.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