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진짜 불청객은 항상 당신과 함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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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떡하니 차려진 중국식 채소요리에 대해 심각히(?) 논하던 케이와 베르단디에게 낯선 음악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음식이나 사교에 신경이 쓰여 아름다운 음향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잔잔한 호수 위에 있는 것 같아요.”
베르단디의 감탄사에 케이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케이는 베르단디의 뒤쪽에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는 중년의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플랫카드를 들고 있었는데 일본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백을 하겠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라는 글씨였다. 플랫카드를 해석한 케이는 경악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입만 쩍 벌린 그의 모습은 흡사 동네 바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의 머릿속이 혼란에 휩싸였다. 그 옛날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어둠과 혼란뿐이었다는 카오스였다.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케이의 반응에 베르단디는 당황하며 한 적도 없는 잘못을 찾으며 케이를 불렀다. 손을 흔들어 절대 아니라며 답하는 남자의 번뇌는 절대 멈추질 않았다. 고백이 무슨 전과인양 그녀의 맑고 깨끗한 푸른색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열기가 뿜어져 나와 그를 덮쳤다. 본인은 손거울이 없기에 잘 모르지만 케이의 얼굴은 고혈압 환자가 상태가 심해 얼굴이 붉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베르단디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혹시 열이? 엄청 심해요!”
“아 어디 아픈 게 아니라…….”
베르단디의 이마가 그의 이마에 다가와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의 혼란스러운 속을 알지 못하는 베르단디는 호들갑을 떨며 정신없이 헤맨다. 아니라며 해명을 하지만 그를 너무도 걱정하는 베르단디의 눈빛에 케이는 말꼬리를 흐렸다. 저 멀리 앉아서 고개를 흔들며 혀를 끌끌 차는 하얀 정장의 지배인이 눈에 띄었다. 그가 새로운 플랫카드를 꺼내 휘갈기고 들어올렸다.
‘지금입니다. 당장 고백하세요!’
“그럴 수 없다니까!”
“뭐, 뭐가 그럴 수 없다는 거죠 케이씨?”
“아 아냐!”
그녀에게 고백해!
아니야! 너무 어설퍼졌어. 다음에 다시 해!!
흥! 이렇게 말 잘하고 어여쁜 애인과 키스도 못해보는 바보
뭐야? 이 변태 덩어리!!
욕구불만!
‘모두 입 닥쳐!’
그를 주시하는 베르단디의 예쁜 두 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케이에게 주변에서 수많은 조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전상 후퇴를 주장하는 소심한 이들도 있는가 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야 한다는 급진파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너무도 착해서 베르단디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지도 않는 욕지껄임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것들을 조용히 무마시키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다행이에요. 전 케이씨가 걱정이 돼서.”
“미, 미안해 방해꾼들이 너무 많아서.”
“예?”
“아 아무것도 아냐.”
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키스’와 ‘고백’을 요구하는 수많은 방해자들. 헛바람을 들이쉬며 그들을 무시해보지만 이미 작은 무엇들에게 정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본체를 지탱할 힘이 없다. 말로는 괜찮다! 를 남발하지만 혈색이 좋지 않아 여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다 세계 최초로 애인과 식사하다 고백 하고 죽은 일본인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캉달캉.
심장은 운동장 수십 회 돈 것처럼 덜컥거리는 속도에 점차 가속도가 붙어왔다. 땀이 등을 타고 주르륵 내려온다. 그리고 자괴감이 그를 지배했다.
‘기회가 왔는데 꼴사납게 이게 뭐람.’
둘이서만 있을 기회가 왔다.(?) 방해꾼도 없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문장만 나오면 정말 완벽한 날일 텐데. 불행히도 입은 그런 닭살 돋는 문장을 혐오하는지 덜덜 떨릴 뿐 열리지 않았다.
‘킥킥 우리가 이겼네.’
‘시끄러!’
그런 케이의 혼잣말에 데이트를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케이 혐오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주전론자(?)들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내는 장면(경마장에서 흔히 볼법한 티켓으로 추정되는.)이 포착되었다. 케이는 그들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경마장에서 쫓아내고 주전론자들이 좋아할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입이 떨리며 열렸다.
“저 베르단디.”
“네?”
다 죽어가던 케이가 가까스로 입을 열자 안도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베르단디. 케이는 그녀의 두 손을 평생 풀지 않을 것처럼 꽉 잡았다. 가까워진 그의 체온이 손을 감싸자 꼭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베르단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네.”
“너를.”
“네.”
“사…….”
안 돼! 우리 돈이 날아간다. 케이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만 달러(??)를 잃게 생긴 불법 도박 마니아들의 절규와 저주 섞인 한탄, 그리고 케이의 현명한 지혜로 그 수만 달러를 따게 생긴 주전론자들의 환호성이 서로 교차하지만 케이는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사랑.”
“이런! 정말 오랜만이군요. 베르단디 선배.”
........도대체 누구야! 도박 마니아들과 케이의 외침이 하늘을 찔렀다.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 낯익은 것이었다. 그리고 케이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아오시마가 있었다.
“아오시마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달갑지 않은 불청객의 난입에 이를 빠드득 갈며 노려보는 케이이치. 그를 보고 코웃음을 날린 검은 양복의 사내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제가 선배처럼 한가하게 바이크나 만. 지. 작. 거리는 사람도 아닌데 뭐 하러 이런 시시한 곳에 오겠습니까?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말이죠.”
미소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베르단디만 눈 여겨 보는 아오시마. 그는 케이에게 있어서 둘 도 없는 개망나니라 할 수 있는 자였다. 아니 바람둥이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리겠지만 허영심 가득 찬 여성들을 홀리게 만들 미모에 어울리지 않게 괴팍하고, 짜증나는 행동으로 그와 베르단디를 곤경에 빠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케이에게는 변함없는 괴짜로 보일 수밖에.
“안녕하세요. 아오시마!”
지난 앙금(?)은 이미 다 털어버리고 미소로 화답하는 베르단디. 아오시마에 대한 어떠한 악감정이나 분노 따위가 담겨져 있지 않는 순수한 얼굴이었다. 옆에 서 있던 케이이치는 조금 난감한 얼굴로 여신의 인사를 받는 녀석을 노려볼 뿐 차마 베르단디 앞에 서 있는 저 남자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케이를 비웃으며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의자를 끌어와 앉는 아오시마.
“베르단디 선배는 언제 봐도 아름다우십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선배를 따라 올 자가 없죠. 정말 여신 같은 아름다움입니다.”
자기 앞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가 진짜 여신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온갖 찬사와 미사여구를 붙여 베르단디를 칭찬하는 아오시마. 그는 베르단디를 원한다는 강렬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칭찬에 감사하다며 고개만 숙일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예전부터 써왔지만 잘 통하지는 않았던,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비장의 조커를 꺼내 드는 아오시마.
“웨이터!”
약간 신경질적이고 급한 말투에 허겁지겁 젊은 남자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거만하고 딱딱한 어조로 고급 프랑스제 와인의 이름을 꺼내는 아오시마. 그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멸하는 눈빛의 웨이터가 케이들이 앉은 테이블을 싹 훑어보고 지나갔지만 아오시마 본인은 잘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어떻습니까? 방금 제가 시킨 와인의 매력이?”
재력의 귀티를 팍팍 튀기며 여자를 꼬드기는 아오시마. 불행히 그는 아직도 베르단디가 어떤 여자인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와인에 대한 아오시마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베르단디.
“그런데 아오시마는 여기에 무슨 일로 왔나요?”
“예? 아 예.”
속으로 실패했다며 온갖 욕지꺼리를 뱉어내는 아오시마. 몇 초 동안 말문을 잃고 헤매는 아오시마를 바라보며 케이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아오시마의 모습은 마치 TV 만담프로 속의 동료에게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고 난감해하는 장면과 매우 비슷해 있었다.
“이 식당을 비롯해서 밑에 있는 모든 일렉트라 네트워크의 매장들은 전부 저희 아오시마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요코 네의 것보다 더 크고 신출내기에 불과한 소니나, 코흘리개 삼성에 비교하면 그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관동 최고의 전자제품 매장도 끼어 있고요.”
“아 네.”
잘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거리며 아오시마에게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내자 아오시마는 괜히 소니며, 삼성을 꺼냈다며 가슴속으로 북을 쳐댔다. 옆에 덤으로 끼어 앉아있는 케이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신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지만 베르단디에게만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는 아오시마가 알 리가 없다.
“어쨌든 오늘은 상권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매출이 떨어지는 매점이 있는지, 그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다 출출해져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나의 아오시마[부자가 서로 다른 그룹을 경영함] 그룹전용 VIP룸에 비하면 새발에 피에 불과하지만요. 하하하”
“와인 나 왔 습 니 다!”
이 정도면 베르단디도 결국 넘어올 거라고 판단하고 여분의 조커들을 마구 남발했으나 베르단디는 ‘아 네’라는 그렇다는 식으로 이해하며 넘어갈 뿐이었다. 그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자 웨이터가 큰소리로 외치며 와인을 부어 준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환장해하며 미칠 듯이 외치는 아오시마는 화풀이겸 웨이터를 경멸과 짜증의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었다. 웨이터도 겉으론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속으로는 그의 굵직하고 타격감 좋은 주먹으로 아오시마의 복부를 가격하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짜증나고 신경 쓰이지만 본분을 다한 웨이터에게 아오시마가 두둑한 돈 봉투[달러로 추정되는.]를 건넸다. 옆에 덤으로 끼어있던 케이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웨이터는 더운 여름날 폭포 속에 들어가 더위를 녹이는 듯 한 쾌감을 새롭게 느끼며 미소로 화답했다.
“케이 선배님. 이런 레스토랑에선 팁을 나눠주셔야죠! 혹시 챙겨 오시지 않은 것입니까?”
“아. 난 여긴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런 것은 잘 모르는데. 죄, 죄송합니다.”
네코미 공대생들과 자동차부 회원들 사이에서도 성실하지만 재력이 모자란(!)인상 좋은 이로 기억에 남는 케이의 약점[약점이랄 것도 없지만 금상첨화라고 돈 없고 빽 없는 이에겐 항상 비웃음이 날아온다. 특히 ‘아리따운 처자’를 곁에 두고 있는 처지라면 더더욱 말이다.]을 들춰내며 그를 계속 쿡쿡 건드리는 아오시마. 정말 알지 못했는지 케이는 미안하다를 남발하며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숙인다. 손님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팁으로 받게 된 웨이터는 자신도 모르게 직업정신대로 허리가 숙여짐을 느낀다.
“앞으로는 조심 좀 하세요. 이런 곳에 오면 돈이 필수입니다.”
“하하…….”
죽여서 고기로 씹어도 시원찮을 후배놈의 공격에 한방 먹고 미소를 지어보이는 케이이치. 아오시마는 자신이 끼여 있는데도 베르단디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그를 찬밥신세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언제나 먼저 입을 여는 베르단디에게 구원 받아진다.
“케이씨도 한잔 드세요 정말 맛있어요.”
“아 그래? 고마워 베르단디.”
‘이익!’
이제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온 모양이다. 그렇게 방해하고 무시를 했는데도 저 찰거머리 같은 케이이치는 나만의 베르단디에게 붙어서 쪽쪽 피를 빨아 먹다니! 아오시마는 케이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죽일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기. 오늘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와서 팁도 잊어버리신 선배님 몫까지 내가 내지.”
“..........”
얼른 사라지라며 손을 흔드는 아오시마를 보고 참지 못한 웨이터. 그는 한마디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양복 옷깃을 공손히 세웠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전 이미 케이이치라는 손님께 팁을 받았습니다.”
“혹시 팁이 더 모자란 건가?”
아오시마가 그건 또 무슨 소리냐며 웨이터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한참 화기애애하던 베르단디와 케이이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심한 얼굴의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
“케이이치라는 분께서는 미소라는 선물을 제게 주셨군요. 베르단디라는 분께서도 정말 고맙다는 진심이 담긴 팁을 주셨군요. 그 팁이면 두둑합니다.”
“??”
“아~물론 손님께도 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툭.
웨이터가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두둑한 돈뭉치를 그의 자리에 던져 놓았다. 아오시마가 지금 이게 무슨 난리냐며 꾸짖는 투로 외쳤다. 아오시마가 그렇게 잘 하던 코웃음을 치며 웨이터가 말을 잇는다.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심보였다.
“100달러가 되었든, 200달러가 되었든 당신은 웨이터에게 주었고, 케이씨와 베르단디 양께서는 아직 미숙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돈은 아까 그 무뚝뚝했던 와인 가져다 준 분에게 주시죠? 물론 그 사람은 지금 여기서 거절하고 있으니까 안 되겠지만.”
“그럼 내가 자네한테 인사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태도를 바꾸시죠. 아오시마라고 했습니까?”
덜컹.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아오시마의 자리가 들썩였다. 그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험악함을 드러내며 분노를 나타내보였고 웨이터도 지지 않겠다는 얼굴에 독기 서린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몰려들고 침묵만을 고수했다.
“아 이제 그만해. 웨이터도 그만하세요.”
보다 못한 케이이치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지만 여자를 얻지 못한 불만과 분노를 엉뚱한 곳에다 풀려고 한 아오시마의 눈길이 케이에게 쏠렸다.
“선배님은 좀 빠지시죠. 팁 주시니까 좋다고 이러십니까?”
덜컹. 쨍그랑.
테이블위에 올려진 음식들과 쟁반들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오시마가 기분 나쁘다며 괜히 케이를 밀어젖힌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체력과 힘이 보통 사람 수준밖에 안 되는 케이는 당연하다는 듯 볼품없이 쓰러졌다. 광적으로 변한 아오시마는 그 모습을 보고 통쾌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웨이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주먹을 부르르 떨며 케이를 변호할 자세를 취했지만 베르단디가 다가가 케이의 안전을 살피기에 직업정신만 발휘하기로 했다. 그는 묵묵히 케이 곁으로 다가가 안부를 묻고 깨진 접시조각들만 주웠다.
“괜찮으세요! 케이씨?”
걱정이 가득함이 써진 눈으로 쓰러진 케이를 훑어보는 베르단디. 케이는 괜찮다며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지만 뒤에 놓인 의자에 머리를 세게 찧었는지 금방 인상을 찌푸렸다. 애인이 화가 입은 것을 참지 못한 베르단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죠? 케이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흥! 전부터 맘에 안 드는 선배님이셨습니다. 계약? 웃기고 자빠졌군요. 계약을 맺어서 함부로 베르단디 선배의 마음을 묶어놓은 주제에. 저렇게 뒹굴고 있는 꼴이라니 참 웃기군요.”
다시 한 번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아오시마. 그러나 곧 이어 들려온 베르단디의 설명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전 묶인 것이 아니에요! 전 케이씨를 좋아합니다. 제가 케이씨를 좋아하는 것은 제 자유의지란 말이에요! 각 개개인의 자유의지와 척도는 다르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거죠? 당신은.”
“흥! 계약이란 원래 그 자체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뭐? 행복하다고요? 훗!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시는 군요. 돈도 없고, 뭣도 없는 저 녀석이 뭐 어쨌다고…….그것도 엉뚱한 계약을 한 저놈이 나보다 뭐가 더 좋다고 이러시는 거냐고요!”
베르단디가 뭐라고 더 설교를 늘여놓으려 했으나 참을성이 좋지 않는 아오시마는 그의 손을 강제로 끌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고통을 호소하며 끙끙 거리던 케이가 벌떡 일어섰다.
“이거 놓으세요!”
“훗! 웃기는 소리하기는. 걱정 말라고 저런 한심한 녀석과 맺었다는 계약 따위 어떻게 해서든지 파기시켜 줄 테니까.”
그녀를 얻었다는 사실에 세상을 다 가진 독재자 마냥 기뻐하며 베르단디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이끌고 가려는 모습에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웨이터와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지배인이 나서려 했으나 케이 쪽이 더 빨랐다. 그가 뒤통수를 붙잡고 얼굴을 찡그린 채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뭡니까? 호오! 그래도 멀쩡하신 모양이군요.”
“이봐 아오시마.”
“뭡니까?”
아오시마는 베르단디에게 모든 생각이 팔려 있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재빨리 날아오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케이이치가 그를 조용히 부르자 반사적으로 그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그의 안면에 정확히 꽂혔다.
퍽.
“큭!”
와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꽤 비싼 안경 테두리와 알, 그리고 그의 눈까지 통째로 찌그러졌다. 케이는 안경의 파편까지 건드려서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부어오른 주먹을 매만지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오시마가 신음성을 내뱉으며 케이가 행동한 것처럼 똑같이 고통을 호소했다. 케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베르단디는 나랑 약속이 되어 있는 몸이야. 남의 선약을 방해 하지 마!”
“윽.”
“베르단디 가자.”
“아……네.”
베르단디의 따뜻한 손을 잡고 그대로 정문으로 이끌고 가는 케이이치였다.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베르단디. 그녀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 부끄러운 것을 본 소녀처럼 볼에 홍조가 그려지고 있었지만 식당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 빨랐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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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간단한(?) 러시아 회화를....만화책에서 찾아냈습니다.[출처 : 블랙라군]
축구 봐야겠군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그런데 이거 몇장 정도 넘으면 다음 편에다 이어야 되는 것일까요? 답변좀.]
코멘을 잊지 말고 삽시다!!
눈앞에 떡하니 차려진 중국식 채소요리에 대해 심각히(?) 논하던 케이와 베르단디에게 낯선 음악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음식이나 사교에 신경이 쓰여 아름다운 음향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잔잔한 호수 위에 있는 것 같아요.”
베르단디의 감탄사에 케이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케이는 베르단디의 뒤쪽에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는 중년의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플랫카드를 들고 있었는데 일본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백을 하겠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라는 글씨였다. 플랫카드를 해석한 케이는 경악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입만 쩍 벌린 그의 모습은 흡사 동네 바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의 머릿속이 혼란에 휩싸였다. 그 옛날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어둠과 혼란뿐이었다는 카오스였다.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케이의 반응에 베르단디는 당황하며 한 적도 없는 잘못을 찾으며 케이를 불렀다. 손을 흔들어 절대 아니라며 답하는 남자의 번뇌는 절대 멈추질 않았다. 고백이 무슨 전과인양 그녀의 맑고 깨끗한 푸른색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열기가 뿜어져 나와 그를 덮쳤다. 본인은 손거울이 없기에 잘 모르지만 케이의 얼굴은 고혈압 환자가 상태가 심해 얼굴이 붉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베르단디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혹시 열이? 엄청 심해요!”
“아 어디 아픈 게 아니라…….”
베르단디의 이마가 그의 이마에 다가와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의 혼란스러운 속을 알지 못하는 베르단디는 호들갑을 떨며 정신없이 헤맨다. 아니라며 해명을 하지만 그를 너무도 걱정하는 베르단디의 눈빛에 케이는 말꼬리를 흐렸다. 저 멀리 앉아서 고개를 흔들며 혀를 끌끌 차는 하얀 정장의 지배인이 눈에 띄었다. 그가 새로운 플랫카드를 꺼내 휘갈기고 들어올렸다.
‘지금입니다. 당장 고백하세요!’
“그럴 수 없다니까!”
“뭐, 뭐가 그럴 수 없다는 거죠 케이씨?”
“아 아냐!”
그녀에게 고백해!
아니야! 너무 어설퍼졌어. 다음에 다시 해!!
흥! 이렇게 말 잘하고 어여쁜 애인과 키스도 못해보는 바보
뭐야? 이 변태 덩어리!!
욕구불만!
‘모두 입 닥쳐!’
그를 주시하는 베르단디의 예쁜 두 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케이에게 주변에서 수많은 조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전상 후퇴를 주장하는 소심한 이들도 있는가 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야 한다는 급진파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너무도 착해서 베르단디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지도 않는 욕지껄임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것들을 조용히 무마시키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다행이에요. 전 케이씨가 걱정이 돼서.”
“미, 미안해 방해꾼들이 너무 많아서.”
“예?”
“아 아무것도 아냐.”
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키스’와 ‘고백’을 요구하는 수많은 방해자들. 헛바람을 들이쉬며 그들을 무시해보지만 이미 작은 무엇들에게 정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본체를 지탱할 힘이 없다. 말로는 괜찮다! 를 남발하지만 혈색이 좋지 않아 여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다 세계 최초로 애인과 식사하다 고백 하고 죽은 일본인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캉달캉.
심장은 운동장 수십 회 돈 것처럼 덜컥거리는 속도에 점차 가속도가 붙어왔다. 땀이 등을 타고 주르륵 내려온다. 그리고 자괴감이 그를 지배했다.
‘기회가 왔는데 꼴사납게 이게 뭐람.’
둘이서만 있을 기회가 왔다.(?) 방해꾼도 없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문장만 나오면 정말 완벽한 날일 텐데. 불행히도 입은 그런 닭살 돋는 문장을 혐오하는지 덜덜 떨릴 뿐 열리지 않았다.
‘킥킥 우리가 이겼네.’
‘시끄러!’
그런 케이의 혼잣말에 데이트를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케이 혐오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주전론자(?)들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내는 장면(경마장에서 흔히 볼법한 티켓으로 추정되는.)이 포착되었다. 케이는 그들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경마장에서 쫓아내고 주전론자들이 좋아할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입이 떨리며 열렸다.
“저 베르단디.”
“네?”
다 죽어가던 케이가 가까스로 입을 열자 안도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베르단디. 케이는 그녀의 두 손을 평생 풀지 않을 것처럼 꽉 잡았다. 가까워진 그의 체온이 손을 감싸자 꼭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베르단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네.”
“너를.”
“네.”
“사…….”
안 돼! 우리 돈이 날아간다. 케이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만 달러(??)를 잃게 생긴 불법 도박 마니아들의 절규와 저주 섞인 한탄, 그리고 케이의 현명한 지혜로 그 수만 달러를 따게 생긴 주전론자들의 환호성이 서로 교차하지만 케이는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사랑.”
“이런! 정말 오랜만이군요. 베르단디 선배.”
........도대체 누구야! 도박 마니아들과 케이의 외침이 하늘을 찔렀다.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 낯익은 것이었다. 그리고 케이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아오시마가 있었다.
“아오시마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달갑지 않은 불청객의 난입에 이를 빠드득 갈며 노려보는 케이이치. 그를 보고 코웃음을 날린 검은 양복의 사내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제가 선배처럼 한가하게 바이크나 만. 지. 작. 거리는 사람도 아닌데 뭐 하러 이런 시시한 곳에 오겠습니까?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말이죠.”
미소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베르단디만 눈 여겨 보는 아오시마. 그는 케이에게 있어서 둘 도 없는 개망나니라 할 수 있는 자였다. 아니 바람둥이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리겠지만 허영심 가득 찬 여성들을 홀리게 만들 미모에 어울리지 않게 괴팍하고, 짜증나는 행동으로 그와 베르단디를 곤경에 빠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케이에게는 변함없는 괴짜로 보일 수밖에.
“안녕하세요. 아오시마!”
지난 앙금(?)은 이미 다 털어버리고 미소로 화답하는 베르단디. 아오시마에 대한 어떠한 악감정이나 분노 따위가 담겨져 있지 않는 순수한 얼굴이었다. 옆에 서 있던 케이이치는 조금 난감한 얼굴로 여신의 인사를 받는 녀석을 노려볼 뿐 차마 베르단디 앞에 서 있는 저 남자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케이를 비웃으며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의자를 끌어와 앉는 아오시마.
“베르단디 선배는 언제 봐도 아름다우십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선배를 따라 올 자가 없죠. 정말 여신 같은 아름다움입니다.”
자기 앞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가 진짜 여신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온갖 찬사와 미사여구를 붙여 베르단디를 칭찬하는 아오시마. 그는 베르단디를 원한다는 강렬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칭찬에 감사하다며 고개만 숙일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예전부터 써왔지만 잘 통하지는 않았던,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비장의 조커를 꺼내 드는 아오시마.
“웨이터!”
약간 신경질적이고 급한 말투에 허겁지겁 젊은 남자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거만하고 딱딱한 어조로 고급 프랑스제 와인의 이름을 꺼내는 아오시마. 그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멸하는 눈빛의 웨이터가 케이들이 앉은 테이블을 싹 훑어보고 지나갔지만 아오시마 본인은 잘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어떻습니까? 방금 제가 시킨 와인의 매력이?”
재력의 귀티를 팍팍 튀기며 여자를 꼬드기는 아오시마. 불행히 그는 아직도 베르단디가 어떤 여자인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와인에 대한 아오시마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베르단디.
“그런데 아오시마는 여기에 무슨 일로 왔나요?”
“예? 아 예.”
속으로 실패했다며 온갖 욕지꺼리를 뱉어내는 아오시마. 몇 초 동안 말문을 잃고 헤매는 아오시마를 바라보며 케이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아오시마의 모습은 마치 TV 만담프로 속의 동료에게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고 난감해하는 장면과 매우 비슷해 있었다.
“이 식당을 비롯해서 밑에 있는 모든 일렉트라 네트워크의 매장들은 전부 저희 아오시마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요코 네의 것보다 더 크고 신출내기에 불과한 소니나, 코흘리개 삼성에 비교하면 그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관동 최고의 전자제품 매장도 끼어 있고요.”
“아 네.”
잘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거리며 아오시마에게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내자 아오시마는 괜히 소니며, 삼성을 꺼냈다며 가슴속으로 북을 쳐댔다. 옆에 덤으로 끼어 앉아있는 케이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신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지만 베르단디에게만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는 아오시마가 알 리가 없다.
“어쨌든 오늘은 상권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매출이 떨어지는 매점이 있는지, 그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다 출출해져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나의 아오시마[부자가 서로 다른 그룹을 경영함] 그룹전용 VIP룸에 비하면 새발에 피에 불과하지만요. 하하하”
“와인 나 왔 습 니 다!”
이 정도면 베르단디도 결국 넘어올 거라고 판단하고 여분의 조커들을 마구 남발했으나 베르단디는 ‘아 네’라는 그렇다는 식으로 이해하며 넘어갈 뿐이었다. 그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자 웨이터가 큰소리로 외치며 와인을 부어 준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환장해하며 미칠 듯이 외치는 아오시마는 화풀이겸 웨이터를 경멸과 짜증의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었다. 웨이터도 겉으론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속으로는 그의 굵직하고 타격감 좋은 주먹으로 아오시마의 복부를 가격하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짜증나고 신경 쓰이지만 본분을 다한 웨이터에게 아오시마가 두둑한 돈 봉투[달러로 추정되는.]를 건넸다. 옆에 덤으로 끼어있던 케이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웨이터는 더운 여름날 폭포 속에 들어가 더위를 녹이는 듯 한 쾌감을 새롭게 느끼며 미소로 화답했다.
“케이 선배님. 이런 레스토랑에선 팁을 나눠주셔야죠! 혹시 챙겨 오시지 않은 것입니까?”
“아. 난 여긴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런 것은 잘 모르는데. 죄, 죄송합니다.”
네코미 공대생들과 자동차부 회원들 사이에서도 성실하지만 재력이 모자란(!)인상 좋은 이로 기억에 남는 케이의 약점[약점이랄 것도 없지만 금상첨화라고 돈 없고 빽 없는 이에겐 항상 비웃음이 날아온다. 특히 ‘아리따운 처자’를 곁에 두고 있는 처지라면 더더욱 말이다.]을 들춰내며 그를 계속 쿡쿡 건드리는 아오시마. 정말 알지 못했는지 케이는 미안하다를 남발하며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숙인다. 손님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팁으로 받게 된 웨이터는 자신도 모르게 직업정신대로 허리가 숙여짐을 느낀다.
“앞으로는 조심 좀 하세요. 이런 곳에 오면 돈이 필수입니다.”
“하하…….”
죽여서 고기로 씹어도 시원찮을 후배놈의 공격에 한방 먹고 미소를 지어보이는 케이이치. 아오시마는 자신이 끼여 있는데도 베르단디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그를 찬밥신세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언제나 먼저 입을 여는 베르단디에게 구원 받아진다.
“케이씨도 한잔 드세요 정말 맛있어요.”
“아 그래? 고마워 베르단디.”
‘이익!’
이제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온 모양이다. 그렇게 방해하고 무시를 했는데도 저 찰거머리 같은 케이이치는 나만의 베르단디에게 붙어서 쪽쪽 피를 빨아 먹다니! 아오시마는 케이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죽일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기. 오늘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와서 팁도 잊어버리신 선배님 몫까지 내가 내지.”
“..........”
얼른 사라지라며 손을 흔드는 아오시마를 보고 참지 못한 웨이터. 그는 한마디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양복 옷깃을 공손히 세웠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전 이미 케이이치라는 손님께 팁을 받았습니다.”
“혹시 팁이 더 모자란 건가?”
아오시마가 그건 또 무슨 소리냐며 웨이터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한참 화기애애하던 베르단디와 케이이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심한 얼굴의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
“케이이치라는 분께서는 미소라는 선물을 제게 주셨군요. 베르단디라는 분께서도 정말 고맙다는 진심이 담긴 팁을 주셨군요. 그 팁이면 두둑합니다.”
“??”
“아~물론 손님께도 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툭.
웨이터가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두둑한 돈뭉치를 그의 자리에 던져 놓았다. 아오시마가 지금 이게 무슨 난리냐며 꾸짖는 투로 외쳤다. 아오시마가 그렇게 잘 하던 코웃음을 치며 웨이터가 말을 잇는다.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심보였다.
“100달러가 되었든, 200달러가 되었든 당신은 웨이터에게 주었고, 케이씨와 베르단디 양께서는 아직 미숙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돈은 아까 그 무뚝뚝했던 와인 가져다 준 분에게 주시죠? 물론 그 사람은 지금 여기서 거절하고 있으니까 안 되겠지만.”
“그럼 내가 자네한테 인사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태도를 바꾸시죠. 아오시마라고 했습니까?”
덜컹.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아오시마의 자리가 들썩였다. 그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험악함을 드러내며 분노를 나타내보였고 웨이터도 지지 않겠다는 얼굴에 독기 서린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몰려들고 침묵만을 고수했다.
“아 이제 그만해. 웨이터도 그만하세요.”
보다 못한 케이이치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지만 여자를 얻지 못한 불만과 분노를 엉뚱한 곳에다 풀려고 한 아오시마의 눈길이 케이에게 쏠렸다.
“선배님은 좀 빠지시죠. 팁 주시니까 좋다고 이러십니까?”
덜컹. 쨍그랑.
테이블위에 올려진 음식들과 쟁반들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오시마가 기분 나쁘다며 괜히 케이를 밀어젖힌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체력과 힘이 보통 사람 수준밖에 안 되는 케이는 당연하다는 듯 볼품없이 쓰러졌다. 광적으로 변한 아오시마는 그 모습을 보고 통쾌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웨이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주먹을 부르르 떨며 케이를 변호할 자세를 취했지만 베르단디가 다가가 케이의 안전을 살피기에 직업정신만 발휘하기로 했다. 그는 묵묵히 케이 곁으로 다가가 안부를 묻고 깨진 접시조각들만 주웠다.
“괜찮으세요! 케이씨?”
걱정이 가득함이 써진 눈으로 쓰러진 케이를 훑어보는 베르단디. 케이는 괜찮다며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지만 뒤에 놓인 의자에 머리를 세게 찧었는지 금방 인상을 찌푸렸다. 애인이 화가 입은 것을 참지 못한 베르단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죠? 케이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흥! 전부터 맘에 안 드는 선배님이셨습니다. 계약? 웃기고 자빠졌군요. 계약을 맺어서 함부로 베르단디 선배의 마음을 묶어놓은 주제에. 저렇게 뒹굴고 있는 꼴이라니 참 웃기군요.”
다시 한 번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아오시마. 그러나 곧 이어 들려온 베르단디의 설명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전 묶인 것이 아니에요! 전 케이씨를 좋아합니다. 제가 케이씨를 좋아하는 것은 제 자유의지란 말이에요! 각 개개인의 자유의지와 척도는 다르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거죠? 당신은.”
“흥! 계약이란 원래 그 자체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뭐? 행복하다고요? 훗!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시는 군요. 돈도 없고, 뭣도 없는 저 녀석이 뭐 어쨌다고…….그것도 엉뚱한 계약을 한 저놈이 나보다 뭐가 더 좋다고 이러시는 거냐고요!”
베르단디가 뭐라고 더 설교를 늘여놓으려 했으나 참을성이 좋지 않는 아오시마는 그의 손을 강제로 끌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고통을 호소하며 끙끙 거리던 케이가 벌떡 일어섰다.
“이거 놓으세요!”
“훗! 웃기는 소리하기는. 걱정 말라고 저런 한심한 녀석과 맺었다는 계약 따위 어떻게 해서든지 파기시켜 줄 테니까.”
그녀를 얻었다는 사실에 세상을 다 가진 독재자 마냥 기뻐하며 베르단디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이끌고 가려는 모습에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웨이터와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지배인이 나서려 했으나 케이 쪽이 더 빨랐다. 그가 뒤통수를 붙잡고 얼굴을 찡그린 채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뭡니까? 호오! 그래도 멀쩡하신 모양이군요.”
“이봐 아오시마.”
“뭡니까?”
아오시마는 베르단디에게 모든 생각이 팔려 있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재빨리 날아오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케이이치가 그를 조용히 부르자 반사적으로 그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그의 안면에 정확히 꽂혔다.
퍽.
“큭!”
와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꽤 비싼 안경 테두리와 알, 그리고 그의 눈까지 통째로 찌그러졌다. 케이는 안경의 파편까지 건드려서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부어오른 주먹을 매만지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오시마가 신음성을 내뱉으며 케이가 행동한 것처럼 똑같이 고통을 호소했다. 케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베르단디는 나랑 약속이 되어 있는 몸이야. 남의 선약을 방해 하지 마!”
“윽.”
“베르단디 가자.”
“아……네.”
베르단디의 따뜻한 손을 잡고 그대로 정문으로 이끌고 가는 케이이치였다.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베르단디. 그녀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 부끄러운 것을 본 소녀처럼 볼에 홍조가 그려지고 있었지만 식당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 빨랐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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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간단한(?) 러시아 회화를....만화책에서 찾아냈습니다.[출처 : 블랙라군]
축구 봐야겠군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그런데 이거 몇장 정도 넘으면 다음 편에다 이어야 되는 것일까요? 답변좀.]
코멘을 잊지 말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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