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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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2화 - 태동하는 번데기 -
"자, 요 한주간의 동향 보고서. 지금 전송할게."
-"수고했어."
울드가 페이오스와 통화하는 동안 스쿨드가 노트북으로 그간 정리한 자료를 천상계로 송신하였다. 동향 보고서라고는 하지만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니 온라인상으로만 자료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수준은 그냥 각 언론의 기사 내용이나 각종 인터넷 게시판의 여론 등을 취합한 후 정리하는 정도에 그쳤다. 물론 이런 걸로는 한계가 많았지만 지금 울드들이 할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이었다.
"천상계에서는 뭐 반응 없어?"
-"......"
울드의 물음에 페이오스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울드의 물음은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군대를 파견할 것이냐는 뜻이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페이오스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직까지는.... 그저 좀 더 지켜보자는 쪽이 대세야."
"뭘 더 지켜봐!!"
그 순간 울드의 화가 폭발하였다. 갑자기 울드가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울드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통화하고 있는 페이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울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페이오스에게 그간의 울분을 쏟아 부었다.
"괴수 놈들이 인간계를 완전히 먹었단 말이야! 인간들은 놈들의 마수에 걸려 점점 더 깊은 늪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고! 이 정도면 사태가 심각한 줄 알고 당장이라도 인간계로 군대를 보낼 생각을 해야지, 지켜보기만 하자고? 그러면 그동안 우리는 헛수고만 했다는 거야?! 우리가 1년 동안 보낸 자료는 전부 다 휴지조각이야?!!"
-"울드.... 난...."
"됐어! 이젠 더 못해! 자료는 보낼 만큼 보냈어! 싸울 생각이 없으면 자료 요구도 하지 마!!"
그렇게 일방적으로 소리친 울드는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실 페이오스는 군대 파병에 관해서는 권한은 고사하고 발언권조차 없는 말단이었고 울드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 도저히 소리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울드의 거친 행동에 주눅이 든 사람들은 그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때 부엌에 있던 베르단디가 방으로 들어와서는 울드를 달래었다.
"언니, 고정하세요."
"고정하게 됐어? 천상계는 지금 겁에 질려 웅크리고만 있다고! 싸울 생각 자체가 없는 거야! 저런 겁쟁이들을 내가 믿고 있었다니!"
"언니, 제발 진정하세요. 지금 옆방에는 시즈씨가 누워 계시다고요."
베르단디의 간절한 말에 울드는 그제야 다소 화를 누그러뜨렸다. 심한 정신적 충격을 겪은 시즈는 지금 옆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정신안정 법술을 구사해서 치료하기는 했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평소보다 더 조용히 지내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천상계는 함부로 개입할 수가 없다."
그 때 구석에서 조용히 명상 중이던 린드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린드에게로 집중되었다. 울드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린드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개입할 수가 없다니!"
"타블렛 때문이다. 마계와의 계약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천상계는 나설 수가 없어."
린드의 말에 여신들은 모두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타블렛이 뭔지 모르니 전혀 이해를 못했지만 말이다. 베르단디가 그들에게 타블렛이란게 뭔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린드의 말대로 지금의 천상계는 마계와의 타블렛 계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크로노스와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전론자는 천상계에 많이 있었지만 마계가 그것에 대해 협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선언하는 바람에 일이 꼬이고 말았다. 생명 공유의 계약, 타블렛. 둘 중 하나가 죽게 되면 다른 하나도 바로 죽는다는 계약. 천계와 마계와의 싸움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지만 지금은 천상계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천상계가 크로노스와 싸우려면 타블렛 계약 자체를 무효화 하거나 아니면 마계도 같이 연합군을 구성해야 했지만 그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얘기였다.
"게다가 크로노스는 절대 만만한 놈들이 아니다. 싸우면 이쪽은 반드시 사상자가 나오게 된다. 한두 명 수준도 아니고 막대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계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울드는 더 이상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울드는 그저 분한 표정으로 전화기만 노려보았다. 그녀는 지금 천상계와 마계 모두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들 그저 싸움을 피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울드를 위로하였다.
"언니, 괜찮아요. 언젠가 천상계가 다시 일어설 때가 올 거예요. 그리고 그 전에 케이씨도 돌아오실 거고요."
울드는 아직도 케이의 생환을 굳게 믿고 있는 베르단디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이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리고만 있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웠다. 울드 역시 이젠 지치기 시작했다.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반격의 가능성 같은 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옆방의 시즈를 살펴보러 가는 베르단디의 뒷모습을 울드는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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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오랜만이군, 푸르크슈탈."
한참 일에 매달려 있던 크로노스 일본지부 담당인 12신장 푸르크슈탈은 절친한 친구인 신 R. 암니컬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깜짝 놀랐다. 제압전이 끝난 직후 아라라트 산에서 잠깐 얼굴만 본 이후로 한동안 만나볼 수가 없었던 신을 다시 만나서 푸르크슈탈은 크게 기뻐하였다. 제압 이후 1년 동안 이들은 각자의 담당지구에서 각종 행정업무등을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크로노스가 어둠속에만 있던 시절에는 그래도 좀 여유가 있었지만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은 '다스려야' 할 백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은 순조로운가 보지?"
"아아, 요새는 나도 좀 여유가 생겼지. 이제 사회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말이야."
"그거 다행이군...."
"그래, 자네는 좀 어때? 사해(死海)쪽은 잘 되가나?"
현재 신은 서아시아 지역에 있었다. 사해에는 크로노스의 중요 연구시설이 있었고 신은 그 곳의 책임자였다. 사해 얘기가 나오자 신의 표정에 근심이 나타났다. 푸르크슈탈이 그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신은 다소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왔어. 지금 닥터 발카스께선 어디 계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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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푸르크슈탈은 클라우드 게이트 안에 있는 실험구역에 도착하였다. 조제소에는 수많은 조제통이 있었고 그 통 하나하나 에는 모두 조제중인 조아노이드들이 있었다. 이곳 클라우드 게이트가 갖추고 있는 조제통은 전부 700여기. 이 수량은 관동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였다. 한동안 걷던 이들은 이윽고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신이 앞으로 나서서 먼저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닥터 발카스."
"오, 신인가."
발카스는 간단히 대답하고는 다시 컨트롤 패널로 시선을 돌렸다. 발카스는 지금 조제통 앞에 서서 현재 조제중인 '그것'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신은 발카스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닥터, 한시라도 빨리 사해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
"알고 있네."
발카스는 여전히 무심하게 대답하였다. 신이 다시 한 번 발카스에게 간청하듯이 말했다.
"지금 사해에서 추진되는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크로노스 최고 과학자이신 박사님이 꼭 오셔야 합니다."
"그래, 진행상황은 어떤가."
발카스는 여전히 스크린을 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신이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사해의 호수성분은 제2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조만간 '양수'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제 조제에 돌입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여전히 자기랑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발카스였다. 마음이 조급해진 신이 발카스를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신은 지금 발카스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 프로젝트야 말로 크로노스의 최종목적을 향해 가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아닌가. 발카스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도 알고 있네.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말이야. 하지만 며칠만 시간을 더 주게나. 이제 거의 다 됐어."
"대체 지금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사해의 프로젝트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씀입니까?"
신은 발카스가 한창 매달리고 있는 조제통을 바라보았다. 내부에 가득 찬 녹색의 뿌연 배양액 때문에 안이 잘 안보였지만 뭔가 거대한 덩치가 들어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언뜻 봐서는 신장만 3m 는 넘어갈 듯싶었다. 아무래도 어떤 신형 조아노이드를 만드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카스가 직접 팔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할 정도로 중요한 조아노이드라니, 신과 푸르크슈탈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뭡니까?"
"앱톰 헌터야. 그 놈을 잡을 수 있는 사냥개지."
앱톰? 신과 푸르크슈탈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이들은 비로소 생각이 났다. 조제 실험 과정에서 전혀 다른 생물로 변해 버린 돌연변이 손종 실험체 녀석이었다. 듣기로는 상대 조아노이드를 융합해서 자신을 더욱 더 강력한 전투 생물로 개량해 나간다고 하였다. 확실히 앱톰의 존재는 지금 크로노스 입장에서는 눈의 가시였다.
"닥터,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사해 쪽의 일이 더 급합니다. 그냥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직접 나가서 놈을 박살내겠습니다."
"놈을 얕잡아 보지 말게!"
푸르크슈탈이 나섰지만 발카스는 되려 푸르크슈탈을 꾸짖었다. 푸르크슈탈은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앱톰이 아무리 극한의 변종 생물체라고 해도 그 육체의 베이스는 조아노이드. 조아로드인 푸르크슈탈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발카스는 푸르크슈탈을 믿지 못하는 듯 했다. 발카스가 푸르크슈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놈의 살점 단 한 조각이라도 자네 몸에 닿게 되면 자네는 놈에게 먹히고 말아. 그런 일이 안 벌어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그 말에 신과 푸르크슈탈은 입을 다물었다. 전투력의 차이는 별개의 문제다. 발카스의 말대로 살점 단 한조각도 안 닿는다는 보장은 할 수가 없었다. 발카스는 다시 컨트롤 패널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헌터는 그 같은 경우도 염두에 두고 만들고 있는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리게."
신과 푸르크슈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별 수 없이 그 헌터가 완성될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사해의 프로젝트도 중요하지만 앱톰 역시 그냥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녀석을 이대로 성장하게 내버려 두게 되면 언젠가 크로노스에게 치명적이 될 수가 있으니 당장이라도 제거해야 했다. 그 때 조제실로 요원 한명이 들어왔다. 요원은 신과 푸르크슈탈, 발카스에게 경례를 올리고는 신에게 다가왔다.
"각하, 북미 지구에서 각하께 보내는 긴급 전문입니다."
신은 요원에게서 그 쪽지를 받았다. 그리고 전문을 읽은 후 크게 놀랐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진 푸르크슈탈 역시 신에게서 전문을 받아본 후 크게 놀랐다. 전문에는 캐나다 토론토 외곽에 있는 조제시설이 레지스탕스의 공격으로 괴멸되기 일보직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은 기가 막혔다. 북미 지역에만 요 근래 벌써 세 번째였다. 발카스 역시 그 전문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신은 발카스에게 송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북미 지구 담당이 바로 신이었고 자기 관할 구역에서 이런 말썽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 신으로서는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죄송합니다, 닥터 발카스. 제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자네 잘못만은 아니잖은가. 아랫것들이 문제지. 그건 그렇고.... 이건 좀 이상하구먼..."
발카스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 북미 지구에서 설치고 있다는 레지스탕스의 존재는 발카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제압 후 세계 각지에서는 크로노스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수없이 생겼었다. 그러나 그것들도 반년정도 만에 거의 다 와해되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있을 줄이야. 게다가 그 놈들이 입히는 피해도 그저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었다. 북미 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조제, 실험 시설이 벌써 세 군데나 완전히 파괴되었다. 중무장을 하고 있고 기습을 걸어온다는 것을 감안해도 미조제의 인간들이 조아노이드가 지키고 있는 시설들을 이렇게나 쉽게 파괴하다니. 발카스나 신, 푸르크슈탈은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그 무시무시한 가이버가 살아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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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탕!!
-텅텅텅텅!!!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대규모 조제시설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기지 곳곳에서는 화재가 일어났는지 연기가 자욱하게 나고 있었다. 이곳은 북미 지구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이자 캐나다에서는 최대의 설비를 갖춘 조제시설이었다. 그곳에 레지스탕스들이 기습공격을 가했고 수비하고 있던 조아노이드들은 거의 다 전멸한 상태였다.
-투투퉁!! 투투퉁!!
레지스탕스들이 끌고 온 스트라이커 장륜 장갑차에 설치된 40mm 자동 유탄 발사기가 연속으로 불을 뿜었다. 40mm 유탄 세례를 받은 조아노이드 한 마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이 장갑차 이외에도 레지스탕스 들은 LAV-25나 장갑형 험비등의 다양한 형태의 장륜 장갑차를 끌고 공장 안으로 돌입하였다.
-퍼엉!!
이들이 보유한 장갑차들 중에서 최대의 화력을 가지고 있는 스트라이커 MGS 의 105mm 저압포가 불을 뿜었다. 강력한 위력의 대전차고폭탄이 발사될 때마다 한 무리의 조아노이드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레지스탕스들은 장갑차를 이동시킬 때 대형 컨테이너에 한대씩 싣고 이동하기 때문에 컨테이너에 실을 수 없는 전차는 보유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컨테이너에 넣을 수 있으면서도 강력한 105mm 포로 중무장한 이 장갑차는 아주 귀중한 전력이었다. 비록 차체 크기가 작아 포탄을 18발 밖에 탑재할 수가 없지만.
"조준! 쏴!!'
-터터텅!!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무장도 상당히 강력했다. 한 무리의 대원들은 .577 T-rex 나 600NE(니트로 익스프레스), 700NE 등의 매우 강력한 맹수 사냥용 탄환을 사용하는 볼트액션식 라이플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18세기 군대처럼 한자리에 모여 조아노이드 한 마리를 향해 일제사격을 퍼붓는 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대원들도 7.62mm NATO 탄을 쓰는 소총이나 기관총, 그리고 RPG-7 이나 RAW 같은 대전차 로켓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의 조직적인 공격에 조아노이드들은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타타타타!!
"크아아!!"
그런데 그중 한 대원이 조아노이드 한 마리에게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원의 화기는 45구경 권총탄을 쓰는 톰슨 기관단총이라 조아노이드에게 전혀 먹히지 않고 있었다. 그 조아노이드는 그 대원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조아노이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후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등에 메고 있던 M-72 RAW 대전차 로켓을 조준하였다.
"Adios!!"
-퍼엉! 투쾅!!
대전차 로켓에 맞은 조아노이드는 상반신이 누더기가 되버려서는 뒤로 벌렁 쓰러져 버렸다. 쓰러진 조아노이드를 보며 그는 여유 있게 톰슨의 76연발 드럼탄창을 다른 걸로 교환하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대원들이 그에게 다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조아노이드에게는 권총탄 SMG(기관단총)이 안 먹혀."
"자네 싸우는 거 보니 내가 가슴이 다 조마조마 하는구먼."
"오래 살고 싶으면 무기 바꾸라고."
다른 대원들의 충고에도 그는 아랑곳없이 그냥 실실 웃기만 하였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보급에 지장을 주는 범위가 아니라면 각자가 원하는 무기를 쓸 수 있지만 조아노이드에게 효과가 있는 무기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대게 비슷한 무기로 나가게 된다. 이 조직 내에서는 미국 내에 널리 퍼진 M-16이나 M-4 계열의 5.56mm NATO 탄 사용 화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조아노이드 상대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 한사람만 이런 저위력 화기를 고집하는 것이었다.
"헤헤! 톰슨의 가치를 모르시네. 이게 얼마나 뽀대나는 무기인데 그래요."
그는 유난히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여유 있게 대꾸하였다. 머리를 쓸어 넘긴 그의 이마에는 좀 특이한 붉은 색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네 맘대로 하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곳으로 다들 흩어졌다. 그리고 다들 별도로 챙긴 꾸러미에서 C-4 폭약을 꺼내서는 여기저기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 공장을 완전히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다른 대원들의 작업 광경을 보면서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거 놀라운데. 미조재의 인간들이 이렇게나 싸울 수 있다니 말이야. 오늘 보고서는 좀 흥미진진하게 쓸 수 있겠군."
"이봐! 베루더!!"
"아, 네!"
"거기서 그러고만 있지 말고 폭약 설치해! 놈들의 지원 병력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베루더라 불린 그는 피식 웃으면서 가방에서 시한폭탄을 꺼내 들었다. 그 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깜짝 놀란 그가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 쪽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베루더는 직감적으로 저 놈이 조아노이드란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도 보통 조아노이드가 아니었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벌레놈들이!!"
-화아악!!
"크아아아!!!"
그 남자는 예상대로 조아노이드였다. 또 한 마리의 조아노이드가 나타나자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황급히 무기를 다시 들었다. 베루더 역시 마지막 하나 남은 RAW 대전차 로켓을 조준하였다. 아무래도 저 놈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척 보기에도 단단해 보일 것 같은 장갑과 거대한 덩치 하며, 아무래도 저건 하이퍼 조아노이드 같았다.
-퍼엉! 투투투투!! 푸확!!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조아노이드는 모든 공격을 아주 태연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대전차 로켓조차 먹히지 않았다. 그 조아노이드가 대원들에게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바보놈들! 하이퍼 조아노이드인 내게 그런 게 통할 줄 알았느냐!!"
"우..우와앗!!"
무기가 통하지 않자 대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베루더 역시 긴장된 얼굴로 그 조아노이드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RAW를 정확하게 명중시켰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 놈은 총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술식으로...!
-휘익! 부웅!!
그 때 갑자기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뭔가를 휘둘렀다. 하이퍼 조아노이드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네...네 놈은...!"
-털썩!
그 직후 그 조아노이드는 여러 토막으로 잘려나가고 말았다. 대전차 로켓 공격에도 끄떡없던 놈을 베어버린 그는 레지스탕스 대원들 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온 몸을 검은색 갑옷으로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마에는 유난히 찬란한 빛을 발하는 은색의 금속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를 본 대원들이 환호하였다.
"보스!!"
"야호! 보스가 이겼어!"
베루더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 레지스탕스 '제우스의 우뢰'의 리더,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 이 남자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저런 힘을 가진 인간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파앗!
아키토는 식장을 풀었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철수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대원들은 서둘러 나머지 구역에 폭탄을 설치하고 철수할 준비를 하였다. 아키토는 그 광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캐나다 최대의 조제시설이라 해서 기대를 걸었지만 여기에도 '그것'은 없었다. 하긴 이곳 북미 대륙에만도 이런 조제시설이 17개나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그는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그것을 찾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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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는 거기 말인가?"
"예. 틀림없습니다."
LA 외곽의 폐공장지역에 자리잡은 아지트로 복귀한 아키토는 베루더에게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아키토가 찾고 있는 그 '물건'은 처음 록키산맥에서 발견된 이후 잠시 애리조나 본부기지로 이송되었다가 얼마 전에 사해에 위치한 개발국 직속의 대규모 연구 단지로 이송되었다는 것이었다. 아키토는 보고를 들으며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대규모 조제 시설로 이송됐다는 말만 듣고 북미 지역만 뒤졌었는데 설마 사해에 가 있을 줄이야.
"용케도 그걸 찾아냈군. 자네의 정보력에는 감탄했네."
"헤헤, 제가 발이 좀 넓죠."
아키토의 칭찬에 베루더는 가볍게 농담으로 대답하였다. 아키토가 찾고 있는 그 물건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는 베루더의 공이 컸다. 베루더가 웃음을 멈추고 정색을 하며 아키토에게 질문하였다.
"저...보스, 그게 대체 뭡니까? 왜 그리 그것에 집착하시는 지요."
"동료다."
"네?"
"그 물체 안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와 비슷한 힘을 가진 남자가 잠들어 있어. 그걸 되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될 꺼야."
그 말에 베루더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토는 그를 밖으로 내 보낸 후 책상 끝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가 큰일이었다. 사해의 연구소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규모만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했다. 경비도 그 만큼 삼엄할 것이다. 현재 자기 휘하의 병력을 모두 다 끌고 간다해도 솔직히 정면 승부는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주저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것을 녀석들에게서 되찾아 와야 했다. 만약 녀석들이 그것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문득 아키토는 1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 때 아키토와 케이는 미나카미 산 상공에서 최강의 적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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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라아아아!!!!!"
-퍼어어엉!!!
-투오오옹!!!!
케이와 아키토의 필살의 메가 스매셔가 불을 뿜었다. 스매셔의 광선은 이내 하나로 합쳐져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스매셔의 광선은 그 조아로드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였다.
-위이잉!
그 순간 그 조아로드의 전신이 한층 더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메가 스매셔를 막는 듯 한 포즈를 취했다. 그 직후 메가 스매셔는 그 조아로드와 충돌하였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투오오옹!!!
케이와 아키토가 미처 정신 차릴 틈도 없었다. 그 조아로드에게 스매셔가 명중됐다고 본 순간 갑자기 스매셔의 섬광이 이들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스매셔의 섬광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콰아아앙!!!!
스매셔의 섬광에 당한 유적 우주선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스매셔에 얻어맞은 아키토는 왼쪽 몸이 거의 다 날아가 버리다 시피 하고 말았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 아키토는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의 몸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아키토가 보는 앞에서 케이는 이마의 컨트롤 메탈을 제외한 전신이 소멸되고 말았다. 아키토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키이잉!!
그 때 아키토의 눈에 두 개의 금속구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분명 우주선의 메인 브릿지에 있던 항행제어구였다. 우주선이 폭발하는 와중에 용케도 그것들은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윽고 하나로 합쳐졌다.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그 두개는 마치 물방울들이 합쳐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화아악!!
"우윽!!"
그러자 갑자기 그 합쳐진 금속구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체를 중심으로 유적 우주선의 파편들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아키토 역시 그 쪽으로 몸이 끌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키토는 그 빨아들이는 힘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곧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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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이윽고 아키토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눈에는 무슨 막같은 것이 보였다. 그 얇은 막 너머로 태양 빛이 비춰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키토는 손을 들어 그 막을 찢었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막을 찢고 밖으로 나온 아키토가 본 것은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높은 산악지대였다. 대체 여기가 어딜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본은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는 상당히 낯선 풍경이었다.
아키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스매셔의 섬광에 당한 왼쪽 몸은 어느 정도 복원돼 있었다. 그러나 표면이 쭈글쭈글 하고 왼팔에도 감각이 제대로 오지 않는 걸 보니 완전히 복원된 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의 기온이 너무 낮아 세포 분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아키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덮고 있던 비닐 막 같은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슨 생물체의 껍질 같아 보이는 것이 유적 우주선의 조직인 것 같았다. 우주선이 파괴되던 그 순간 아마도 케이가 무의식적으로 내린 명령에 따라 유적 우주선이 최후의 힘을 짜내서 자신을 이곳으로 순간이동 시킨 것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케이는 어떻게 됐을까? 아키토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막을 마구 찢으며 케이를 찾았다.
"뭐...뭐야 이건?"
아키토가 찾아낸 것은 황색을 띄고 있는 거대한 '번데기' 형태의 물건이었다. 아키토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유적 우주선 내에 들어갔을 때에도 이런 건 본적이 없었다. 아키토는 헤드 센서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였다. 내부를 투시해 보려는 것이었다. 케이는 이 안에 있을 지도 몰랐다.
-위이이잉!
"이...이럴 수가!"
내부를 투시해 본 아키토는 깜짝 놀랐다. 케이는 안에 없었다. 이 번데기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만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가이버 I 의 컨트롤 메탈과 유적의 항행제어구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가이버 I 의 컨트롤 메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케이의 몸은 복원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아키토는 어느 정도 복원되었는데 어째서 케이는 복원되지 않은 건지 의문이 생겼다. 그는 좀 더 자세히 내부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번데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액체 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안에서 지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세포 분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 이었다.
-끼릭
"음!"
그 때 머리의 헤드 센서가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 내었다. 아키토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어떤 비행물체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단 근처의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투투투투!!
비행물체는 대형 헬리콥터였다. 모두 두 대였는데 헬기들은 바로 이곳 상공에서 멈췄다. 헬기들이 호버링을 하고 있는 동안 헬기의 후부 램프 도어가 열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라펠링으로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아키토는 숨을 죽였다. 크로노스였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때에...!'
헬기에서 내려온 크로노스 조직원 수는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일반 조직원들과는 다른 모습의 옷을 입고 있는 자들도 섞여 있었다. 하이퍼 조아노이드였던 것이다. 이들은 뭔가 계측기 같은 것으로 그 일대를 수색하였다. 그러다가 이들은 그 문제의 번데기를 찾아내었다. 아마도 이들은 이걸 찾으러 온 것 같았다. 이들이 무전기에다 대고 뭐라고 하자 헬기에서 견인용 로프가 내려왔다. 그들은 곧 이어 그 로프를 번데기에다 단단히 묶어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아키토는 그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이퍼 조아노이드까지 섞여 있는 다수의 조아노이드 부대를 상대하는 것은 지금 아키토의 회복이 덜 된 몸으로는 무리였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어차피 녀석들도 금방 저것의 정체를 알아내진 못할 것이다. 일단은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산에서 내려온 아키토는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었다. 우선 첫 번째는 자신과 케이의 그 번데기가 떨어진 장소는 미국, 록키산맥이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세상은 이미 크로노스가 제압해 버린 뒤였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그게 벌써 6개월 전 얘기라는 것이었다. 그 때 미나카미 산에서 정신을 잃은 뒤 무려 반년이나 지난 것이었다.
아키토는 그 뒤로 크로노스의 지구 제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자들을 모아 레지스탕스 '제우스의 우뢰'를 창설하였다. 주로 퇴역 군인과 경찰이 주축이 된 이들은 여타의 다른 레지스탕스 들이 얼마 못가 크로노스에게 진압돼 버린 것과 달리 아키토의 능력과 카리스마, 탁월한 지휘 능력 덕에 오히려 크로노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키토는 요 반년간 조직의 정보망을 총 동원해 케이가 잠들어 있는 번데기의 행방을 수소문 했었고 드디어 그게 어디 있는지 찾아내게 된 것이다.
'기다려라, 케이. 내가 반드시 구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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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투투!!
클라우드 게이트의 헬리포트에 헬기 한대가 이륙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헬기까지 가는 길목 양쪽으로 크로노스 조직원들이 깔끔한 정장차림을 한 채로 도열해 있었다. 이들 사이를 발카스와 신, 푸르크슈탈이 지나가고 있었다. 발카스가 만들던 헌터의 조제가 완료돼서 지금 신과 함께 사해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럼 난 박사를 모시고 가 볼 테니까 뒷일을 잘 부탁하네."
"아아, 걱정 마. 다음에 시간나면 또 보세."
"그래, 그 때는 한잔 진하게 걸치자고."
헬기에 탑승하기 전, 신과 푸르크슈탈은 서로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신과 발카스는 헬기에 올랐다. 그 때 푸르크슈탈이 깜빡 했다는 듯이 황급히 발카스에게 물었다.
"저, 그런데 박사님. 일전에 말씀하시던 헌터는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이미 활동을 시작했네. 녀석이 움직이기 쉽도록 편의를 봐 주게나."
푸르크슈탈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윽고 헬기는 힘차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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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투투!!
"훗,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지?"
앱톰은 어느 건물 옥상 위에서 클라우드 게이트를 날아오르고 있는 헬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상당히 강력한 기가 느껴지는 것이 12신장 멤버들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날아가던 헬기를 본 앱톰은 다시 시선을 아까까지 보던 곳으로 돌렸다. 그 쪽에는 베르단디들이 숨어 있는 투룸이 보였다.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서 안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앱톰이 보기에는 아직 케이는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앱톰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케이는 분명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죽을 가이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언젠가 베르단디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쭉 저 여신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한 번 가이버 I 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녀석과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솜룸과 다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하지만 만약 그 전에 저 여신들의 위치가 크로노스에게 발각되면 큰일이다. 가이버 I 이 그들을 구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놈들에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다.
'그 때 까지는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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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더는 주변 정찰을 핑계로 하고는 레지스탕스 아지트를 나왔다. 아지트를 나온 후 베루더는 한동안 아무데로나 발 닿는 데로 주변을 돌아다니기만 하였다. 만에 하나 크로노스나 레지스탕스 멤버들이 자신을 미행할 것에 대비해 미행자를 따돌릴 목적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니며 미행자가 있나 촉각을 곤두세우던 그는 미리 약속된 접선 장소로 이동하였다. 접선 장소로 지정된 곳은 슬럼가 한복판에 있는 허름한 주점이었다. 주점 안은 이미 술주정뱅이들과 창부, 동네 불량배등이 잔뜩 있었다.
베루더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이곳에서 접선 대상을 찾았다. 그는 이윽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 짧은 미니스커트와 망사 스타킹, 그리고 가슴이 훤히 드러난 옷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앉아있는 금발의 여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여성의 이마와 양 볼에는 상당히 특이한 붉은색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베루더는 잠시 휘파람을 불고는 그 아가씨의 테이블에 바로 합석하였다.
"여, 아름다운 아가씨. 저랑 오늘밤을 뜨겁게 불태워보시지 않겠어요?"
".....죽일 테다, 이 망할 자식아."
베루더는 마라의 민감한 반응에 입술을 삐죽였다. 그 정도 농담도 못하느냐는 뜻이었다. 베루더는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맥주 한 잔을 주문한 후 다시 마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이~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삐지냐? 얘는~ 애가 너무 속이 좁아."
"시끄러! 나한테 굳이 이런 걸입고 오라고 한 이유가 뭐야! 짜증난단 말이다! 이 술집도 정말 싫어! 접선을 할 거면 이런 식으로 안 해도 되잖아!"
마라는 지금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불편했다. 게다가 스타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자니 신경이 이만 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접선 장소도 마음에 안 들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허름한 술집이라니, 베루더가 오기 전까지 마라는 네다섯 번이나 잔뜩 취한 주정뱅이들과 양아치들의 치근덕거림에 시달렸다. 하지만 비밀 접선인지라 함부로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니 힘을 써서 혼찌검을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베루더는 마라의 전신을 한 번 훑어보고는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휘유~! 뭐 보기 좋은데. 만날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지 말고 가끔은 그렇게 노출해 주는 것도 좋아. 솔직히 네 패션 센스, 영 아니었거든."
"....반드시 죽일 테다....!"
"그리고 비밀 접선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서 하는 게 정답이야. 으슥한 골목에서 단 둘이 만나는 건 오히려 들키기 쉽다고. Understand?"
마라는 이제 베루더를 보며 죽일 기세로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접선장소를 고른 건 베루더였고 접선할 때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가 생떼를 부린 사람도 베루더였다. 물론 반쯤은 장난이었지만. 그 때 웨이트리스가 커다란 맥주잔 하나를 들고 왔고 그는 잠시 맥주로 목을 축인 다음에 본론을 얘기하였다.
"그 아키토란 친구.... 사해로 갈 예정이야."
"사해? 거기가 어디야?"
"아아~~!! 마라, 마라! 제발 지리 공부 좀 해!!"
베루더의 놀림에 마라의 얼굴은 아예 시뻘개졌고 눈에는 살기(?)가 불타올랐다. 베루더는 그런 마라의 반응 같은 건 아랑곳없이 여유 있게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반쯤 비운다음 그는 마라에게 천천히 설명하였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께. 사해란 말이야...."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는 사해는 면적 1,020㎢. 동서길이 15km, 남북길이 약 80km. 최대깊이 399m, 평균깊이 146m 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대함몰지구대에 있기 때문에 호면은 해면보다 395m 낮아 지표상의 최저점을 기록한다. 북으로부터 요르단 강이 흘러들지만 호수의 유출구는 없다. 이 지방은 건조기후이기 때문에 유입수량과 거의 동량의 수분이 증발하여 염분농도가 극히 높아 표면수에서 200‰(해수의 약 5배), 저층수에서는 300‰이다. 따라서 하구 근처 외에는 생물이 거의 살지 않으며, 사해(死海)라는 이름도 이에 연유한다. 예로부터 높은 염분 때문에 사람 몸이 뜨기 쉬운 것으로 유명하다. 사해 주변은 고대문명, 특히 초대 그리스도교가 발생·발전한 곳으로 유명하며 구약성서에서도 사해가 '소금의 바다(Yam ha-Melah)' 등의 이름으로 종종 나온다.
(출처 : 네이버 백과서전)
"....란 말이야. Understand?"
"......"
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얼굴이 좀 맹해 보이는 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다만 이해 못했다고 하기는 창피하니까 고개를 끄덕여 보인 것뿐이다. 일급마는 천상계의 일급신과는 달리 거짓말 금지 규정이 없다.
"그래, 거기는 왜 간데?"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다만 그 곳에 아키토가 애타게 찾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더군."
"뭔가가 뭐야?"
"킥킥킥! 너도 그런 썰렁한 농담할 줄 아냐? 하긴 그런 어설픈 유머라도 있어야 나중에 시집 갈 수 있...."
"그만! 더 이상 장난치면 정말 죽일 테다!"
마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열을 내기 시작했고 베루더는 마라에게 진정하라고 말하며 그녀를 달랬다. 물론 웃음은 그치지 않았지만.
"뭐 그 뭔가를 아키토는 '번데기'라고 부르더군."
"번데기?"
"진짜 번데기인지 아니면 무언가의 암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제우스의 우뢰 정보부가 그 문제의 '번데기'의 소재를 찾아 낼 수 있던 것은 베루더의 공이 컸다. 그는 마계의 관리 시스템 '니드백'의 힘을 빌려 그것의 소재를 수색했던 것이다. 정보부 요원인 베루더에게 그 정도 사용 권한은 있었다. 베루더가 아니었으면 크로노스의 핵심 부서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레지스탕스로서는 찾기가 대단히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베루더가 마족이란건 아키토를 포함해서 제우스의 우뢰 멤버 전부가 몰랐다.
"아키토는 그걸 그저 번데기라고만 하지 더 이상은 말을 안 해줘. 나도 함부로 캐묻고 다닐 수도 없고 말이야. 의심사면 안되거든."
"그래? 그렇다면 출발은 언제?"
"내일. 그리고 나도 같이 갈 예정이야. 그것의 소재를 찾아내는데 내 공이 컸거든."
번데기를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이 인정돼서 베루더 역시 소수의 지원병력과 함께 아키토를 따라 사해로 가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마라는 진지한 얼굴로 베루더에게 분명하게 주의를 주었다.
"이봐,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거지만 싸움은 안 돼."
"아아, 걱정 마셔. 나도 죽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야. 불리하다 싶으면 내뺄 테니까 걱정 말라고."
베루더는 마계 정보부의 비밀요원이었다. 일급마 특무한정 요원 베루더. 이것이 그의 진짜 정체였다. 베루더가 인간계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한 것은 크로노스의 정체를 마계가 인지했을 무렵부터였으니 거의 백오십년 가까이 되었다. 그 동안 그는 크로노스의 힘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면 승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대마계장 힐드가 크로노스와의 교전은 가능한 한 피하라고 엄명을 내려두기도 했지만.
"정보 수집. 그게 내 임무야. 난 내게 주어진 일 이외에는 흥미 없어. 추가 수당을 준다면야 혹 모르겠다만. 킬킬킬."
베루더는 그렇게 낄낄 거리며 맥주잔을 마저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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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는 지구 제압 후 사해에 세계 최대의 연구 시설을 건설하였다. 피라미드 형태의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여러 연구 시설 등이 밀집한 이곳은 그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의 조아노이드 생산량은 다른 지역보다 적은 편이었다. 사실 조아노이드 개발은 이곳의 주 업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제압 이전엔 유명한 관광지였던 사해는 연구소가 들어서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말았다.
발카스는 사해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현재 진행상황에 대한 브리핑부터 받았다. 사해 호수 성분은 이제 양수로서의 조건이 완전히 갖춰진 상태였다. 염분 농도가 너무 높은 물이라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준비는 완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연구소에서는 조제시에 핵심이 될 코어(핵) 부분을 배양 중이었다. 소제는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 폭발한 유적 우주선의 파편조각 이었다. 이 부분 역시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발카스가 직접 팔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할 단계였다.
"그런데, 현재 보관중이라는 그 '번데기'라는 건 지금 어디 있나?"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연구원은 신과 발카스를 특수물질 보관소로 안내하였다. 연구원은 보관소로 가는 동안 그 고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것에 관한 건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번데기란 별명도 그저 겉모습만 보고 정한 것뿐입니다."
발카스는 이곳에 오기 전에 신으로 부터 또 한 가지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반년전 로키 산맥에서 강렬한 자기 이상이 관측돼서 조사팀이 현지로 날아가서 살펴보니까 그 번데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 이후 애리조나 본부기지로 옮겨서 조사를 진행해 보았지만 그 번데기를 구성하는 물질이 유적 우주선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그 이외는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그게 원래는 유적 우주선의 일부가 아닐까 싶어서 사해의 연구소로 옮겨 놓았다는 것이었다. 발카스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유적의 일부라는 점에.
"박사께 미리 말씀드릴까 했습니다만 박사께서는 일본에만 계셔서요. 그리고 안 그래도 일이 많으신데 이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하기도 뭐해서 아직까지 알려드리지 않았던 겁니다."
신은 이런 걸 미리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였지만 발카스는 개의치 않았다. 안 그래도 지금 사해의 프로젝트 문제나 앱톰 처리 문제,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발카스는 지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웬만한 건 현장에서 직접 처리하려 한 행동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여기 입니다."
이윽고 이들은 특수 물질 보관소에 도착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문제의 번데기가 보였다. 타원형의 황색 물체였는데 그 크기가 상당히 거대했다. 방안을 거의 가득 채울 지경이었다. 연구원은 번데기를 가리키며 계속 설명하였다.
"내부를 스캔해 보려 했습니다만 표면에서 계속 강렬한 자기장이 방출돼서 투시가 불가능 합니다. 어떠한 계측 장비로도 표면에 관한 제한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연구원들은 분해까지는 시도해 보지 못했다. 이게 만약 유적의 '부품' 중 일부라면 함부로 분해했다가 다시 재조립을 못할 경우 크게 낭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것의 분석은 크로노스 최고 과학자라 불리는 발카스가 직접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해서 신이 발카스를 모시러 간 것이었다. 어차피 이것의 표면 자체도 매우 단단해서 분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번데기를 지긋이 바라보던 발카스가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번데기 바로 앞에서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서 있기만 하였다. 의아해진 연구원이 발카스에게 말을 걸려 할 찰나 신이 그 연구원을 제지하였다.
"조용히 보고만 있어. 닥터 발카스는 우리 12신장 중에서 최대급의 투시 능력을 가지신 분이야."
발카스는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며 그 번데기의 내부 투시를 시도하였다. 잠시 후 발카스가 정신 집중을 풀며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신이 조심스럽게 결과를 물었다.
"어떻습니까?"
"음.....안 보여, 내 능력으로도 아주 뿌옇게 보일 뿐이야."
신은 발카스에 말에 상당히 놀랐다. 발카스의 투시력조차 거부할 정도의 물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발카스가 못한다면 그 어떠한 수단으로도 투시가 불가능 하다는 얘기밖에 안됐다. 혹시 알칸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어디 계신지도 몰랐다. 역시 직접 분해해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발카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안에 들은 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일세."
"네? 그럴 수가...."
"게다가 그 내용물도 점점 변화하고 있는 걸 느꼈네. 세포 분열이 진행 중이란 말이야...."
발카스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문자 그대로 '번데기'가 맞을지도 몰랐다. 번데기 안에서 성장을 끝낸 나비가 번데기를 뚫고 밖으로 나와 힘차게 날아오르듯이 지금 이 안에서 뭔가 아주 엄청난 것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크로노스에 크나큰 위협이 될 지도 몰랐다. 발카스는 연구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아, 내일이라도 이걸 분해해 보도록 하지. 내일 아침에 당장 저걸 열어보겠다. 준비하도록."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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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의 도쿄의 한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검은색 가죽점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얼굴 왼쪽엔 커다란 흉터가 나 있는 남자, 바로 앱톰이었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베르단디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 주변의 '순찰'도 이미 마쳤다. 앱톰은 근처 주점에서 가볍게 한잔 걸친 후 숙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음!'
그 때 앱톰은 자신의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미행을 할 거면 앱톰이 눈치 채지 못하게 최대한 기척을 없앤 다음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텐데 지금 이놈은 마치 나 여기 있소 라고 광고라도 하듯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라면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미행의 미자도 모르는 풋내기거나 아니면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여기가 좋겠군.'
앱톰은 근처에 있던 아파트 건설현장을 바라보았다. 입구에는 외부인이 못 들어오게 하려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지만 앱톰은 그걸 간단하게 비틀어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행하고 있던 자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온 앱톰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때?"
그러자 미행하던 자가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앱톰은 그대로 뒤돌아섰다. 당당하게 걸어 오는 걸로 봐서는 역시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앱톰은 감히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어처구니없는 녀석이 누군가 싶었다. 잠시 후 그 자가 좀 더 밝은 곳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앱톰은 깜짝 놀랐다.
"젝토올!!"
"오랜만이군, 앱톰."
누군가 했더니 놀랍게도 젝토올이었다. 1년 전 미나카미 산 유적 기지에서 자신에게 패한 후 다리를 잘라가며 간신히 도망쳤던 녀석이 놀랍게도 지금까지 살아있던 것이다. 유적 기지가 붕괴되면서 죽은 줄만 알았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앱톰은 잠시 코웃음을 쳤다.
"후후, 누군가 했더니 너였냐. 이거 놀라운걸. 큭큭큭.... 그래, 나한텐 무슨 볼일이지?"
"뻔 한 소릴, 너 한테 먹힌 내 친구 세 명과 내 왼쪽 다리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왔지."
그 소리에 앱톰은 킬킬거리며 젝토올을 비웃었다. 1년 전에 실컷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게 틀림없었다. 앱톰은 왼쪽 손을 생체 미사일 컨테이너로 변화시켰다. 이번에야 말로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너 한테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앱톰의 비웃음에 젝토올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이지!! 그것을 위해서 내가 다시 태어났으니까!!!"
-푸화악!!
젝토올은 순식간에 전투 형태로 변신하였다. 그 변신 모습을 본 앱톰은 깜짝 놀랐다. 덩치가 한층 더 커지고 모습 또한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젝토올의 전투 형태가 아니었다. 분명 그 때 이후로 제조재를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스릉!
"죽어라! 앱톰!!"
젝토올은 손목 근처에 삐쭉 튀어나와있던 작은 돌기를 길게 늘인 다음 앱톰에게 돌진하였다. 그리고 앱톰을 항해 그 돌기를 힘차게 휘둘렀다. 앱톰은 높히 점프하여 젝토올을 피했다. 젝토올의 일격은 그 앞에 있는 커다란 공사용 강철기둥을 갈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강철제 H빔이 아주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틀림없이 저건 고주파 블레이드였다. 이전의 젝토올에게는 없던 무기였다.
"쳇! 받아라!!"
-투화악!!
앱톰은 위에서 젝토올을 향해 생체 미사일을 날렸다. 그러자 젝토올의 어깨 장갑이 뒤쪽으로 활짝 열리더니 수없이 많은 양의 뭔가가 발사되었다. 생체 미사일이었던 것이다! 둘의 생체 미사일들이 중간에서 서로 맞부딪쳤다. 그리고 대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수많은 생체 미사일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철제 골조만 세워져 있던 아파트 건설현장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몇 발의 미사일이 밖으로 날아가 버리면서 근처의 민가를 덮쳐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웅부웅!!
-위잉위잉!!
앱톰은 전투 형태로 변신해서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젝토올도 등속에 있던 날개를 꺼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전의 젝토올은 날개가 있어도 비행이 불가능 했었는데 재조제를 받으면서 비행능력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앱톰은 이전과는 달리 긴장하고 있었다. 아까의 고주파 블레이드, 생체 미사일.... 분명 그것은 옛날 오인중 멤버들의 무기였다. 젝토올은 재조제를 받으면서 옛날 자기 동료들의 능력들까지 한꺼번에 추가한 것 같았다. 닥터 발카스, 그 망할 영감탱이가 젝토올을 가공할 위력을 가진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장난은 이제 끝이다. 각오해라! 앱톰!!"
젝토올이 앱톰에게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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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갑자기 정규 방송이 중단되면서 화면에서는 긴급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크로노스 일본지부가 도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 했으니 시민들은 절대 집밖으로 나오지 말고 외출중인 사람들도 통제국 요원들의 통제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 더 이상의 내용은 방송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아노이드들끼리 싸우고 있대나봐."
계엄령이 발령되자 위험을 무릅쓰고 베르단디들의 집으로 달려온 메구미가 바깥에서 들은 소문을 모두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린드는 의문을 품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겨우 그것 때문에 계엄령씩이나 선포하다니."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조제과정에서 크로노스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할 것을 그 유전자에 각인한 조아노이드들이 서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서로 사소한 말다툼 정도야 하겠지만 도시 전역을 이렇게 긴장에 몰아넣을 정도로 크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쳐도 그런 것 때문에 도쿄 전역에 계엄령 선포라니, 통제국의 반응이 너무 과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만약...."
지로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모두들 지로에게 주목하였다.
"만약 조아노이드끼리가 아니라 다른 뭔가가 조아노이드가 싸우는 거라면...."
그 말에 모두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른 뭔가가 이곳에 나타나서 크로노스의 조아노이드들이 요격에 나선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나타난 '무엇'은 크로노스 측으로서는 민중들에게 공개해서는 안 될 것이라 한다면 지금 통제국의 반응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난 것은....
"케이씨에요! 케이씨가 오신 거라고요!!"
갑자기 베르단디가 벌떡 일어서더니 현관 쪽으로 부지런히 뛰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깜짝 놀란 울드가 황급히 베르단디를 붙잡아 세웠다.
"진정해! 베르단디! 지금 나타난 그게 케이란 보장은 없다고."
"하지만...하지만 만약 케이씨라면요?"
그 말에 울드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지금 나타난 게 케이일 가능성은 적지만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무엇도 속단할 수가 없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울드는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케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게 베르단디였다. 더 말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좋아, 나도 같이 가자. 가서 확인해 봐야지."
"나도! 나도 같이 갈래!!"
그 때 스쿨드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현관 쪽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자 베르단디들의 경호를 맡고 있는 린드는 물론이고 지로와 핫세, 시즈까지 한꺼번에 일어섰다. 이들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나가보려 하였다. 시즈는 혹시나 지금 나타난 것이 아키토가 아닐까 싶어서 그런 거였다. 시즈가 나가려 하자 요헤이 까지 노구를 일으켜서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메구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모두에게 말했다.
"잠깐 다들 기다려요! 밖으로 나가면 통제국한테 들킬 수도 있다고요."
메구미는 이들의 행동을 말리려 하였다. 지금 계엄령이 내려져서 밖에는 통제국 요원들이 쫙 깔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배가 해제됐다고는 하지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간 크로노스에게 잡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베르단디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가겠어요. 죄송해요, 메구미씨."
베르단디의 단호한 표정을 본 메구미는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메구미 역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먼저 앞장서 밖으로 나가면서 메구미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안내할게. 바깥 지리는 내가 더 훤하고, 게다가 지금 전투가 어디쯤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메구미씨...우리랑 같이 가다간 메구미씨도...."
"괜찮아, 괜찮아! 안 들키면 되는 거지. 샛길로 가면 안 들켜. 나만 믿고 따라 오라고."
이들은 황급히 은신처를 나섰다. 메구미의 안내로 이들은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을 따라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는 생각 같아선 날아서 현장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건 린드가 제지하였다. 날아서 갔다간 크로노스의 감시망에 쉽게 걸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차라리 메구미의 말대로 골목길을 뛰어서 가는 게 훨씬 안전했다. 화재가 일어났는지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베르단디들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 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케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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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냐! 겨우 이 정도가 최강의 배틀 크리처냐!!"
제조재로 오인중 전원의 힘을 손에 넣은 젝토올은 그 가공할 전투력으로 앱톰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젝토올과 앱톰의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쿄 시내는 곳곳에 두 사람이 발사한 생체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곳곳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시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타앗!!"
-부웅!! 촤악!!!
젝토올은 순식간에 앱톰과의 거리를 좁힌 후 고주파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앱톰은 간신히 그 공격을 피했고 젝토올의 공격은 건물 옥상의 애꿎은 물탱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앱톰은 있는 힘껏 날아서 간신히 거리를 벌렸다.
앱톰은 다시 태어난 젝토올의 전투력에 경악하고 있었다. 오인중 전원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파워나 스피드 같은 것도 이전보다 월등히 향상되었다. 제조재로 저만큼의 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게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앱톰은 다시 한 번 공격을 시도 하였다. 그의 왼쪽 손목의 생체 미사일 컨테이너가 활짝 열렸다.
"받아랏!!"
-투파팟!!
왼쪽 생체 미사일이 전부 젝토올을 향해 발사 되었다. 그와 동시에 앱톰은 오른 손을 등 뒤로 슬쩍 돌린 후 오른 손목에 있던 생체 미사일 컨테이너를 열고 그 쪽의 미사일들을 몰래 발사하였다. 그리고 발사된 미사일들을 뇌파로 컨트롤해서 젝토올이 모르게 멀리 우회 시켰다. 시간차 공격을 시도해 보려는 것이었다.
-푸슝! 푸슝!!
-콰콰쾅!!
먼저 발사된 미사일들은 젝토올의 생체 열선포 탄막에 걸려 순식간에 전부 격추되었다. 젝토올은 이런 잔재주 밖에 못 부리냐며 앱톰을 비웃었다. 그 순간 앱톰이 나중에 발사한 또 한 무리의 생체 미사일들이 젝토올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또 다른 미사일들의 존재를 눈치 챈 젝토올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전신에 퍼져 있는 발전세포를 풀가동하여 강력한 고압 전류를 발생시켰다.
-파지직!!!
젝토올의 몸을 중심으로 강렬한 전류가 사방으로 방사 되었다. 그 전류에 노출된 미사일들은 터지지도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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