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날개 1화-몬스터(7)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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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 영지는 라이오스 덴 아덴 자작이 다스리는 영지로 로일 왕국에서 중하급 규모의 영지였다. 라이오스 자작은 선정을 베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저지르는 귀족도 아니었던지라 영지의 사람들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영지였다. 그런 아덴 영지로 드디어 케이가 들어섰다.
“휴우. 겨우 도착인가.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어졌네.”
이렇게 늦어진건 순전히 전부 케이가 정신을 콩밭에 놓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혼자 아덴 영지까지 오는게 심심해서 이것저것 딴생각을 하다 보니까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엉뚱한 데로 빠지기 일쑤였다.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도 마음을 콩밭으로 다시 보내길 4번. 그 결과 이틀이라는 시간을 날로 까먹은 것이다. 게다가…….
“……겨우 도착하고 나니 이미 늦은 저녁이란 말이지. 이래선 당장 용병 길드로 갈 수도 없잖아. 하아.”
자신이 생각해도 무안한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용병 길드는 상황을 보니 내일 가야할 것 같은데……그럼 지금은 아무래도 여관을 찾아 방을 잡아 놓는 게 우선이겠지.”
꼬르르륵.
“…쩝, 배도 고프고 말이야.”
케이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여관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케이의 시야가 닿는 범위에서는 여관이 보이지 않았다. 케이는 현제 좀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빨리 여관을 찾아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찾으러 돌아다니면 더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시간도 배로 들기 때문에 케이는 이 영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요, 형.”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케이는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박해 보이는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응? 왜 그러니?”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제가 이곳을 처음 와서요. 괜찮은 여관을 알고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줄 수 있나 싶어서요.”
“그래? 괜찮은 여관이라면 물론 알고 있지. 지금 이길로 쭉 가다보면 중앙 분수대가 나오지. 그럼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좀만 걸어가면 가이아의 숨결이라는 여관이 나와. 푸른색 간판이니 찾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곳이 이 영지의 여관 중에서는 가장 음식이 저렴하고 맛있지. 주인도 친절하고 말이야. 한번 거기로 가봐. 손해 보지는 않을 거야.”
“예, 고맙습니다. 형.”
여관이 있는 곳을 알아낸 케이는 위치를 알려준 청년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해 청년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5분정도를 걸어가자 청년이 말해준 중앙 분수대가 눈에 보였다.
“저 중앙 분수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이었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서 3분정도를 빠른 속도로 걸어가자 푸른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 적힌 건 ‘가이아의 숨결’이라는 가게 이름. 청년이 말해준 대로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딸랑!
가볍게 문을 여는 순간,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역시 용병왕국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인기 있는 여관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이렇게 클 수도 있다니. 잠시 여관 안을 둘러보다 이내 케이는 발걸음을 프런트 쪽으로 옮겼다. 프런트에는 15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갈색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귀여운 외모의 소녀였다.
“하루 묵으려고 하는데 방 있나요?”
“예. 한분이신가요?”
“네.”
“자. 여기 이름을 적어주시고요. 숙박비는 식사비랑 합쳐서 후불로 내시면 되고요. 여기 열쇠 받으세요. 204호에요. 그리고 혹시 저녁을 안 드셨으면 식사를 준비해드릴까요?”
“예. 부탁할게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야채 스프와 빵하고 스테이크 하나로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케이는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로 내려왔다. 빈자리를 찾아서 앉으니 잠시 후, 케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케이는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 청년이 말 한데로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그 날, 케이는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케이 녀석, 잘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케이가 에덴 영지에 도착했을 그 시각. 케인 영지의 카이안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이안이 현제 시간 때우기로 하고 있는 것은…….
사각 사각.
“음, 됐어. 이 부분을 좀 만 더 다듬으면…….”
바로 나무 깎기였다.
“저기⋯⋯카이안 씨?”
“음? 왜 그러나.”
“딱히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요.”
“음?”
“다 좋은데 왜 제가 모델인거죠?”
카이안의 앞에는 난감한 웃음을 띄고 있는 이즈미가 앉아있었다. 카이안이 제작하고 있는 나무 인형의 모델은 이즈미였던 것이다.
“뭐 어때서 그런가. 혹시 도와주기 싫어서 그러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럼 됐지, 뭘 그러나.”
그러고선 다시 나무 깍기에 열중하는 카이안. 그 모습을 본 이즈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뎅뎅뎅뎅!!!
카이안의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을 곳곳으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이즈미와 카이안도 그 소리를 들었다. 둘의 표정이 가볍게 굳었다. 이 종소리가 알려주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로군.”
“네, 하지만 이번엔 몇 명이나 죽을지…….”
종소리가 울린다는 건 마을에 몬스터가 쳐들어온다는 의미. 마을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는 즉시. 싸울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 무장을 하고 모이고 그럴 능력이 없는 자들은 각자 만들어놓은 대피소로 몸을 피신한다. 이 행동은 지극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미 여러번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이안도 검을 챙기고 티아랑 서둘러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을 곳으로 달려갔다.
“음? 무슨 일이지?”
평소 같으면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사람들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표정이 굳어있었다. 카이안과 티아는 의문을 떠올리며 서둘러 다가가 마을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걸 그랬다. 그랬다면 투지라도 불태울 수 있었을 텐데. 마을 밖에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해오는 몬스터의 수는 족히 수천! 그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게 섞여있었다.
150정도 되어보이는 키에 쥐의 얼굴, 초록색 피부를 지닌 고블린, 인간과 비슷하거나 좀 더 큰 채격을 지니고 돼지 얼굴은 한 오크. 이족보행을 하는 늑대, 웨어 울프. 이족보행을 하는 사자, 웨어 라이언. 이족보행을 하는 쥐, 웨어 레트. 이족보행을 하는 호랑이, 웨어 타이거. 이족 보행을 하는 곰, 웨어 베어. 이족보행을 하는 도마뱀, 리자드맨. 초록색 피부에 2미터가 넘는 키를 지닌 트롤. 트롤과 비슷한 채격에 황갈색 피부를 지닌 지상 몬스터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거. 최소 3미터를 자랑하는 키의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 사이클롭스와 비슷한 덩치에 소머리를 하고 그레이트 액스(Great ax)를 들고 있는 미노타우르스. 머리가 두개 달린 오거의 돌연변이, 트윈 헤드 오거 등등.
결코 같이 다니지 않는 종류의 몬스터들이 한무더기로 마을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런 몬스터들에게도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마에 새겨져있는 표창과 비슷한 십자 마크였다. 그 문장은 마신 베르스퍼의 문양이었다.
“후우. 미치겠군. 나도 꽤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었지만 이런 몬스터 종합 선물세트는 처음인데.”
“그러게 말이다.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마을은 천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대부분이 용병들이었거나 아직도 활동하는 현역이거나 용병이 되기 위해 수련을 쌓은 사람들이었지만 그것도 규모가 비슷할 때나 우위에 설 수 있을 뿐, 지금은 규모나 실력이나 모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푸념할 시간 있으면 전투 준비나 서둘러.”
어느새 말을 나누고 있던 두사람의 뒤로 다가온 티아와 카이안이었다.
“쳇, 알았어, 알았다고.”
“저들이 도달하기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한다. 로이는 돌격부대를 모아서 울프대형을 만들고, 키리아는 마법병단을 모아서 고위 마법을 준비해. 티아는 정령부대를 모아서 공격을 준비하고. 모두 얼른 서둘러.”
“알았어, 대장.”
“맡겨 둬.”
“오랜만에 그레이 용병단의 활약이로군.”
그레이 용병단은 대륙 10대 용병단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던 용병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 용병단은 갑작스럽게 해체가 되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는 것이다.
그레이 용병단이 전투 준비를 할 동안 몬스터들은 점점 가까이 접근했다. 고위 마법일수록 범위 마법인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범위 마법으로는 얼음 마법인 블리자드가 있다. 이 마법은 발동하면 200M이내의 생명체를 꽁꽁 얼려버린다. 이정도의 마법이 7클레스급 마법이다. 이같이 마법이란 클레스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파괴력과 범위가 넓어진다. 이 마을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은 6클레스의 번개 마법인 썬더 스톰이었다. 100M 이내의 범위에 낙뢰를 떨어뜨리는 마법인데 항마력이 높은 오거라도 이 마법은 견디지 못한다.
“마을에 있는 마법사가 총 몇 명이지?”
“네, 대장. 총 127명입니다. 거기다 모두 최소 4클레스 이상의 실력자만 모였습니다.”
“그럼 썬더 스톰은 총 몇 번이나 발동할 수 있나?”
“마법사들이 전부 그거 하나에 달려든다면 15번 이상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빠지고 나면 50여명이 구동을 하게 될 텐데 그러면 아무리 많이 발동해봐야 4~5번이 한계입니다.”
“으음. 큰일이군. 마을의 방벽도 보통의 마을처럼 만든거라 얼마 버티지도 못할 텐데.”
“모두 죽기를 각오한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저 엄청난 수에 질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모두 최선을 다하겠지만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투 준비를 하는 가운데 마을의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워져있었다. 카이안은 그런 마을을 한번 둘러보면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이 마을에 그레이 용병단 전원이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여지껏 이런 압도적인 수적 차이를 앞두고 전투를 한 적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카이안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전투의지가 떨어지기에 이내 생각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이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 카이안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나갔다.
숙면을 취한 케이는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두말 할 것 없이 용병 길드 지부였다. 오늘 용병등록을 하고 여관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에 마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들었던 말에 의하면 중앙 분수대를 기준으로 북쪽, 즉 케이가 들어왔던 입구에서 그대로 쭉 직진하면 나오는 곳에 있다고 들었다.
“중앙 분수대를 기준으로 북쪽 이랬으니까 여기서 오른쪽인가?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케이는 중앙 분수대에 도착해서 잠시 중얼거린 다음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렇게 10분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을까. 드디어 케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용병 길드가 보였다. 베이지색 간판에 검은색 글씨로 ‘용병 길드’라고 씌어있고 글씨 뒤엔 용병을 상징하는 검과 방패가 겹쳐진 앰블럼이 그려져 있었다.
끼익!
약간의 소음이 일어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용병 길드의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2~300명의 인원이 수용 가능할 듯 보이는 내부에는 꽤 많은 수의 용병들이 모여서 일을 알아보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이, 꼬마야. 이곳엔 무슨 볼일이냐?”
케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2M 장신의 근육질의 사내답게 생긴 외모를 지닌 남자가 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말인가요?”
“그래. 내가 이곳에서 처음 보는 인물은 너 하나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말을 건 것이고.”
“헤에.”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 꽤 오래 머문 용병 같았다. 어쩌면 길드 지부에 소속된 용병일지도. 케이는 잘됐다는 생각에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는 용병시험을 보려고 왔는데요.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용병시험? 흐음, 새내기 용병 후보생인가. 좋아. 따라와라.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휙 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케이는 사내의 말에 따라 열심히 그를 쫓아갔다. 사내는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더니 이내 여려 방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문들 위에는 각자 뭔가가 적혀있었는데 케이의 왼쪽에 있는 방은 ‘소드’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있는 방은 ‘매직’이라고 적혀있고 그 맞은편에 있는 방은 ‘네츄럴’이라고 적혀있으며 그 옆에 있는 방은 ‘서먼’이라고 적혀있는 그런 식이었다.
“어머, 루크가 이곳까진 왠일이세요?”
“아아. 시험을 보겠다는 애송이가 한명 있어서 말이야. 마침 내가 그곳에 있어서 안내를 해준 거지.”
앞에 있는 누군가와 간단하게 대화를 나눈 루크는 뒤로 빙글 돌아 케이에게 말했다.
“자, 그럼. 너는 무엇이 특기지?”
“검입니다.”
“검? 흔하군. 그럼 간단하게 시험 방식을 설명해주겠다. 그리 복잡하진 않아. 저기 ‘소드’라고 적혀진 방 있지? 거기로 들어가서 이쪽의 용병 한명과 대련을 하면 된다. 용병 등급은 대련을 하면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점수를 매겨서 C급부터 S급까지 등급을 매기니 시험을 보고 나오면 여기 시아가 등급을 말해줄거다. 자, 그럼 들어가 봐.”
케이는 등 떠밀려 ‘소드’방에 들어섰다. 방의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그러니까 가로*세로 50M정도의 넓이인 것 같았다. 그 방의 건너편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용병이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그는 블루블랙의 머리와 눈동자를 지닌 미남이었는데 움직이기 편하고 가벼운 레더 아머를 걸친 것으로 봐서 속도를 중시하는 검사인 것 같았다.
“이번에 시험을 본다는 사람이 그대인가?”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규칙은 밖에서 듣고 왔을 테니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난 A급 용병인 아바돈이라고 한다. 한번 최대한 기량을 발휘해보라구.”
아바돈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춤에 매여 있던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롱소드는 바스타드 소드 보다 가볍고 한손으로 사용하는 검이었다. 역시 처음의 예상대로 속도를 중시하는 검사인 것 같았다.
스르릉.
케이도 검을 뽑아들었다. 카이안에게 받은 은빛 드래곤이 양각 된 보검(寶劍)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명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 너……카이안과는 무슨 사이지?”
“에? 저희 아버지인데요.”
“네가 카이안의 아들이라고?”
“네, 저희 아버지를 알고 계신가요?”
“물론. 용병들 중에서 카이안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그 얘기는 나중에 마저 하기로 하고 우선은 시험에 집중하도록 하지.”
말을 마치며 롱소드를 겨누는 아바돈의 행동에 케이도 말을 멈추고 바스타드 소드를 납검(納劍-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것.)했다. 오픈 더 윙을 위한 기수식이었다.
‘상대는 롱소드. 내 바스타드 소드보다 길이는 훨씬 짧다. 거리상으론 내가 유리해. 하지만 상대는 속도를 중시하는 스피드형 검사. 검의 사정거리 이상 접근을 허용하게 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
케이는 상대를 빠르게 분석하며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검법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이제 검기를 뿜어낼 수 있게 되어서 피닉스의 춤을 제외한 전 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불꽃은 인위적으로 뿜어내는 거라 본래 낼 수 있는 위력의 3분의 2정도 위력만 발휘 되는 것이 문제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동안 케이는 수련을 하면서 중점을 둔 것이 초식과 초식의 연계였다. 피닉스의 춤을 익히기 위한 초석이기도 했지만 적절한 상황에 맞는 초식만 사용해도 2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안 올 텐가? 그럼 내가 먼저 가지.”
타탁!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볍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오며 아바돈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그의 롱소드는 어느새 가운데에서 우측 하단으로 옮겨진 상태.
스파앗!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며 아바돈의 롱소드가 케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눈으로 쫒기도 벅찬 속도!
채앵!
간신히 왼쪽 어깨를 노리는 첫 번째 일격을 오픈 더 윙으로 쳐낼 수 있었지만 아바돈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흡!”
외마디 기합성과 함께 왼쪽으로 튕겨지던 아바돈의 검이 방향을 틀더니 다시 케이를 노렸다.
“쳇!”
케이는 불꽃의 회전을 시전하고는 바로 한걸음 물러서며 피닉스의 불꽃의 기수식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아바돈의 검은 불꽃의 회전에 튕겨지기 전에 살짝 뒤로 빠져서 견제 범위를 빠져나오고는 다시 찔러 들어왔다. 거기다 이번엔 검이 점점 불어나더니 어느새 8개의 검이 케이를 노리고 찔러왔다.
슈슈슉!
“이, 이런!”
케이의 실력은 아직 환영들 중에서 진짜를 구분할 실력이 안된다. 거기다 환검은 처음 경험하기 때문에 경험미숙으로 군데군데 허점이 보였다.
채채채챙!
피피픽!
“으윽!”
결국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4~5개를 막았지만 나머지 환영들이 몸에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몸을 비틀며 급소를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건 일루젼 소드! 아버지에게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경험 하는 건 처음인데⋯어쩌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겠어. 이것이 A급 용병의 실력인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제 실력을 내기도 전에 져버리겠어.’
생각에 빠지는 사이에도 아바돈의 검은 용서 없이 찔러 들어왔다. 케이는 허리를 틀며 옆으로 피했지만 케이를 스쳐가려던 검은 어느새 방향을 틀어 몸을 베어왔다.
“이익!”
채챙!
‘엇! 검에 힘이 없다?’
몇 합 교환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힘이 실리지 않은 검격이 날아오진 않았었다. 그렇다면 이건 검에 힘을 뺌으로서 무언가 노리는 수가 있다는 뜻. 그런 케이의 생각을 증명해주듯 아바돈은 튕겨지는 검을 따라 신형을 솟구쳤다.
휘리리릭!
정점에 도달한 순간 온몸으로 회전을 하며 공격해오는 아바돈. 그 속도 또한 상당히 빠른지라 케이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 위기를 모면할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내자. 여지껏 받았던 수련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생각해내라!
“아! 그렇지!”
한 가지 방법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순간, 케이는 지체하지 않고 바스타드 소드에 오러를 생성시키고는 그대로 땅에 박아 넣었다.
“하압!”
투콰콰콰콰콰쾅!
잠시 아바돈이 좀 더 접근하길 기다리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케이는 지체하지 않고 대지의 불꽃을 시전 했다. 폭발 범위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검기는 사방이 아닌 위로 솟아오르게 제어했다. 그 결과, 바닥은 케이를 중심으로 1M정도가 터져나갔으며 박아 넣었던 검기는 모조리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런!’
갑자기 바닥에서 검기들이 솟아오르자 아바돈은 매우 놀랐다. 이건 꽤나 자신하던 공격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반격해 올 줄이야….
‘하지만 이것이 내 실력의 전부는 아니지.’
아바돈도 검에 검기를 생성시키고는 화검기를 하나하나 쳐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진 순간,
“받아라! 썬더 스피어!”
파지지직!
아바돈의 검에 전격이 맺히더니 쾌속하게 찔러 들어왔다. 마치 번개가 떨어져 내리는 듯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 거기다 곧게 뻗어 오는게 아니라 번개가 치는 듯 지그재그로 날아오니 방향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케이는 그걸 피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는 이내 막는 것도 포기해버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졌습니다.”
아바돈은 케이의 목에 검을 겨누고는 아무 말 없이 케이를 바라보다가 그가 졌다는 말을 하자 검을 거두었다.
“괜찮은 실력이었다. 그 정도면 B급 용병은 할 수 있겠군. 앞으로 열심히 해라.”
“저 그런데…….”
“음?”
“이제 말씀해주시죠. 저희 아버지를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음, 그렇군. 너희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못 들었나? 너는 그레이 용병단이라고 들어봤나?”
“그레이 용병단이라면 20년전에 사라졌다는 그…….”
“그래.”
케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게다.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레이 용병단을 주제로 꺼냈으니.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은 회색 머리의 사내였지. 그래서 용병단 이름이 그레이 용병단이라 불린 거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걸 다시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은 바스타드 소드를 무기로 사용했는데 그 검신에는 은빛 드래곤이 새겨져 있었지.”
그 말에 케이도 서서히 감이 잡히는 듯,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 이름이 카이안이었다.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이 카이안이라는 건 용병들 사이에서는 알 사람은 대부분 아는 이름이지. 그런데 그 검과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네가 케이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손 쓸 도리도 없는 바보일 테지.”
“그럼 아버지가……그 대륙 10대 용병단 중 하나인 그레이 용병단의 단장?”
“그렇다.”
그제야 케이는 카이안이 그렇게 강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지. 왠지 억울한데.’
“문을 나가면 복도 끝에 아리스라는 여자가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방금 내가 말한 등급을 말해주면 알아서 용병패를 만들어 줄 거다.”
아바돈은 자신이 할 말만 간단하게 말하고는 처음에 들어왔던 문을 통해 사라졌다. 케이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도 문을 나섰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괴물들!”
츄아악!
키에에엑!
쿠워어어어!
그레이 용병단이 마을에서 몬스터들과 싸운지 몇 시간이 흘렀다. 초반엔 고 클레스의 범위 마법과 각각 포메이션을 펼치며 유리하게 전투를 했지만 애초에 그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은 밀리다가 난전이 되버렸다. 이런 난전에서는 마법은 거의 도움이 안된다. 범위 마법을 쓰면 아군까지 휘말리기 때문이다. 마법사란 원거리에서 최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중장거리 데미지 딜러. 이런 접근전 에서는 차라리 검사가 훨씬 유용하다. 그레이 용병단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 사실을 알기에 프리스트들과 마법사들이 회복 마법과 강화 마법을 검사들에게 걸어주었다. 그래도 밀리는 건 마찬가지. 몬스터들의 수를 절반정도 줄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레이 용병단도 전력의 반 정도를 잃는 손실을 격어야 했다. 애초에 이 정도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아무 피해 없이 끝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티아. 그걸 사용해야겠다.”
“그런……그걸 사용하면 마을이…….”
“어쩔 수 없어. 마을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만 이들의 목숨은 하나. 여기서 전부 당하면 아무것도 안돼.”
전투가 길어지자 카이안은 마침내 특단을 내렸다. 몇십년 전부터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건물을 지을 때, 그것을 계산하고 지었다. 이 마을은 하늘 위에서 보면 거대한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가운데에 오망성. 그 오망성 바깥쪽에 육망성이 그려지고 다시 그 바깥으로 팔망성이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규모의 마법진 거기다 마법진의 중심엔 8클레스 마법을 한번은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최상급 마나석이 박혀있었다.
“알겠어요. 준비할게요. 5분이면 될 거에요.”
티아는 마법진의 발동 준비를 하러 어딘가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에 몇몇에게 빠르게 말을 내뱉고는 다시 그들과 함께 어딘가로 황급하게 달려가길 여러 번. 카이안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 안의 바스타드 소드를 움켜쥐고는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앞으로 5분 동안 시간을 끄는 것이 그를 비롯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용병들의 역할이었다.
“젠장! 5분이 왜 이렇게 길어! 대장, 준비되려면 아직 벌었어?!”
“시끄러! 그들도 서두르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재촉하면 빠르게 될 것도 안돼! 닥치고 한놈이라도 더 베!”
츄아악!
크르르륵.
카이안의 검에 트롤이 쓰러졌다. 그의 주위는 온통 몬스터들이 시체로 가득했다. 물론 그 정도의 몬스터를 쓰러트리는데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이다. 이런 난전 속에서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주위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그런 건 신경 쓸 시간도 없었을 게다.
피유우우웅! 콰아앙!
키아아악!
취이익! 꾸익!
무에에에에!
잠시 검을 거두며 숨을 고를 때, 하늘 위로 신호용 불꽃 겸 범위 공격형 5클레스 마법인 버스트 플레임이 폭발했다. 버스트 플레임은 허공에서 폭발하며 파이어 레인과 동일한 효과를 보였다. 몬스터들은 버스트 플레임의 불꽃에 휩싸이며 가지각색의 비명을 질러댔다.
“모두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라!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까지 휩슬린다. 얼른 서둘러!”
카이안은 버스트 플레임이 터지며 몬스터들이 주춤하는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재빨리 명령을 내리고는 신호가 올라오면 이동하기로 되어있던 위치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의 뒤를 몇십명의 마을 사람들이 뒤쫓았다.
‘부디 이 방법이 성공하기를…….’
이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운명에 맡겼다.
“마법진 가동합니다.”
“최대 출력까지 앞으로 42초. 연계 마법진 가동. 범위와 레벨을 계산합니다. 10초 후 완료.”
“범위 확장. 이곳으로부터 사방 500이내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들로 한정. 마나석의 봉인을 풉니다.”
츄아아아아
마법사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바닥에 설치된 마법진에서 빛을 뿜었고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마나석의 힘을 빌려 주위의 마나를 끌어 모았다. 이것이 바로 마나 드레인. 그렇다면 이것은 최소한 7클레스 이상의 마법이라는 뜻.
“충전까지 앞으로 5초, 4초, 3초, 2초, 1초, 충전 완료. 언제든지 발동 가능합니다.”
“카오틱 디스팅레이터 발사 준비.”
“발사 준비.”
“앞으로 30초 후에 모든 마력을 최대한 개방. 몬스터의 섬멸을 우선으로 한다.”
“예!”
조금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내가 죽더라도 네놈들을 하나라도 더 대리고 가주마. 그러니 어서 어서 이곳으로 와라.
중앙부에서 몬스터들을 바라보는 티아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흘렀다.
조금 더, 조금 더, 지금!
“30초 경과. 마력을 최대한 개방합니다.”
쿠아아아!
거대한 힘이 한번에 집중대자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집중된 마력은 중앙의 마법진에 박힌 마력석을 중심으로 하나의 수식을 새겨나갔다.
거대한 힘, 빛의 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세계의 질서를 이루는 힘.
이 마법진으로 발동하려는 마법은 8클레스의 카오틱 디스팅레이터. 이 마법은 빛, 즉 언데드에 최강이고 몬스터에게도 통상 공격보다 2배 이상의 타격을 주는 신의 힘을 빌리는 마법이었다. 마법이 발동되면 그 영역 안에 거대한 소멸의 빛기둥이 솟구치며 어둠에 관련된 힘에 타격, 또는 소멸시킨다. 지금 발동되려는 카오틱 디스팅레이터는 최대범위 500m, 몬스터의 3분의 2정도가 이 범위 안에 들어있었다. 제대로 성공만 하면 현재 남아있는 전력으로도 약간의 피해만 입고 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마물들! 한번에 보내주마.’
“간다! 모두 마력을 집중해줘!”
“예!”
-세상을 빛으로 물들이며 악을 멸하는 천계의 힘이여. 하늘 저 너머로부터 이곳으로 오라. 그 절대의 소멸의 힘을 이곳에 내리라!
“카오틱 디스팅레이터!”
스파아아앗!!!
소멸의 빛이 마을 주변을 감싸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너무나도 따스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잔혹한 빛, 결계 안에 피신한 사람들은 그 빛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그 범위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되어갔다. 온몸이 부서지며 빛가루로 화했다. 그렇게 몬스터들은 예정대로 3분의 2가 단번에 사라져갔다.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상급 몬스터들이 대부분 뒤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일단 수로는 밀리지 않게 되었지만 질적으로도 그다지 유리하다고 핳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마법사들은 방금전 발동시킨 카오틱 디스팅레이터 때문에 마나가 고갈된 상태. 그들까지 지켜가며 싸워야 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다들 투지에 불타있다는 것 정도. 지금부터는 정신력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모두 대형을 짜서 돌격! 결코 혼자서 상대하지 마라! 상대는 상급 몬스터다!”
카이안은 크게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뒤로 마을 사람들이 따라서 달렸다.
“쿠워어어어”
“시끄러워!”
빠각!
무엇인가 박살난 소리가 울려퍼지며 또 하나의 몬스터가 쓰러졌다. 카이안은 그런 몬스터를 뒤에 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벌써 이렇게 싸운지 몇시간 째. 이미 체력도 마나도 한계에 달해서 이제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그런 상태. 잠시 휴식을 취한 마법사들도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남은 수는 대략 50마리. 마을사람들은 대략 70명 정도 남아 있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카이안은 착잡함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몬스터에게 고전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대륙 10대 용병단에 들어가는 자랑스러운 그레이 용병단인데. 게다가 이 몬스터들은 평소 상대해오던 몬스터보다 1.5배정도 더 강력했다. 평범한 오크조차도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누군가 일부러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쿠오오오오!”
“시끄럽다니까!”
퍼어억!
한참 생각을 집중하려는데 또 한 마리의 몬스터가 공격을 해오면서 방해를 하자 짜증이 난 카이안은 그대로 검을 새차게 휘둘러 돌격해오던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이것들은 정말 질리지도 않고…보통 이정도면 도망가기 마련인데, 역시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군. 가만,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 이마에 있는 문장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떠오를 듯 말 듯 한 기억 때문에 카이안은 전투 와중에서 머리를 싸매야 했다. 다행이 그렇게 고민한 보람이 있는지 하나의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생각났다. 젠장! 분명 저 분양은 마신 베르스퍼의 상징. 그렇다면 배후에 마신이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조용히 있던 마신이 갑자기 왜….”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에 잠기면서 전투를 하느라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몬스터들이나 마을 사람들이나 수가 많이 줄어있었다. 몬스터가 대략 8마리. 마을 사람들이 15명 정도만이 남아있었다. 카오틱 디스팅레이터 덕분에 오히려 퇴로가 막혀 배수진을 친게 이런 상황까지 왔다. 8클래스의 범위마법인데 촉매로 삼은 건물들이 무사할 리 없지 않은가.
후우우웅!
그 때, 뒤에서 거센 파공성이 울리며 무엇인가 카이안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젠장, 늦었다!’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이미 피할 수는 없는 상황. 카이안은 검에 모든 힘을 담아서 자신의 앞에 세웠다.
케이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 때문에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했다. 올 때처럼 걸어가면 늦는다. 그래서 가까운 마시장에서 지구력이 좋은 말 한 마리를 구해서 지금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뭐지. 왜 이렇게 자꾸 불안할까.’
자신조차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어떤 불길한 느낌 때문에 이렇게 서두른다는게 웃기기도 했지만 카이안이 말 한적이 있었다. 언젠가 전장에서 이런 예감이 목숨을 구할 날이 올 거라고. 그때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지금 겪어보니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런 불안한 느낌이 든다는 건 자신의 주변, 혹은 가족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랴! 더 속도를 내라!”
덕분에 죽어나는 건 말이었다. 벌써 몇시간 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말을 갈아타지 않는 한, 시간을 그리 빠르게 단축할 순 없는데도 케이는 여전히 말 재촉했다.
“허억, 허억,”
콰직!
“키에에에….”
또 한 마리의 몬스터가 마지막 신음을 흘리다 이내 숨이 멎었다. 카이안은 그런 몬스터들의 시체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었다. 마을은 실질적으로 전멸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 하나 뿐, 아니. 지금 영지에 있을 케이까지 포함해서 두명뿐이다. 그리고 아직 서있는 몬스터가 하나. 지상 몬스터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오거. 그중에서도 머리가 두개 달린 변종 오거, 트윈 해드 오거였다. 투윈 해드 오거는 머리가 두개인 만큼 보통 인간정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었다. 힘은 기존 오거의 두배, 거기다 3클래스까지의 마법을 사용 가능했다.
“후우, 후우, 네가 마지막이다. 덤벼라.”
“쿠우우우.”
트윈 해드 오거는 알아들은 양,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들고는 천천히 카이안에게 다가왔다. 5미터가 넘는 거구가 천천히 접근하자 그 압박감은 엄청났다. 헌데 카이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검을 꽉 쥐고는 전신을 긴장시켰다. 이미 한계까지 육체를 혹사시킨 그는 시간을 길게 끌수록 더욱 불리했다. 그랬기에 검을 꽉 쥐고는 자신의 모든 힘을 검 끝에 담았다. 단 한방. 오로지 한번으로 승부를 봐야했다. 이 수법은 어쩌면 그도 죽을 수도 있는 동귀어진(仝歸禦殄)의 수법. 하지만 이미 이것만이 최후의 수로 남아있었기에 그에게 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조금만 더, 좀 더.’
조용히 숨을 고르며 간격과 타이밍을 재는 카이안. 노릴 곳은 트윈 해드 오거의 심장.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지금!’
“타핫!”
카이안이 트윈 해드 오거가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하자 검과 하나가 된 듯, 날아갔다. 신검합일(身劒合一)이 아니다. 그저 검에 힘을 최대한 모아 찔러가는 것 뿐이다. 다만 트윈 해드 오거의 키가 커서 날아가는 것일 뿐.
“쿠워어어어!”
트윈 해드 오거가 거리를 벌리려 몽둥이를 휘둘러왔지만 이미 죽기를 각오한 상황. 몽둥이 따위 몸으로 맞아주마! 대신 너도 같이 가는 거다!
푸욱!
퍼어억!
카이안은 그대로 몽둥이를 몸으로 얻어맞고는 트윈 해드 오거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는데 성공했다.
“쿠르르륵, 쿠르륵.”
트윈 해드 오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가슴에 꽂힌 검과 나가떨어진 카이안을 번갈아서 바라보더니 이내 몸이 쓰러졌다.
“크흐흐흐, 결코…나 혼…자 가진 않…는다.”
카이안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땅에 피로 무언가를 끄적이고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이것이 케이가 도착하기까지 불과 10분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랴! 이랴!”
카이안이 쓰러지고 잠시 후, 마을 저편에서 빠른 속도로 말이 달려왔다. 그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케이였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멀리서 마을이 무너진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먼 거리까지 퍼져오던 피 냄새!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짙은 혈향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즈미 누나! 그리톤 씨! 네오 씨!”
크게 이름을 외쳐보아도 답해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에 더욱 말에 박차를 가하는 케이. 그리고 마을에 도달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체의 땅을 목격했다.
“이게 대체…….”
고개를 휘휘 둘러보다가 이내 한곳에서 시선이 멎는 케이. 그곳은 자신의 아버지, 카이안이 쓰러져있는 곳이었다.
“아버지!”
서둘러 달려가서 카이안의 곁에 주저앉은 케이는 카이안을 안아올렸다. 죽은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사후경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체온도 아직은 느낄 수 있었다. 빠르게 식어가는 체온을.
“아버지…….”
케이는 고개를 떨궜다.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크윽…….”
결국 한 두 방을씩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으흐흑…….”
아주 자그마한 흐느낌. 슬픔을 억누루지 못했기에 작게 흐느꼈지만 케이는 그 이상은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던 케이는 카이안의 옆에 피로 쓰여진 글자가 있는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고는 글을 바라보니.
‘문장, 마신 베르스퍼.’
라는 말만 씌어 있었다. 그 말에 이상함을 느낀 케이는 잠시 슬픔을 뒤로 미루고 주변의 몬스터들을 살펴보았다. 몬스터들의 시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이마에 있는 특이한 문장. 그 결과, 케이는 한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마신 베르스퍼의 문장이리라. 카이안은 그것을 알려주려 한 것이리라.
“마신…베르스퍼.”
마을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준 많은 사람들.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크아아악! 베르스퍼! 세상이 널 용서해도 나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더라도 너의 존재를 지워버릴테다!”
그렇게 하늘에 분노를 외치는 케이의 몸에서 회색빛의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한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기운. 케이는 몰랐지만 이 때, 케이의 첫 번째 봉인이 풀렸다. 이 순간을 기해서 하단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케이는 몇 날 몇일을 소비해서는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몬스터들은 한데 모아서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을 뒤져서 돈되는 것들을 챙겼다. 마을의 생존자는 오직 자신 하나 뿐, 자신은 이제 이곳을 떠나 베르스퍼의 문장을 달고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러 다닐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는 것. 그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라도 더 그들의 곁으로 보내주리라.
케이가 마을을 떠난 얼마 후, 세상은 미친듯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한 청년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광전사처럼 몬스터들을 누비며 베어가는 청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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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귀차니즘과 슬럼프가 만들어낸 연중에서 한발짝 벗어났습니다. 확실히 슬럼프는 무섭군요. 이제 앞으로는 빨리 쓸 수 있을지...
이제 준비된 이야기는 베르단디&린드와 페이오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걸 먼저 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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