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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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24화 - Final countdown -
-쿠오오오오!!!
"이 벌레 같은 놈들!! 이 카브라알을 화나게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카브라알의 주위로 강력한 기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인해 그 들이 있는 곳, P.W.R 의 컨트롤 룸의 전자 장비들이 이상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P.W.R의 제어 시스템이 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P.W.R의 출력이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카브라알의 폭주 행위에 자빌이 당황해하면서 카브라알을 말리려 하였다.
"노사!! 진정하십시오! 지금 그 기술을 쓰면 신이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됩..."
"닥쳐어어어!!!"
-파지직!
카브라알이 고함을 질러 자빌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카브라알의 고함 소리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강해진 기의 출력 때문에 근처에 있던 관제 콘솔 하나가 새까맣게 타 버렸다. 카브라알은 자빌과 쿨메그닉을 매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날 방해하면 너희들도 전부 잡아먹어 버리겠다!!!"
쿨메그닉은 카브라알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자기의 체조직으로 만든 가짜 뇌를 탑재한 앱톰이 소멸되는 바람에 그 때의 정신적 충격을 고스란히 다 받은 카브라알이 미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저렇게 쿨메그닉과 자빌을 알아 보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자빌, 그만 가자고. 더 이상은 우리도 어쩌지 못해."
"하...하지만 노사를 저렇게 그냥 두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도 말려들어."
쿨메그닉은 고개를 저으며 카브라알을 가리켰다. 카브라알을 다시 본 자빌은 깜짝 놀랐다. 카브라알의 조아 크리스털이 더 한층 강하게 빛나면서 몸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브라알이 전투 형태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캬아아아아!!!!!"
-쿠오오오!!!
카브라알의 뒤통수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몸은 그대로 면서 뒷머리만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뒷머리는 더욱 더 커져서 이제는 카브라알 자신의 몸보다도 더 커져 버렸다. 그럼에도 카브라알의 머리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쿨메그닉과 자빌은 서둘러 컨트롤룸 밖으로 나갔다. 카브라알도 저 지경으로 폭주 중이었고 그리고 신 역시 아무래도 여기를 눈치 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여기서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어서 빨리 도망쳐야 나중에 어떻게든 뒷수습을 할 여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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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지?'
앱톰은 꿈을 꾸고 있었다. 아니, 의식은 또렷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앱톰은 틀림없이 자신을 인식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전신이 다시 복원될 때의 느낌, 무의식의 세계에서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올 때의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복원되고 있는 걸까? 분명히 난 그 때 그 카브라알이라는 조아로드 영감에 의해 돌로 변해 버렸었는데. 앱톰은 이런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석화 상태가 풀린 걸까.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앱톰의 몸은 확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의식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
그 때 앱톰은 무의식의 저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는 이윽고 형태가 뚜렷해졌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하야미였다. 크로노스가 심은 바이러스를 극복하고자 자기 몸을 스스로 손종 실험체라는 불안정한 몸으로 만든 남자.
'뭐야. 누군가 했더니 너였냐.....'
'......'
'잠깐!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앱톰은 깜짝 놀라 하야미에게 물었다. 이곳은 앱톰만의 무의식의 세계. 하야미는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다. 만약 하야미가 들어오려 한다면 방법은 단 하나. 앱톰에게 흡수당하는 것.
'설마! 너...!'
하먀미는 대답 없이 그저 은은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뒤돌아서서는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하야미의 뒷모습이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놀란 앱톰이 다시 한 번 하야미를 불렀다.
'하야미?! 어디 가는 거야! 하야미!!'
"헉!!"
앱톰이 두 눈을 번쩍 뜨고는 그 자리에서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마치 긴 악몽이라도 꾼 듯 앱톰의 얼굴은 얼이 빠져 있었다. 그는 잠시 머리를 휘휘 젓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옆에는 가이버 I, 케이와 조그마한 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베르단디가 있었다. 그런데 베르단디의 얼굴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슬픈 표정이었다. 케이는 가이버로 변신해 있는 상태라서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앱톰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크....뭐야, 너희들이 여기 왜 있어? 게다가 여신, 당신은 왜 그렇게 조그맣게 되있는거지?"
".....앱톰. 몸은 괜찮아?"
"머리가 좀 띵하지만 괜찮아. 그건 그렇고 혹시 여기 하야미도 있지 않았어?"
그 순간 케이와 베르단디는 말을 잊었다. 도저히 그걸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앱톰이 어떻게 부활하게 됐는지를.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의 이름도. 한동안 두 사람이 말이 없자 앱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냐? 하야미 어딨냐니까."
"애...앱톰 씨. 사실 하야미 씨는....."
베르단디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감춘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하야미 씨를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한 번 해보세요...."
"이봐, 지금 난 선문답할 기분 아냐. 빨리 제대로 말해."
"하야미 씨는.....앱톰 씨를 구하기 위해....자신을 바치셨어요....."
거기까지 말한 베르단디는 결국 굵은 눈물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케이 역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순간 앱톰은 베르단디의 말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유전자 내부에 아주 낯익은 유전자가 감지된 것이다. 이 몸의 유전자 구조는 바로....
"서...설마! 하야미가.....? 내....내가 하야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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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신은 클라우드 게이트의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지금 그는 쿨메그닉들이 있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P.W.R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간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쪽은 쿨메그닉, 자빌, 카브라알 이렇게 세 명. 신은 단 혼자. 3:1도 이길 정도로 신이 강한 것도 아니고 다른데서 원군을 불러올 수도 없다. 원군을 불러올 명분도 없다. 이제까지 앱톰을 배후 조종한 것은 그 놈들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알칸펠에 대한 반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푸르크슈탈의 죽음에 깊게 관련되있다는 (아니, 신은 지금 그 세 명이 푸르크슈탈을 죽였다고 보고 있었다) 것도 신의 추정일 뿐 물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함부로 행동했다간 되려 푸르크슈탈처럼 몰래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그 놈들이 맘대로 설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 세 명이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이유. 어쩌면 놈들은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려고 그러는 것일 거다. 발카스 박사도 신과 푸르크슈탈에게 차마 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알칸펠 이외의 다른 조아로드가 알게 되면 크로노스의 붕괴까지 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임이 틀림없었다. 발카스도 다 말해주지 않았던 이유가 어쩌면 그걸 알게 된 신과 푸르크슈탈이 다른 흑심을 품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두 사람은 발카스가 가장 신임하던 멤버들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띵.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옥상에 도착하였다. 신은 각오를 다지며 밖으로 나갔다. 열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알칸펠에 대한 충성, 조직을 지키겠다는 발카스와의 약속, 푸르크슈탈의 원통함을 풀기위해 신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P.W.R의 통제실로 가려면 옥상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가야한다. P.W.R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기계적으로 확대, 증폭시켜 좀 더 많은 조아노이드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시스템 구성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수신하는 수신부, 그리고 이를 사방으로 확산시키는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송신부, 사념파의 방사 출력을 올리기 위한 동력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컨트롤하는 통제부로 나뉘게 된다.
그 중에서 송신부의 경우에는 넓은 범위의 송신을 위해 가능한 한 안테나의 크기가 커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클라우드 게이트의 옥상 전 지역을 안테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설물로 건설하였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고층 빌딩처럼 옥상에 헬리포트를 건설할 수가 없어서 난기류를 무릅쓰고 지상에서 250m 지점, 클라우드 게이트를 구성하는 두 빌딩 사이에 헬리포트를 건설한 것이다. P.W.R의 구성은 클라우드 게이트를 포함해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크로노스 통제국 지부 전부가 이러한 방식으로 되어있다.
-우우우우웅!!!!
"헉! 이...이건!!"
옥상으로 나온 신은 경악하였다. 옥상에 올라와 보니 옥상부의 P.W.R 시스템 전체가 아주 강한 빛을 발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P.W.R 의 출력이 최대에 이르렀을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풀 파워로 올릴 일이 없으니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지금 P.W.R이 이정도로 반응한다는 이야기는 컨트롤룸 내부에서 쿨메그닉 일당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은 서둘러 옥상을 가로질러 가서 P.W.R의 컨트롤룸에 들어갔다.
"뭐...뭐야! 이건!!"
컨트롤룸 내부에는 더 경악스러운 것이 있었다. 컨트롤룸 내부에는 방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덩어리가 들어차 있었다. 전체가 타원형이고 약간 분홍빛을 띠고 있으며 표면이 쭈글쭈글하고 곳곳에는 중력제어용의 그래비티 포인트가 박혀 있었다. 마치 인간의 뇌와 같은 그 거대 물체의 한 가운데에는 카브라알이 가부좌를 튼 채로 거의 표면 깊숙이 박혀 있다시피 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카브라알은 신이 들어온 것을 알아보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신...이냐, 결국 여길 찾아냈군.>
"카....카브라알 노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쿠후후후.... 저 건방진 애송이들에게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서...설마 여기서 그걸 쓸 생각입니까!!"
카브라알의 말을 들은 신은 경악하였다. 지금 카브라알은 자신의 최종 전투형태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변신 과정인 '드래고닉 바스트'를 사용할 생각인 것이었다! 카브라알은 일반적인 조아로드들처럼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전투형태에 이를 수가 없다. 저 인간의 뇌와 같은 모습은 카브라알의 2단 변신 중에서 제 1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저 상태에서 외부에서 최종 전투형태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최종 전투형태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영양분이란 것은 바로 조아노이드들. 그 조아노이드들을 저 뇌가 전부 흡수해서 한데 뭉친 다음 육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흡수해야 하는 조아노이드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 마리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몇 천 마리 단위는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클라우드 게이트 내부에 있는 조아노이드 전부를 다 잡아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사!!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런 짓을 하게 되면 이 도쿄 지역을 통제할 인원이 없게 됩니다!!!"
<상관없어! 그깟 소모품 녀석들 좀 쓰겠다는데 뭐가 어때서!! 난 저 가이버 놈들을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신은 컨트롤 패널을 슬쩍 돌아보았다. P.W.R의 시스템이 현재 사념파를 최대 출력으로 방출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클라우드 게이트 내부의 모든 조아노이드는 전부 카브라알의 정신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봐야 했다. 아마 지금쯤 조아노이드들은 카브라알에게 흡수되기 위해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신은 곧 건물 내의 모든 조아노이드들이 전부 옥상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형 조아노이드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서 날아오고 있었고 그 외 조아노이드들은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 등 가용한 모든 통로를 이용해서 오고 있었다.
<크크크크. 이미 늦었다, 신. 클라우드 게이트 내의 모든 조아노이드는 전부 다 내 수중에 들어왔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도쿄 전역에 퍼져 있는 모든 조아노이드 역시 전부 다 내 손아귀에 있지.>
카브라알의 말에 신은 경악하였다. 그 말은 결국 도쿄에서 조제를 받은 조아노이드 전부, 즉 크로노스 소속이 아니면서도 자진해서 조제를 받은 민간인들까지 전부 다 카브라알의 정신 지배하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신의 얼굴은 대번에 창백해졌다. 조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이번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민간인들. 카브라알에게 먹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 번 카브라알의 육체에 동화되면 두 번 다시 분리가 불가능해진다.
-키이잉!!
신은 자신의 조아 크리스털을 전개 시켰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런 대 참사를 막으려면 아직 조아노이드를 융합동화하지 않은 지금 힘으로라도 카브라알을 저지해야 했다. 신은 조아 크리스털의 힘을 개방해서 자신도 전투 형태로 변신하려 하였다.
"노사!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소!!"
<킥킥킥! 힘으로라도 내 드래고닉 바스트를 막겠다는 거냐? 허나.....이미 늦었다!!>
-콰지지직!!!
그 순간 카브라알의 본체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본체 아래쪽에는 마치 나무뿌리처럼 수많은 촉수들이 본체를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에는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컨트롤룸 바로 아래층에 있던 조아노이드들이 카브라알에게 이미 흡수당한 것이다!
"이...이건!!"
<말했잖아!! 이미 늦었다고!!>
-부웅!!
그 순간 카브라알의 촉수 하나가 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다. 신은 미처 전투 형태로 변신할 틈도 없이 양 팔을 교차해서 그 촉수를 막았다. 순식간에 촉수가 신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콰다당!!
촉수에 얻어맞은 신은 그대로 뒤로 붕 날아가서는 컨트롤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컨트롤룸의 두터운 방호문조차 휴지조각처럼 구겨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신은 컨트롤룸에서 십여 미터 이상 떨어진 지점의 바닥에 쓰러졌다.
"우우우우...."
"우어어...."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신이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눈에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옥상에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카브라알의 사념파에 정신을 지배당한 조아노이드들이 벌써 옥상에 도착한 것이다. 깜짝 놀란 신이 서둘러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아노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 거기 서라! 가면 안 돼!!"
"......우우우...."
그러나 이미 카브라알의 사념파에 지배당한 조아노이드들은 신의 명령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눈을 한 채로 좀비처럼 P.W.R 컨트롤룸 쪽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답답해진 신이 걸어가던 한 조아노이드의 어깨를 붙잡은 채 거칠게 흔들어 보기까지 했다. 물론 사념파는 그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방사하면서. 그러나 그것조차 소용없었다. 그 조아노이드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념파끼리 충돌할 경우 출력이 비슷하면 대게의 조아노이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조아로드의 명령을 듣게 된다. 그런데 신은 바로 코앞에 있는 조아노이드조차도 통제하지 못했다. P.W.R의 능력이 전부 카브라알의 사념파에만 초점이 맞춰진 상태라서 이미 신의 사념파 능력으로는 그 힘을 상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콰지지직!!
컨트롤룸의 지붕을 카브라알의 촉수들이 뚫고 나왔다. 그리고 그 촉수들은 그대로 몰려온 조아노이드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더니 조아노이드들을 무차별적으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마치 물과 물이 만나 하나가 되듯이 자연스럽게 조아노이드들은 촉수와 동화되어 갔다. 그 장면을 보면서 카브라알이 광소 하는 것이 들려왔다.
<크하하하하!!! 자, 오너라! 나의 먹이들아!! 와서 나의 거대한 몸을 만들어라!!>
신은 카브라알이 옥상에 모인 조아노이드들을 흡수하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카브라알의 발견이 너무 늦었다고 계속 자책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놈들이 여기 있을 것이 뻔 할 텐데도 직접 찾아보지도 않고 다른 병력들의 지휘통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그저 상황실에서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너무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젠 카브라알의 최종 변신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옥상에 집결한 조아노이드들을 계속해서 융합하는 그 와중에 카브라알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명령을 내리는 곳은 도쿄 전지역이었다.
<도쿄에 있는 모든 조제체들아! 여기로 오너라. 그래서 그 피와 살을 전부 나에게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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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R로 인해 최대출력으로 증폭된 카브라알의 사념파는 도쿄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 사념파는 도쿄 내에 있는 모든 조제자들이 수신하였다. 크로노스의 조직원들은 물론이고 크로노스 조직의 일원이 아닌,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조아노이드로의 조제를 선택한 민간인들 까지. 힘든 야근을 끝내고 남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주점에서 가볍게 술 한 잔 걸치던 평범한 샐러리맨, 퇴근 후 세면실에서 씻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던 가장, 여자친구와 함께 밤의 낭만을 만끽하던 젋은 청년. 조아노이드로 조제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카브라알의 사념파에 정신을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딘가로 좀비처럼 맹목적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울고 불며 말려도 소용없었다. 이들은 그저 도쿄 중심 쪽으로 걸어가고들 있었다.
"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심야의 연예 토크 'OO의 한밤의 데이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지금 생방송 심야 토크쇼가 진행 중이었다. 동시간대 다른 프로그램들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달리는 이 프로의 주 시청 층은 20대층의 젊은이들이었다. 사회자의 방송 시작 선언과 함께 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사회자가 오늘의 메인 게스트를 소개하였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요즘 장안의 화재를 모으고 있는 4인조 인기 락밴드, '수가단'입니다!!'
"꺄아아아!!!"
"오빠아아아!!!"
객석에서 비명 소리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기들이 좋아서 지르는 비명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가단은 크로노스 일본 지부가 젊은 층을 파고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육성한 그룹이었다. 멤버 전원이 조아노이드로 조제된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가창력과 테크닉, 화려한 무대, 그리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출중한 외모 등으로 젊은 층의 폭발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지금 여기 방청석에 모인 사람들도 전부 팬클럽소속 여학생들이었다. 여느 프로 같으면 아르바이트생들로 채웠을 테지만 수가단이 나온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수가단 멤버가 화려한 옷들을 차려입고 무대 위에 오르자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한층 더 커져갔다. 소리가 너무 커서 방송 진행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었다. 방송 스텝들이 방송 전에 팬클럽 회원들에게 누누이 주의를 줬지만 소용없었다. PD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 전국의 팬클럽 회원들이 다 TV를 보고 있을 테니 시청률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됐기 때문이었다. 수가단 멤버들이 무대 위에 마련된 게스트 석에 앉은 다음 본격적으로 프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럼 우선 리드 보컬인 OOO 님께 질문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 K양과의 열애설 질문만 빼놓고 뭐든지 질문하세요."
"하하하,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바로 그 질문인데요."
"K양은 좋은 여동생이지요. 우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수가단의 리더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연예인들이 흔히 하는 답변(변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돌발 사태가 생기고 말았다.
"....우어어...."
"으으으...."
인터뷰를 하던 수가단 멤버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만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방송 전 리허설에서는 이런 얘기가 전혀 없던 터라 스텝들이 크게 당황해 하였다. 관객들이야 멤버들이 무슨 깜짝 쇼라도 하는 줄 알고 함성을 질러댈 뿐이었다. 그러나 깜짝 쇼 같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현장의 스텝들이 무대 밖으로 나가려 하는 수가단 멤버들 앞을 가로 막았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생방송 중이란 말입니다! 사전에 얘기 없는 깜짝 쇼는 곤란...."
"크워어어어!!!"
-부웅!
"으아악!!"
갑자기 멤버들이 앞을 가로막은 스텝을 번쩍 들어 올려서는 관객석 쪽으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멤버들은 전부 조아노이드. 전투 형태로 변신하지 않아도 웬만한 성인 남성 한 명쯤은 가볍게 집어던질 수 있을 정도였다. 던져진 스텝은 그대로 관객석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 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행동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수가단 멤버들은 주위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좀비처럼 멍하게 걸어가고만 있었다. 스텝과 경비원 몇 명이 달려들어 제지해 보려 했지만 그 때마다 저 멀리 던져질 뿐이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그들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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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카브라알의 촉수들은 옥상에 집결해 있던 조아노이드들을 전부 흡수해 버렸다.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아노이드들을 다 먹어치운 촉수들은 다시 컨트롤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동안 주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쿠쿵!!
"욱! 뭐, 뭐야!"
그 때 갑자기 바닥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리고 컨트롤룸 내부에서 뭔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하고 신은 황급히 컨트롤룸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크하하하하!!!!!>
-쿠콰콰쾅!!
컨트롤룸 내부에 카브라알은 없었다. 대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만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신이 그 구멍을 내려다보자 바닥을 연속으로 뚫으면서 건물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카브라알의 모습이 보였다. 카브라알은 내려가면서 사방으로 수없이 많은 촉수를 뻗고 있었다. 다른 조아노이드들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내려가면서 각 층의 조아노이드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이틈에 빨리 P.W.R을 멈춰야 해!'
신은 즉시 컨트롤패널로 달려갔다. 카브라알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지금이 찬스였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조아노이드들이 전부 먹히는 거야 못 막는다 치더라도 최소한 도쿄 시내의 민간인 조제체들 만이라도 지켜야 했다. P.W.R의 능력을 신 자신이 쓰던지 아니면 최소한 누구도 못쓰게 기능을 정지시키기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컨트롤패널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카브라알이 P.W.R의 출력을 최대로 고정시켜 놓은 상태에서 자기의 사념파만 수신하도록 설정을 바꿔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여기서는 손 쓸 수가 없어!"
신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카브라알은 이미 수를 쓰고 나간 것이다. 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리조나 본부기지의 발카스를 호출해 보려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본부 기지조차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혹시나 통신기 고장인가 싶어 워싱턴을 호출했지만 워싱턴의 필라즈 오브 헤븐은 바로 응답해 왔다. 신은 워싱턴과 잠시 통신을 주고받았다. 놀랍게도 필라즈 오브 헤븐 조차도 애리조나 본부기지와 연락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설마 거기에 기간틱 다크라도 나타난 것일까?
"이럴 수가.... 이렇게 급박한 때에 본부기지와도 연락이 끊기다니!"
신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 혼자서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폭주하기 시작한 카브라알. 어딘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쿨메그닉과 자빌. 그리고 밖에 있는 가이버.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본부 기지와 연락조차 안 되고 있었다. 외부의 적도 버거운 판에 내부의 결속마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 세계는..... 우리 크로노스는..... 앞으로 어찌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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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앱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그저 말없이 앱톰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도 달리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앱톰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왜....왜 하야미가 희생 돼야 하는 거야. 왜! 왜 나 때문에!!!"
-콰아앙!!
분노를 터트린 앱톰은 주먹을 바닥에 힘껏 내리꽂았다. 그로 인해 콘크리트 바닥이 크게 깨져 나갔다. 지금 앱톰은 손종 실험체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던 하야미가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을 알고 쇼크를 받은 것이었다.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자기의 세포가 하야미를 먹어치운 것이 되니까. 지금 앱톰은 그 슬픔을 이렇게 분노로서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앱톰 씨.... 하야미 씨는 앱톰 씨를 위해....."
"닥쳐! 내게 아무소리도 하지 마!!"
베르단디가 그 슬픔을 느끼고는 앱톰을 위로하려 하였지만 앱톰은 거부하였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그런 그를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앱톰을 보면서 케이는 케이마 씨 때의 일을 떠올렸다. 같았다. 그 때와 같았다.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투를 벌여 결국 소중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잃게 만든 그 때의 비극이.
-콰쾅!!
<크하하하하!!>
그 때 어디선가 큰 폭음이 나면서 웬 노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케이들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클라우드 게이트 건물 외벽에서 무슨 촉수 한 가닥이 뻗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촉수는 케이들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촉수의 끝 부분이 뭔가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킬킬킬! 여기들 있었구나, 쥐새끼들!>
"이...이 목소리는...!"
"설마 카브라알?!"
촉수의 끝 부분이 변형 되면서 뭔가 커다란 머리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인간 노인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눈 부분은 마치 닫힌 것 같이 보였고 머리 양쪽에는 뿔이 돋아나 있었다. 마치 악마의 얼굴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그 얼굴이 케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나는 카브라알. 12신장 카브라알님이시다. 감히 내게 그런 짓을 하다니. 여기서 네 놈들을 전부 박살내 주마!>
카브라알! 아까까지만 해도 앱톰의 몸에 가짜 뇌를 박아 넣고서는 그 몸을 조종했던 놈이다. 그 장본인이 이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조아로드의 전투 형태는 바로 이런 모습인 것 같았다. 카브라알의 머리가 앱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앱톰 녀석. 결국 부활했군. 그 손종 실험체 녀석의 몸을 파먹고 부활한 거냐? 훗, 동료의 몸을 잡아먹은 소감이 어때?>
"카브라알!! 너 이 자식 닥치지 못해!"
깜짝 놀란 케이가 카브라알에게 소리쳤다. 그 때 앱톰이 케이를 뒤로 물러나게 한 다음 오른손을 카브라알을 향해 뻗어 올렸다.
"그만 닥치시지. 이 더러운 촉수 녀석아!"
-슈룩! 꾸욱!
그 때 앱톰의 오른 팔이 커다란 생체 열선포 유닛으로 변신하였다. 곧 생체 열선포에 에너지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그 때 까지도 카브라알은 공격이나 회피를 할 생각도 안한 채 그저 앱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웃고만 있었다.
"받아랏!!"
-푸슝!! 콰아앙!!
워낙 근거리에서 발사된 빔이라 빗나갈 여지가 없었다. 앱톰이 발사한 강력한 빔은 그대로 카브라알의 머리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그 자리에는 머리가 잘려나간 촉수만이 남았다. 이긴 걸까?
<킬킬킬. 이게 끝인 줄 아느냐?>
그 때 다시 카브라알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잘려나간 촉수에서 다시 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복원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들이 경악하였다. 녀석은 불사신인가! 앱톰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몇 번이라도 부숴주마!!"
-파앗!
앱톰은 본격적으로 전투 형태로 변신하였다. 이전에 앱톰이 즐겨 쓰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사인중 버전의 모습이었다. 앱톰이 다시 그 촉수 머리를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 하였다. 바로 그 때 클라우드 게이트의 건물 외벽에서 뭔가가 튀어 나왔다.
-콰콰콰쾅!!
<하하하하!!!>
놀랍게도 촉수 머리는 한 개가 아니었다. 수 없이 많은 촉수들이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을 뚫고 밖으로 나와서 케이들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맨 처음에 나온 촉수 머리 한 개는 진짜 머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똑같이 생긴 수많은 촉수 머리들이 한 지점을 노려보는 광경은 두려울 지경이었다.
<자 어떠냐, 애송이들아. 너희들은 날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과연 그럴까?"
-철컥!
앱톰이 오른 팔의 생체 미사일 컨테이너를 열고 카브라알을 쏘아 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적어도 난! 너의 그 더러운 머리 몇 백 개쯤은 간단히 부숴버릴 수 있어!!"
<킥킥킥! 이게 내 실력의 다 라고 생각지 마라. 이건 그저 장난에 불과해.>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겨우 이게 다일리는 없다. 이건 그저 전초전에 불과할 뿐이다. 앱톰을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조아로드의 맹공에서 어떻게 도망치느냐가 큰일이었다. 게다가 앱톰은 물러날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케이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하야미라는 손종 실험체 녀석도 참 웃기는 놈이지. 너만 구하면 만사가 다 해결될 줄 알았나 보지? 어차피 나한테 곧 죽을 텐데. 킥킥킥!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뭐....뭐라고! 이...이 자식...!"
"하야미 씨를 모독하지 마라!!"
그 때 케이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카브라알의 독설에 케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대학에서 인정받고 있던 젊은 화학도를 감언이설로 꼬드겨 함정에 빠트려 놓고서는 바이러스를 주입해서 부려먹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조제해 가면서 까지 크로노스에 맞서려 했던 사람이었다. 크로노스만 아니라면 그가 이렇게 갈 이유가 없었다. 아니 여기 모인 모두의 인생이 이렇게 비틀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놈들이 감히 동료를 위해 마지막에 자기 몸을 바친 사람에게 멍청이라니! 케이가 그 자리에서 힘차게 외쳤다.
"가이버!! 기간틱!!!"
"!!"
<음?!>
케이는 즉시 기간틱을 호출하였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번데기가 나타날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아키토가 먼저 기간틱을 식장하고 있어서 소환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케이가 변신에 실패하자 카브라알이 케이를 비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어리석긴. 벌써 잊었느냐. 기간틱을 아키토에게 뺏겼다는 사실을. 괜한 헛수고 하지 마라.>
"......"
"케이 씨....."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케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믿고 있었다. 케이라면 이 위기를 극복해 내리라는 것을. 그리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베르단디가 좋아하는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사람인 케이라는 사람은 이제까지 쭉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케이 씨는 강한 분이에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다시 일어서셨어요. 이번에도.... 이번에도 저에게 그 모습을 보여 주세요!'
베르단디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빌었다. 그 때 가만히 침묵하고만 있던 케이가 입을 열었다.
"헛수고가 아니야."
<뭐?>
"우리들이 이제까지 해온 싸움, 그리고 하야미 씨의 희생, 전부 다 헛수고가 아니야!"
베르단디와 하야미가 말한 것, 기간틱에 걸맞은 케이의 성장. 언젠가 기간틱이 케이를 인정하고 다시 돌아올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을 믿고 그 길을 쭉 걸어가는 것.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절망스러워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기간틱은 다시 케이에게 돌아올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때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모든 이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가 없다!
"기간틱아!! 오너라아아아!!!!"
케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영혼의 외침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투오오오오!!!
<아니!!!>
"케이 씨!!"
케이의 등 뒤에서 드디어 모두가 고대하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번데기였다. 그 모습을 본 카브라알은 경악하였고 앱톰도 크게 놀랐다. 베르단디는 환희의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번데기의 껍질이 활짝 열리면서 드디어 기간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철컥! 철커덕!!
-키이잉!!
기간틱은 순식간에 분해되더니 케이의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케이의 이마에 자리 잡은 컨트롤 메탈과 기간틱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하나로 합체되면서 밝은 빛을 발하였다. 위기의 순간, 드디어 케이가 가이버 기간틱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케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카브라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마. 하야미 씨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숭고한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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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떠냐 와펠다노스. 네가 자랑하는 왕국이 홀랑 다 타버렸는데."
애리조나 본부기지 지하 대공동. 바로 위층에서는 다들 탈출하느라 난리가 났지만 아직 아키토 만큼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공동 내부에는 잿더미가 돼 버린 와펠다노스의 왕국, 숲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키토는 상공에서 와펠다노스를 내려다보며 빈정대었다.
"다음은 뭘 보여줄 꺼냐. 아님 밑천이 다 떨어졌냐. 어쨌든 지금 너희들에겐 승산은 없어."
와펠다노스와 발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분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지금 이들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기지 자폭까지는 이제 겨우 몇 분. 그 동안 발카스가 부상당한 리엔쯔이와 성궤내부에 있는 항행 제어구를 가지고 탈출하려면 그 동안 누군가가 남아서 기간틱 다크의 발을 묶어둬야 한다. 그러나 와펠다노스는 이제 남은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왕국을 모두 잃었다. 지금은 와펠다노스 부근의 나무뿌리들만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 또 다시 신민들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었다. 이로서 와펠다노스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만약 발카스가 자리를 뜨기라도 하면 기간틱 다크가 이를 눈치 챌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본부기지만 잃고 놈을 잡는데는 실패하게 된다. 두 사람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속으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고 있지만.
-키이잉
"응? 이건..."
그 때 아키토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키토는 이내 가이버 I, 케이가 기간틱을 호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케이의 호출에 기간틱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키토는 코웃음을 쳤다. 일본 쪽에서도 뭔가 큰일이 있는지 아까 몇 번 정도 기간틱 호출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 때마다 아키토는 가볍게 그걸 물리쳤다. 의지력에서 앞서는 아키토가 식장하고 있는 한 기간틱은 케이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었다.
'훗, 어리석은 녀석. 기간틱은 이미 완전히 내 손에 들어왔어. 몇 번을 해봐도 소용없다.'
아키토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때, 이변이 일어났다!
<기간틱아! 오너라아아!!!>
'아니?!!'
-철커덩!!!
케이의 강한 의지가 느껴짐과 동시에, 기간틱이 그대로 벗겨져 버렸다! 아키토에게서 분리된 기간틱은 어느 샌가 나타난 번데기에 수납 되서는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해갔다.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설마, 자기가 의지력에서 케이에게 진 거란 말인가? 그 나약한 녀석에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잠시 방심해서 기간틱을 뺏긴 것뿐이다. 내가 그 놈보다 의지력이 떨어진다니, 있을 수가 없어! 아키토가 다시 기간틱을 호출하였다.
"돌아와라! 기간틱!! 재식장이다!!"
-......
"으...윽! 돌아와!! 기간틱!!!"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기간틱은 아키토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기간틱이 케이의 의지에 따라 아키토의 소환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키토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녀석의 의지가 자기를 압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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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발카스와 와펠다노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이버 III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녀석의 기간틱이 해제되더니만 아키토가 몇 번 재식장 시도를 하는 것이 보였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기간틱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으....바...박사님..."
"엔쯔이?!"
그 때 중상을 입고 기절해 있던 리엔쯔이가 의식을 회복하였다. 하반신이 송두리째 잘려나갔지만 그래도 조아 크리스털의 에너지 공급 덕분에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었다. 리엔쯔이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상공에 떠 있는 가이버 III를 보았다. 그의 눈에도 가이버 III가 당황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정신이 드나?"
"예..... 그럭저럭. 그건 그렇고, 대체....가이버 III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녀석이 기간틱의 힘을 잃은 게 아닐까 싶네."
이런 상황에서 기간틱을 일부러 벗을 리는 없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무슨 술수를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저렇게 당황해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키토 자신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때 와펠다노스가 발카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닥터. 저 놈은 제가 맡을 테니 닥터께서는 엔쯔이를 데리고 어서 탈출하십시오."
"와펠다노스?"
"기간틱은 제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지만 그냥 가이버라면 저도 쉽게 당하진 않습니다. 저승길 가는 길동무로 삼을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닥터께서는 어서 빨리 탈출하십시오."
와펠다노스는 이미 각오를 굳혔다. 하긴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 가이버 III를 해치우려면 누군가가 남아서 그의 발목을 묶어둬야 한다. 기간틱 다크라면 지금 이들에게는 그게 불가능하지만 보통의 가이버라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었다. 발카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을 자기가 하게 될 줄이야. 와펠다노스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발카스는 리엔쯔이를 데리고 탈출을 준비하였다. 바로 그 때 위에서 뭔가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틀림없이....
"저...저건!"
"그리셀더!!"
발카스는 일이 또 꼬이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탈출을 시도하려는 참에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이 또 나타난 것이다. 그리셀더가 가이버 III의 바로 옆에 내려서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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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토님!!"
"시즈?"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던 아키토의 옆에 시즈가 내려왔다. 그리셀더로 조제된 시즈는 비행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중에서 사뿐하게 내려와서는 아키토의 바로 옆에 나란히 멈춰 섰다. 시즈는 아키토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 났어요! 이제 곧 이 기지가 자폭할 겁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아키토는 크게 놀랐다. 자폭이라니! 설마 자기를 그냥 힘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까 기지와 함께 날려버리겠다는 속셈일까. 이제 보니 녀석들이 아까 전에 승부를 지나치게 서둘러서 그때까지 좋았던 분위기와 팀웍를 다 망쳐 버리게 된 이유가 이것이었단 말인가. 시간 안에 마무리 짓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서 마음이 초조해지자 그런 실수들을 저질렀던 것이다. 물론 그건 아키토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와펠다노스와 리엔쯔이의 체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그렇게 승부를 서둘렀던 것이다. 그러나 아키토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약 2~3분 남짓해요. 어서 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중요한건 남은 시간 안에 탈출을 하든지 아니면 녀석들과 승부를 짓던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키토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기간틱을 뺏기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금 보통의 가이버인 자신의 능력으로는 저 놈들을 쉽게 끝장낼 수가 없었다. 이미 전투력을 잃은 와펠다노스와 리엔쯔이는 제쳐두더라도 마지막까지 전투에 나서지 않은 발카스가 문제였다. 아무리 연구에만 종사해오던 노인네라고는 해도 명색이 조아로드인데 전투 형태로의 변신을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탈출하기에는 저 성궤 안에 있다는 강림자의 유산, 항행제어구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리베르타스들은 지금 뭐하고 있지?"
"일단 위에 대기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날지 못하니까요."
"손실은?"
"네 명 전원 건재합니다."
그 말에 아키토는 귀가 번쩍 뜨였다. 이건 뜻밖의 소식이었다. 데리고 온 리베르타스 네 명이 전부 무사하다니. 위에서 미끼 역으로 던져 놓고 왔을 때만 해도 잘해야 한 명 정도 살아남지 않을까 싶었는데 시즈가 예상외로 그들의 서포트를 훌륭하게 해 내서 한 명도 잃지 않은 것이다. 그 네 명이 건재하다면 아직 방법은 있다! 아키토는 결심을 굳혔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승부다. 1분 안에 녀석들과 끝장을 보고 여기서 탈출한다."
"아키토님! 그...그건 무모해요!"
"지금 해야 해. 두 번째는 없어."
아키토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항행 제어구를 손에 넣을 기회는 이번뿐이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발카스가 그 항행 제어구들을 어딘가의 비밀 장소에 숨겨둘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파괴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그러므로 눈앞에 있는 지금이 유일한 찬스였다. 하지만 지금 아키토의 판단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2분정도. 1분 안에 저들을 전부 쓰러트리고 (혹은 제압하고) 성궤 내부의 항행 제어구를 탈취한다니.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솔직히 항행 제어구를 포기하고 지금 당장 탈출한다고 해도 2분은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아키토는 기간틱 형태조차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아키토는 단호했다.
"시즈.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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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카스는 불안한 눈으로 가이버 III, 아키토와 그리셀더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 두 놈이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기는 한데 뭐라고 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가이버 III 하나만이라면 모를까 조아로드 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저 그리셀더라는 조제체 때문에 상황이 다시 불리하게만 돌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기지 자폭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때 아키토가 양 손을 한군데로 모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 사이에 에너지가 모이는 것도 보였다. 저것은 바로 공격을 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발카스가 와펠다노스에게 경고하였다.
"조심하게! 놈들이 또 공격을 해올 꺼야!!"
-푸슝!!
그 와 동시에 아키토의 양 손에 맻혀있던 에너지가 이쪽으로 발사되었다. 가이버의 원거리 공격무기, 프레셔 캐논이었다. 중력탄들이 날아오는 것을 본 발카스가 황급히 바리어를 전개하며 와펠다노스를 보호하였다. 지금의 와펠다노스는 조아로드로서의 힘을 잃어 바리어 생성이 불가능했다. 이때 공격을 받으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아키토의 목표는 와펠다노스가 아니었다.
-콰콰쾅!!
"아니?!!"
아키토의 중력탄들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 우라누스의 성궤 표면에 명중하였다. 아키토의 목표는 바로 성궤였던 것이다. 그래도 표면이 워낙 두터운 돌벽인지라 중력탄 몇 방에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표면에는 이미 착탄지점을 중심으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키토는 그 지점을 향해 쉴 새 없이 프레셔 캐논을 난사하였다.
"어떠냐! 발카스!! 지금의 너로서는 이걸 못 막을 꺼다!!"
-콰콰쾅!! 투캉!!
물론 발카스가 바리어를 펼치면 저 정도야 막을 수 있지만 문제는 방어해야 할 성궤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성궤와 와펠다노스까지 완전하게 다 감쌀 정도로 거대한 바리어를 만들 능력이 지금 '보통상태의 발카스'에게는 없었고 그렇다고 지금 저걸 막겠답시고 밑으로 내려갔다가는 와펠다노스가 놈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만다. 발카스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었다. 그 때 와펠다노스가 발카스에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닥터 발카스. 저건 제가 막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탈출 준비를!"
"하지만 지금의 자네 혼자서 저 둘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어떻게든 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빨리..."
"닥터 발카스!! 천정! 천정에 적입니다!!"
바로 그 때 바닥에 누워있던 리엔쯔이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발카스가 위로 고개를 들자 저 높이 동굴 천정벽면에 리베르타스 네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가이버의 프레셔 캐논에 정신이 팔려 리베르타스 놈들이 여기 바로 위까지 천정에 매달려 기어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파앗!
발카스가 리베르타스들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리베르타스들이 일제히 아래로 뛰어 내렸다. 목표는 바로 발카스들. 와펠다노스가 황급히 발카스를 밀어서 그 자리에서 피하게 하였다. 갑작스럽게 밀린 발카스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와펠다노스에게 리베르타스 네 마리가 전부 착 달라붙었다.
"와펠!!"
"이 녀석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박사께서는 어서 탈출하십시오!"
와펠다노스는 달라붙은 리베르타스들을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이 양 팔로 꽉 붙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베르타스들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달라붙기만 하였다. 와펠다노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녀석들은 어떠한 공격도 안 하고 그냥 달라붙으려고만 하였다. 공격을 하려고 내려온 게 아니란 말인가?
"좋았어. 이제 마무리다."
리베르타스들이 성공적으로 와펠다노스에게 달라붙자 아키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왕이면 발카스도 같이 붙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키토가 다음 명령을 시즈에게 내렸다.
"시즈, 리베르타스들을 모드 C 형으로 변신시켜라."
"아...아키토님! 그건!"
"뭐하나. 시간이 없다고 말한 건 바로 너야. 꾸물거리지 마."
시즈가 명령을 내리는 것을 망설이자 아키토가 일침을 가했다. 시즈로서는 리베르타스들에게 모드 C 형으로의 변신 명령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아키토의 의지가 더 중요했다. 시즈는 이를 악물었다.
'미안해요, 모두들 날 용서해 줘요!'
이윽고 시즈의 이마에 있는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념파로 리베르타스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것이다.
"리베르타스! 모드 C !!"
"Yes sir!!!"
리베르타스들은 시즈의 명령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따랐다. 즉시 그들이 모드 C 형으로 변신을 하였다.
-철커덕! 철컥!!
리베르타스들의 목 뒷부분에서 숨겨져있던 장갑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그 장갑판들은 그대로 리베르타스들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등 부분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온 몸의 색깔도 처음의 검은 빛에서 갈색 계통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세에서 리베르타스들은 와펠다노스에게 매달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발카스는 저 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리베르타스는 상황에 따라 세 가지의 변신 모드를 가지고 있다. 격투전에 특화된 통상 형태의 모드 A, 어깨 장갑을 생체 열선포로 변화시켜 원거리전에 특화된 전투력을 발휘하는 모드 B. 그리고 마지막 변신인 모드 C는 최후의 순간에만 사용하는 변신모드다. 전신의 근육세포를 전부 작약세포로 변화시켜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생체 폭탄 형태, 즉 자폭모드였던 것이다! 원래 이 기능은 리베르타스가 궁지에 몰리거나 적에게 노획될 상황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하라고 탑재된 기능이다. 발동 자체는 그리셀더의 명령에 의해 발동되며 리베르타스들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그리고 한 번 이 변신을 취하게 되면 폭발을 취소할 수가 없다. 그대로 폭발하는 것이다!
"폭파!"
아키토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순간 리베르타스들이 있는 곳이 강하게 빛났다!
-콰아아아앙!!!!!
발카스들이 있던 우라누스의 성궤 바로 위가 폭염에 휩싸였다. 폭발로 인해 동굴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폭발의 충격으로 거대한 우라누스의 성궤가 거세게 진동하면서 위쪽의 벽면이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이로서 성궤 내부로 돌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키토와 시즈는 곧장 부서진 성궤의 틈으로 날아 들어갔다. 폭연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지금이 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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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발카스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어딘가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엄청난 폭발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발카스 자신은 다친 데가 없었다. 바리어를 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발카스의 주위에 푸르스름한 막이 맺혀 있었다. 이건 틀림없이 바리어였다. 도대체 자신은 칠 여유가 없었고 와펠다노스는 칠 능력 자체를 잃었었다. 그렇다면 이건....
"엔쯔이?! 설마 자네가!"
"무...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보니 놀랍게도 중상을 입은 리엔쯔이가 바리어를 전개해서 발카스와 자신을 폭발로부터 지켜낸 것이었다. 몸통의 절반 이상을 잘린 심각한 중상을 입은 몸으로 무리하게 바리어를 펼치다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엔쯔이 덕분에 이렇게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발카스는 와펠다노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와펠다노스가 있던 자리에는 나무뿌리들만 불타고 있었고 와펠다노스의 몸통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와펠다노스는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와펠다노스!! 이....이럴 수가...!!"
발카스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저주하였다. 아끼던 동지를 잃었다. 그것도 자기를 도와주러 와서. 응원 요청만 하지 않았더라면 와펠다노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일도 없었고 리엔쯔이가 지금처럼 사경을 해맬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발카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미안하다...! 와펠다노스, 리엔쯔이! 내가 칠칠치 못해서....나 때문에 너희가 이렇게...!"
"저....아직 안 죽었습니다. 닥터 발카스."
그 때 누워있던 리엔쯔이가 남은 오른팔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로노스 12신장으로서....이렇게 알칸펠님의 적과 싸우는 건 당연한 일. 싸우다 힘이 모자라 진 것이므로 억울한 건 없습니다. 다만 저 자신의 무력함에 분노할 뿐."
"그만 됐네.... 자넨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이제 그만 쉬게나. 내가 빨리 데려다가 치료해 주겠네."
발카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 더 이상 리엔쯔이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 리엔쯔이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데려가서 치료를 해야 했다. 그러나 리엔쯔이는 단호했다. 그는 아예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였다.
"아뇨, 아직 제겐 해야만 할 일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리엔쯔이는 바로 옆에 있던 와펠다노스의 뿌리들 위에 자기 몸을 얹었다. 그리고서 조아 크리스털의 힘을 지금 낼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개방하였다. 와펠다노스의 뿌리를 보며 리엔쯔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와펠다노스, 잠깐 자네 육체 좀 빌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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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네 명의 자폭 위력은 굉장했다. 단 한 번의 폭발로 두터운 돌로 변해버린 유적의 표면을 박살내 버리고 내부로의 통로를 열어 버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아키토와 시즈가 돌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서둘러 유적의 중심부로 향했다. 유적 내부에 있다는 우주선의 항행 제어구. 어쩌면 지구상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제어구로서는 유일한 물건일 바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걸 손에 넣기 위해 이들은 지금 이렇게 시간과의 아슬아슬한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지와 함께 날아갈 수도 있었지만 유적의 항행 제어구는 그런 위험을 감수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물건이었다.
아까의 폭발로 발카스 일당도 완전히 박살났을 것이다. 부상당한 리엔쯔이나 벌거숭이나 마찬가지인 와펠다노스는 끝장났겠지만 어쩌면 발카스는 바리어를 펼쳐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키토는 굳이 그걸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아키토는 거의 2년 전에 미나카미 산에서 들어가 봤던 유적 우주선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아마도 그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우주선의 중심부에 있을 것이다.
"아키토님! 저기 있어요!"
그 때 시즈가 드디어 항행 제어구를 찾아내었다. 시즈가 찾아낸 것은 천정에 매달린 항행 제어구였다. 물론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천정이 무너져있긴 했지만 다행히 제어구 자체는 손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아키토가 나머지 한 개의 제어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키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것만 있으면....!
-슈르륵!
아키토가 그것에 손을 대려할 순간이었다. 갑자기 위에서 나무뿌리들이 뻗어오더니 항행 제어구를 먼저 낚아채었다. 그리고 그 뿌리들은 순식간에 다른 한 개까지 낚아채었다. 아키토는 깜짝 놀랐다. 저 나무뿌리는 틀림없이 와펠다노스였다. 그런 폭발 속에서도 설마 살아남았다는 말인가! 아키토가 고함을 지르며 항행 제어구를 쫓기 시작했다.
-슈르륵! 촤르륵!
"아니?!!"
그 순간 아키토와 시즈의 앞을 수 많은 나무뿌리들이 가로 막았다. 나무뿌리들은 서로 얽혀서 순식간에 나무 넝쿨의 벽을 만들어내었다. 와펠다노스는 이런 식으로 이들을 저지하려 하는 것이었다. 아키토가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쳇! 끈질긴 녀석!!"
-부웅! 촤악!!
시즈 역시 그녀의 전투형태 무기인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이들의 앞을 가로막은 나무넝쿨 벽을 베어 나갔다. 그냥 힘으로 밀어 붙이면 부서지지 않을 벽이지만 고주파 소드가 한 번 휘둘려 질 때마다 속절없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아키토는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이 넝쿨 벽을 돌파하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이런데서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지 폭파까지는 이제 약 1분!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열심히 넝쿨들을 베어버린 두 사람은 금방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다. 아키토와 시즈는 즉시 상승해서 유적 우주선 밖으로 나갔다. 아키노는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끝장을 볼 생각으로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순식간에 발카스들이 있던 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키토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현장에는 와펠다노스의 남은 뿌리들 위에 힘겹게 올라가 있는 리엔쯔이만이 있었다. 발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키토는 다급한 목소리로 리엔쯔이에게 소리쳤다.
"엔쯔이! 발카스는 어디 있냐! 항행 제어구는 어디 있어!!"
"후....후후후....이제 넌 끝장이다.... 가이버 III...."
리엔쯔이는 역시나 발카스의 행방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잔인하게 웃고 있는 리엔쯔이의 몸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그의 몸이 순식간에 바스러지고 있었다. 아키토는 바스러지고 있는 리엔쯔이의 이마에 조아 크리스털이 없는 것을 눈치 챘다. 발카스가 탈출하면서 리엔쯔이의 조아 크리스털까지 가지고 간 것이다!
"먼...먼저.....지옥에 가서.....기다리고 있겠다...! 죽어라! 가이버 III !!! 으하하
댓글목록

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_- 전투라..후훗!! 기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또 한명이 희생했군요. 이번에는 바보같이 체면치레(?)에만 신경쓰는 앱톰녀석땜시
[우드드득. 으아악!! -엡톰의 생체열선포&미사일 트윈 어택에 날아가는중.]
또 죽은 동료의 명복을 빌며
건필을 날리는 센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그나저나 적들이 너무 개사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천하의 베르단디 일행일지라도 굉장히 위험해질 것 같군요. 그래도 세계의 온갖 만물을 능력껏 다루고, 모든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 베르단디가 설마 당할리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치시기라도 하면 엄청난 악플(?)들이 쏟아질지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